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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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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피의 복음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17:11) 오늘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로 지난 금요일(1월 28일)신문에 여호화의 증인 박월선 씨가 12살난 그의 딸 김경숙양이 "전격성 간염"으로 하혈을 시작한지 열흘이 가깝도록 사경을 헤매이는데도 피에 대한 잘못된 교리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다가 종내 그 귀여운 딸을 숨지게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기사가 너무도 충격적이었으므로 목사의 한 사람으로 묵과 할 수 없어 오늘아침 "피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피에 대한 교리는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구원하자고 하는 것인데 결국 그들의 잘못된 교리는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는 피 의 강이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성경 전체가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피가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인데 반하여 피는 생명을 대표하기 때문에 피는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사망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사망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피는 생명을 대표하기 때문에 사망을 철회하는, 죄를 씻는 것은 생명을 대표하는 피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피가 사람들의 죄 를 대속해서 하나님과 떨어졌던 멸망받을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과 연합하여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죄는 사망이요 피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피만이 사람들의 죄를 속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역사상에 나타난 속죄관을 고찰해 보겠습니다.
 
1.역사관에 나타난 속죄관
 
멕시코
 
 AD13c 경에 멕시코에서는 유행병이 돌거나 재난이 오면 죄 때문에 온 신의 진노라 생각하여 속죄 제사를 드리는데 흠이 없고 잘 생긴 청년을 골라서 그의 손원을 다 해준 다음에는 벌거벗겨서 그 몸에 붉은 색 검은 색 푸른 색 흰색 등 여러가지 색칠을 해서 그들의 제 사장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로 그 재물되는 청년을 데리고 갑니다. 그러면 군중들은 그 청년에다가 대고 "내 죄를 가져 가십시오"(Take my sins) "내 죄를 가져 가십시오"(Take my sins)하고 죄를 전가합니다. 그리고는 높은 피라미드 식의 제단에 데리고 올라가서 그 들이 보는 가운데서 시퍼런 칼을 들어서 그 청년의 가슴을 찔러 피를 흘려 뿌린 되에 죄를 대속하고 신의 노여움을 풀었다고 하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습니다.
 
아테네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는 그 도시에 질병이 만연하면 죄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샀다 생각해서 속죄 제사를 드리는데 가난한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많은 사람 앞에 세워 놓습니다. 그러면 군중들이 자시들의 죄를 그 사람에게다가 전가한 다음에 돌로 쳐 서 피를 흘리고 죽게하면 자기들의 죄를 용서받고 신의 진노를 풀었다고 믿는 신앙을 가졌다고 합니다.
 
색소니
 
 구라파Saxony에서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다가 나중에 페르샤 전쟁 때 잡혀온 포로 중에서 몇 사람씩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트레이스
 
 Thracefkrh라고 하는 곳에서는 그 도시의 죄를 정화하기 위해서 사람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집트
 
 고대 Egypt에서는 사람을 잡아 심장을 찔러서 제사를 드리는데 정월 초하룻날 세 사람씩 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습니다.
 
스키디안
 
 현재 소련인에 해당하는 Scythian사람들은 사람의 심장을 찔러서 나온 피를 병에 담아다가 신의 노여움을 푸는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다호미(Dahomy)에서는 해마다 궁중에서 닭이나 거위나 소 같은 짐승의 목을 찔러서 나온 피로 제사를 드리다가 후에는 전쟁포로를 잡아서 피의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당들이 푸닥거리 할 때에 보면 한참 춤을 추고 돌아다니다가 돼지의 목을 쳐서 피를 흘리게 한 다음 칼로 열십자를 긋고 그 가운데 칼을 꽂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 역사를 더듬어 보면 세계 모든 사람이 죄를 속하기 위해서 모두 피로써 그들의 신께 제사를 드리는 습관과 풍습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Fraxer)교 수는 "The Golden Bough"라고 하는 책에서 말하기를 "세계 인구의 90%가 종교적인 경축일에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렸다"고 했으며 기독교 인간학자 알렉산더 그리골리아(Alexander Grigolia)박사는 "세계 인구의 95%가 피로써 신께 제사를 드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 고 이렇게 피로써 죄사함 받는 습관과 풍습에 대하여 그리골리아 박사는 말하기를 "사람이 신께 죄를 짓거나 악을 행했을 때에 어떤 종류의 피든지 꼭 피에 의해서만 속죄 받는다고 믿는 것은 사람이 원래부터 타고난 성품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학자들이 발견해 낸 이런 피로써 죄사함 받는 습관과 인간의 성품은 어디서 기원했겠습니까? 단순히 우연히 생긴 미신적 습관이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역사적인 성서적인 근거가 있겠습니까? 이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곧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받을 인간 들에게 다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피로써 죄를 속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성서적 속죄관
 
 그러면 이제 성서적인 속죄관을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 같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마침내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주심으로 이제는 구약시대처럼 소나 양을 가지고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달려 죽으심으로 완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짐승의 피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먹지 말라거나 수혈을 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포도주 잔을 돌리면서 말씀하시기를 "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성전에 피를 바르는 제단 뿔이 있었는데 죽을 죄인이라도 그 제단 뿔을 붙잡으면 죽이지를 못했습니다. 이와같이 "언약"(covenant)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가 아무리 많아도 흉악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기만 하면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해주신다는 것이며, 이를테면 제단 뿔의 손잡이와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와 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도덕과 윤리의 제도나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의 종교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범죄하여 하나님과 멀어졌던 인간들이 주님의 피를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과 다시 가까와 지고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말씀했습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것 때문에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탄을 대적하여 이기는 무기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했습니다. 예수의 피로써 사탄 마귀를 무찌르고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피는 마귀가 죄를 근거로 하여 우리 양심에 송사할 때 물리치는 능력의 방패가 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범죄한 후에 그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 나뭇잎 치마는 인간의 도덕과 수양과 철학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인간의 헛된 수고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만들어 입혀준 가죽 옷은 영원한 대속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옷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만 의지하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공로가 없어도 "의인"이 되어(믿음으로)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카인이 제 손으로 지은 농산물로 제사드려 응답받지 못한 것은 인간의 노력과 선행으로 구원받을 줄 아는 인간들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며 하나님께 열납된 아벨의 양을 잡아 피를 뿌려 드린 제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의인"이 되고 구원받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카인은 피에 대한 믿음이 없고 아벨은 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열납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대속하신 어린양 예수의 피 공로를 의지하고 나오는 자는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가 있고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온 애굽 땅에 어느 집에나 장자죽이는 재앙이 다 임했으나 문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간 것은 장차 애굽과 같은 세상을 다 심판하여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때 유월절 양이 되어 피 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마음의 문설주에 바른 사람은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무사히 건넜으나 애굽 군사는 홍해를 건너지 못하고 수장되고 만 것은 그들은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페인트칠을 잘해서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대문에 금칠을 했다고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그 문안에 착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 살았다고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출12:13)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하여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은 어린양 예수의 피 공로를 마음 속에 믿는 그 사람만이 구원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구원을 받는냐 못 받느냐 하는 심판의 표는 우리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 받은 위에 우리 의 행한대로 상급심판은 받지만은 멸망심판은 받지 않습니다. 복싱 전 세계 챔피언이었던 유제두 선수가 와지마와 더불어 싸우다가 그만 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주심이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 주심은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에 유제두 선수의 편을 들고 싶었겠지만 공정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적수인 와지마의 손을 들어 이겼다고 선언했습니다. 챔피언 벨트를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유제두 선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마귀와 더불어 싸워서 졌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지만 공평해야 했기 때문에 죄의 값을 사망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인간의 모든 권리가 마귀에게 빼앗기고 영생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두번째로 제2의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마귀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억울하게 제1의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무조건 의인의 반열에 서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국의 어떤 판사의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신나게 달리다가 그만 다른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교통순경에게 이끌려 재판을 받으러 갔습니다. 법정에 들어와보니까 담당 판사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흠, 우리 아버지야 나를 용서해 주겠지"하고 자기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본 체도 않고 엄숙한 얼굴로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제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의 이름을 대시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 나야요 나!"하고 말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하고 -"여기는 법정입니다! 사사로운 말은 하지 못합니다. 어서 이름을 대시요"하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 이 "예,죤-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피고의 주소는?" "아니 아버지 주소하고 똑 같지 않아요"그랬더니 그 아버지는 다시 호통을 치면서 -"어서 주소를 대시요!" 말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소를 다 댔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구면서 낭독한 후에 판결을 내렸습니다. -"벌금 100만원" 그때 그 아들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버지의 불공평한(?) 처사에 통곡했습니다. 그때 어느새 아버지가 법복을 다 벗어 버리고 신사복을 갈아입으시고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얘야! 너 얼마나 놀랬니?" -"나는 이 나 라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될 법관인데 내 아들이라고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어서 법을 어길 수가 있느냐?" 하면서 벌금을 물 수 있도록 100만원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 -"자, 이것을 가지고 저기에 가서 싸인을 받으면 너는 나갈 수 있다" 그제서야 이 아들은 아버지의 참뜻을 알았습니다. 법을 살리기 위해서 재판도 아버지가 하고 형벌도 아버지가 내렸습니다. 벌 값을 아들이 낼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돈을 털어서 벌 값을 치러주시고 아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죄 값으로 멸방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는 공의도 살리시고 사랑도 살리기 위하여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려 뜨거운 피를 다 쏟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죄를 사함받고 영생을 얻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셧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3:16).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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