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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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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89-06-11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1장 3~11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890611-17.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hwp

17.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고린도후서 1장 3~11절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중국에서 믿는 형제들 일행이 강으로 목욕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형제 중의 한 명이 다리에 쥐가 나서 물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지도자 되는 사람이 수영 잘하는 형제를 손짓하여 어서 빠져 죽어가는 형제를 구하여 내라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도자는“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소?”하고 책망하는데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형제는 쇠진하여 점점 죽을 지경에 이르러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수영을 잘하면서 눈으로 보고만 있다니!”바로 그때 그 형제는 재빨리 헤엄쳐 들어가서 가라앉는 형제를 끌어내 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더 일찍 그를 구출하러 들어갔더라면 그는 나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익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라면서 “물에 빠진 사람은 그가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최소한의 노력조차도 할 수 없을 때까지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참으로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1.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The end of self is the beginning of God)”란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고 기진맥진하여 손들어 버릴 때 하나님을 참으로 찾고 의지하게 되는데 그때 서서히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다(Man s extremity is God s opportunity)”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완전히 절망했을 때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타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일행과 함께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을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신앙의 체험을 말했습니다. 바울이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 정도로 절망에 빠졌던 것은 인간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라도 살리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케 하시는 큰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때까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무엇을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완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물질이나 사람이나 명예, 권력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곧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매어달리기를 원하십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우상과 죄악을 파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노력과 싸움을 단념할 때 비로소 시작하십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중에서 나와 자기의 완력이나 지혜로 일하려고 할 때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고생하는 가운데 40년이 지나 완전히 자신의 자존심도 깨어지고 우월감도 다 사라져 기진맥진하였을 때 하나님이 가시나무떨기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큰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여울에서 20년 전에 원수 맺고 떠난 형이 400명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하러 달려올 때, 인간의 온갖 수단방법을 다 써 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하나님께 매어달려 씨름하듯 기도하다가 환도뼈까지 위골되어 절뚝발이가 되어 하나님께 항복하는 순간 문제 해결을 받고“이스라엘”이란 칭호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단념하고 항복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고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절망하여 하나님만 의뢰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간적인 절망이 없이는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매어달리는 자를 들어 크게 쓰십니다. 물 떠난 고기는 살지 몰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후부터는 평안할 때도, 무슨 일이 잘 되고 성공할 때도 자고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사야 3장 1~3절에 보면“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사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사를 그리하실 것이며”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물질이나 사람을 의지하므로 그것들을 다 제하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넘치는 고난, 넘치는 위로


 본문 5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위로도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이 크면 큰 만큼 주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도 그만큼 큰 것임을 명심하고 고난이 올 때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그러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당하는 고난이지 신앙을 벗어나서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자연히 그리스도께서 대신 감당해 주시는 법입니다.


 ②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께서“너희가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복이 있나니…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서 믿음생활을 적극적으로 할 때 핍박과 고난이 옵니다. 마귀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면 고난을 피할 수는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전에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고난을 안 당해도 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고난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넘친 만큼 그리스도의 위로도 넘쳐흘러서 천추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얻은 것 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면 후에 그리스도의 위로도 넘치게 받습니다. 목회할 때도 적당히 둥글둥글 넘어가면 별로 큰 고난을 받지 않고 목회할 수가 있지만 적극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구령 사업을 하려면 고난이 많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만큼 남달리 큰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3.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


 본문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째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이 뜻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기 쉽고 의심하기 쉽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는 “자비의 아버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율법대로 심판하고 엄위하신 공의로만 취급하신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고 멸망을 면할 수 없는데, 자비하신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구속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셋째로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고난을 당할 때 이길 힘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

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엄청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4~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어린 아기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잊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투쟁이나 불안과 초조를 다 그치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하고 맡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989년 6월 11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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