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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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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죽음과의 랑데부  (히브리서 9:27-28)
 
세계 제 일차 대전 때 어느 시인이 "죽음과의 랑데부(rendezvous:약속된 시간이나 장소에서 만난다는 뜻)"라는 시를 쓰고 전사한 일이 있습니다. 요며칠전 일본 여객기(보잉747)가 추락하여 520여명이나 떼죽음을 당했는데, 엊그제 영국 여객기(보잉747)가 이륙하다가 엔진에 불이 나서 50여명이나 죽었습니다. 어제는 우리 교회 청년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된다면 죽음과 랑데부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은 갑자기 들이 닥치기도 하고 천천히 다가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반드시 찾아 오고 야 맙니다. 건강 상태가 아주 좋은 사람이 며칠 안에 죽는 수도 있고 병원 침대에서 다 죽어가던 사람이 10년, 20년 오래 사는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신비스러우면서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저 공동묘지나 무덤은, 죽음은 반드시 찾아 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에덴동산 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죄와 죽음은 그 문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너는 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따 먹어도 좋지만, 한가지만은 먹지 말라. 만일 그 나무와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 금지된 열매를 따 먹고, 그 순간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육신적으로도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다 비슷한 과정을 밟습니다.

 하나님은 아담부터 노아까지 아홉 사람의 이름을 적으셨는데 그 들 중에 한 분이 에녹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 갔습니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죽었다."는 말이 계속되는데 이 기록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실현된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에도 보면 "어느 왕이 살다... 치리하다... 죽었다. 살다... 치리하다... 죽었다."는 말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네가 죽을 때가 다가온다"고 말씀하셨고, 에스겔에게는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히스기야 왕에게는 "너는 네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이사야 38: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께서도 죽음에 관해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한 거지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웠다고 말씀하시고, 한 부자는 죽어 지옥으로 떨어진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6:13-31). 또한 어리석은 한 농부에게 오늘밤 잠잘 때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2:13- 21). 또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죄악 중에 죽으리라(요한복음 8:24)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성경은 많은 무리의 죽음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왕과 그의 군대가 홍해바다에서 죽은 사실(출애굽기 14장)과 산혜립의 군대185,000명이 하룻밤에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죽은 사실 도 말씀하고 있습니다(열왕기하 19:35-36). 성경은 아마겟돈 전쟁 때 수백만의 사람이 죽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계시록 16,19장). 그리고 세례요한이나 스데반 같은 사람은 용감하게 죽은 것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어 언제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에 관한 말씀은 성경 장장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가 살아있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보지않은 채,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변화되어 들리워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옆에 참여하는 성도는 얼 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1.죽음의 기원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죽음은 죄로부터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첫번 사람이 범죄한 때부터 죽음은 모든 후손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입니다. 사실로 죽음은 모든 인간뿐 아니라, 모든 자연까지도 오염시켰습니다. 꽃은 피었다 죽어버리고, 나무의 푸른 잎도 말라 죽습니다. 모든 동물도 죽어갑니다. 우리 모두가 몸 속에 죽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뼈는 부서지게 되고, 치아는 썩어가고 있으며, 머리는 희어지고 또 빠져 없어지고 있습니다. 시력은 점점 약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암이 퍼져 가고 있고, 심장의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있으며, 혈압은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너무 강조하는 분은 우리가 건강치 못한 것은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완전한 건강을 갖기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병들면 병원에 갑니다. 안경도 쓰고, 보청기를 씁니다. 그리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도 갑니다. 결국 죽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서 병을 고쳐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손을 묶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는 결코 완전한 몸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의 운명적인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비행 기 사고, 자동차 사고, 익사사고 등으로, 또한 질병으로 죽고, 자살해서 죽습니다. 그래서 건축업자들이 기억해야 될 말이 있는데, 즉 "모든 문과 계단은 큰 관이 들어올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정복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죽음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죽음은 구원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끝나게 합니다. 지금이라도 죽음이 우리 앞에 성큼 나타날지 모릅니다.
 
2.죽을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①스리스도인이 죽을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몸은 무덤으로 갑니다. 그 무덤은 공동묘지일 수도 있고, 바다 밑일 수도 있고, 사막의 모래일 수도 있고, 산 꼭대기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썩어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남아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다시 부활하여 예수님의 몸 과 같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몸은 부활하지 못하고 천년을 더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영혼도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고린도후서 5:8)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1:23-24에서는 "내가 그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라"이 말씀에서 우리의 영혼, 즉 진정한 자아는 죽는 순간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거 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영혼도 잠을 잔다면 1,900여년전에 죽은 바울은 아직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혼이 잠잔다는 근거가 될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의 몸은 무덤으로 가지만 그의 영혼은 올라가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한 우리의 영혼은 빛의 세계로 날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강도가 회개하며 죽어갈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내일이 아니고 천년 후가 아니라 "오늘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저주의 세상에서 행복한 하늘 나라에로 이주(translation)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느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의 공적이 시험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가 없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업적은 심판 의 불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너는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으나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너 받을 상급은 없느니라"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해가 지면 함께 사라져 없어질 것을 위해 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위와 재물과 쾌락을 얻는데만 생애를 허비하는 이가 있습니다. 마침내 자기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 한 것도 없이 빈 손으로 주님앞에 서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런 삶을 산다면 죽을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빈 손으로 주님을 만나게 이제부터라도 그를 위해 바쁘게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죽음이 닥쳐 오면 더 이상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구원하지 못한채 죽지는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4)고 했습니다.
 
②잃어버린 죄인이 죽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누가복음 16:2-23절에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라고 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이 죽을 때는 고통을 의식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몸은 무덤으로 가고 그 영혼은 고통의 장소로 가게 됩니다. 후에는 몸이 부활하여 영혼과 다시 합쳐지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죄인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불못에 던지워져서 극심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3. 죽은 후에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가?
 
 그 해답을 결단코 "아니요"입니다. 전도서 11:3에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구원 받았던지 멸망 받았던지 영원히 그대로 있게 됩니다. 죽은 후에는 회개 할 기회가 없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없고 긍휼을 베푸는 자도 없습니다. 죽은 후에 불신자에게는 심판과 저주와 고통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 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6:2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와 태양사이를 9,300만 마일의 간격을 두셨습니다. 영원한 멸망에 떨어진 죄인은 천국과 지옥사이의 구렁에서 지옥편에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간절히 부르고 계십 니다. 죽은 후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습니다.
 
4. 죽는 자리에서 한 회개는 어떤가?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믿는지 아닌지가 문제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침상에서 한 약속대로 사는지 안사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예수님 잘 믿고 교회에 잘 다니겠다"고 약속한 대로 퇴원하고 나서 교회에 잘 다니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이는 철석같이 약속하고 퇴원한 후에는 전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대로 살지 않고 여전히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다급할 때는 예수님을 찾다가도 평안해지면 변해 버리는데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확실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5. 항상 있는 죽음의 가능성
 
 죽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갑자기 당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교통사고, 자살, 강도, 전쟁, 심장마비 등 모두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죽음이기 때문에 살려 달라고 고함도 못치고, 회개할 기회도 없이 죽어 준비없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했다고 원망하거나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산지 지방에 교회가 있고, 성경이 있고, 서적이 있습니다. 복음은 강단에서, 라디오와 TV에서도 전파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사람들은 변명할 길이 없습니다. 잠언 29:1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 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 나와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6. 죽음을 정복한 사람
 
 우리 주 예수님은 요셉의 무덤에서 부활 하실 때 나와 여러분을 위해서 죽음을 정복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셨으므로 우리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할 때까지 무덤에서 잠을 자게 될지라도 우리의 영은 죽을 때 그의 계신 곳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리스도인에게 두려움으로 사로 잡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올테면 오라고 하십시요.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죄악된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 가장 훌륭한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찬물을 건너는 것도 아니며, 차디찬 손으로 목을 누르는 것도 아니며, 얼굴에 얼음같이 찬 기운을 불어 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죄와 슬픔과 실망의 끝 입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 이니라"(빌립보서1:21)고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죽는 것은 유익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그러면 죽음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줍니까? 모든 기회의 종말입니까? 아니면 축복의 시작이 됩니까? 위로 올라가게 됩니까? 아래로 내려가게 됩니까? 천 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선택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천국이 되든지, 죄와 지옥이 되든지 말입니다. 한 작은 소년이 바닷가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모래로 한 도시를 건설합니다. 그 안에 집도 짓고, 가게도 만들고, 예배당도 짓습니다. 그러면서 해가 지는 줄을 몰랐습니다. 잠시 후 조수가 밀려와서 그 도시를 다 쓸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소년은 물결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 소년의 큰 형이 달려나와 실망한 동생을 안아다 안전한 곳에 놓고 또 집으로 데겨 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시간이라는 모래위에 놀고 있는 것입니다. 장난감 집도 짓고, 세상을 위해 짧은 생애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죽음이 와서 우리와 우리들이 여러 해 걸려서 쌓아 올린 것들을 일순간에 쓸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큰 형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가 내려와서 능력있는 팔로 우리를 안아서 밝고 빛난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단,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고 그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죄가 하나도 없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심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 친척, 우리 이웃에 아직도 멸망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세계에 복음을 듣지 못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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