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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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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83년 2월 20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28. 고귀한 근심
고린도후서 7장 8~11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전에 광희문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 예배당 바로 정문 앞에 이은실이라는 속장이 살고 있었는데 교회에는 일주일에 한 번도 잘 출석을 안 하는 사람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는 거의 매일같이 택시를 타고 다닙니다. 아예 밤 예배는 안 나오고 낮 예배도 아무 할 일이 없으면 한 번씩 나오는 교인입니다. 도무지 신앙생활이 장난인지 오락인지 심심풀이인지 모르게 믿길래 한번은 심방을 가서 호되게 책망을 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예수를 믿는거요, 장난을 하는거요. 속장님이 예수님 사랑하기를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10분의 1만 사랑해도 일등 신자가 될 꺼요. 아들이 학교 가다 잘못될까봐 매일 출근 하다시피 하면서 교회에는 일주일에 한 번도 제대로 출석을 안 해요? 유치원 태우고 다니는 택시비만큼만 헌금을 해도 믿음이 엄청나게 자랄 것이요. 무슨 신앙생활을 그 따위로 합니까? 속장이 다 뭐요 겉장도 못 되겠수다.”하고 그까짓 것 떨어질 테면 떨어져라 하고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정통으로 들어맞아서 토라질 줄 알았더니 도리어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출석도 하고, 봉사도 하더니 은혜를 받고 믿음도 자라서 그 다음에는 권사로 일등교인이 돼서 십일조도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 훌륭한 교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은실 권사님은 저를 보기만 하면 “김 목사님이 그때 예수님을 충식이 발바닥만큼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이 제 가슴에 얼마나 찔림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곤 합니다.
 이 권사님이 전에는 자식만 사랑하고 자식에 대해서만 염려 근심할 줄 알았는데 그 심령이 변화되면서 자신의 심령 상태를 위해 근심하고 교회를 위해 근심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졌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염려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염려와 근심은 대부분 세상을 너무 사랑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불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 근심은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에 다 해롭습니다. 근심을 많이 하면 마음을 지치게도 하고, 원망도 불평도 많아지고, 노이로제나 정신분열증같은 현상도 일어나게 만듭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근심에는 세상 근심, 육적 근심이 있는가 하면, 경건한 근심, 영적 근심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근심이며 복된 근심입니다. 한마디로 고귀한 근심입니다. 이러한 근심은 유익한 근심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하는 근심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이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고귀한 근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귀한 근심,즉 영적 근심 경건한 근심은 어떤 것입니까?

 

 ① 자신의 심령 상태를 위한 근심
 사람들은 육신이 병들거나 육신이 배고프면 즉시 알아차리는데 자신의 심령이 시들거나 병들거나 하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기의 죄로 인해서 애통하고 근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팔복 말씀 중에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애통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죄의 기쁨을 맛볼 수가 없고 십자가의 사랑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근심하지 않고서는 영안이 밝아질 수 가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자기는 이중인격자라고 탄식하며 근심했다고 합니다. 그 까닭에 그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졸도까지 했던 일이 있다고 합니다. 죄를 짓고도 근심할 줄 모르고 번민하지 않는 사람은 화인 맞은 심령이요, 영적 문둥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했습니다.
 다윗은 범 죄한 후에 번민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과, 부족함을 깊이 느끼고 근심하는 자가 하늘의 능력을 힘입게 되는 법이요, 기도 쉬는 죄를 회개하며 기도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근심하는 자가 능력 있는 기도를 하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항상 점검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자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② 교회를 위한 근심이 고귀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머리만 뜨끔해도 근심이 되고 기침소리만 들어도 가슴을 찢는 듯이 아프고 걱정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참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진 성도라면 교회를 위해서 근심하며 안타깝게 기도하고 봉사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교회가 시험을 당해도 무관심하고, 건축을 해도 무관심하고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아직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성도가 못된 증거일 것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교회, 내가 은혜 받고 축복 받는 교회를 위해 안타까워하고 근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요사이 성도들이 교회 건축을 위해서 새벽마다 밤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밤 1시 2시에도 연쇄기도를 잇기 위해 나와서 기도하고, 혹은 교회 재정을 위해 금식도 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격스럽고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 건축헌금 작정하고 낸 분들의 카드를 들춰보니까 어떤 분들은 다 완납을 했는데 계속해서 더 바치는 이들도 여러 분이 되고 또 작정한 금액보다 훨씬 더 바치고 더 빨리 내신 이들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둘도 없는 패물을 아낌없이 바치기도 하고, 5년 10년 사원 노릇해서 간신히 한 채 장만한 집을 몽땅 바치다시피 한 분도 있습니다. 또 전세든 것을 몽땅 바치다시피 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는데, 망우리에서 세계적인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단 한 달치의 생활비만큼도 헌금하지 않는 이들도 많고 그렇다고 간절히 기도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섭섭하기도 하고 신앙이 없는 탓이라고 자위도 해봅니다.
 어떤 분은 부담 없이 예수 믿는다고 등록도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피해 달아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집에 누워서 라디오로 예배드린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참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할 줄 모르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요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는 물이 아주 세게 흐르는 강물이 있는데 이곳을 무사히 건너려면 큰 돌을 등에다 걸머지고 건너야지 그렇지 않으면 떠내려가서 빠져 죽고 만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겁고 등이 아프지만 큼직한 돌맹이를 지고 건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근심하며 받들어 신앙생활을 해야 믿음도 자라고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학개 1장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해졌는데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면서 성전은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회피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보고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유를 살펴볼 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학 1:5~6, 9~11)고 했습니다.
 교회를 근심하며 책임을 다하여 돌보지 않으면 이와 같이 큰 손해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짓는데 최선을 다할때 그 사람, 그 나라는 복을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③ 나라를 위한 근심은 고귀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여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하고 물을 때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와 국민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인줄 압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장차 멸망당할 자기 나라를 내려다보시며 근심하며 우셨습니다.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정말 나라가 안전하고 튼튼하기 위해서 근심하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십시오. 토끼 꼬리만한 나라가 그것도 절반은 붉은 무리들이 적화야욕을 품고 무력으로 통일한다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 백성들 중 돈푼 있는 사람은 사치하고, 음란하고, 방탕하려 들고, 철없는 대학생들은 공산당과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데모만 하려고 듭니다.
 우리는 우리 눈앞에서 비참하게 공산당에게 망해서 무참히 학살당하고 슬퍼 통곡하는 나라들을 보았습니다.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면 6·25동란보다 수십 배 더 무서운 참극이 벌어져 아름답게 건설한 대한민국은 다시 잿더미가 될 것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은 굶어죽고, 밟혀죽고, 총탄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마음 놓고 예배도 드릴 수 없습니다.  월남의 목사, 신부, 중들이 매일 데모만 하더니 그들이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우리 성도들은 나라를 위해 근심하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신앙생활 잘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특히 이 백성들의 죄악을 바라볼 때에 근심하고 안타까워 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라 9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그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에스라는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스 9:3~6)하였는데, 얼마나 애국심에 불타고 나라를 위해 근심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나라를 근심하는 것은 참으로 고귀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도 말하기를 “자기의 인생과 자기의 종족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뿐 아니라 생활을 영위할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이다”고 하였습니다.

 

2. 고귀한 근심의 유익(결과)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영적인 근심으로 말미암아 “간절하게”했는데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좇으려는 마음이 간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변명하게”했는데 악한 자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하려고 애썼으며, “분하게”했는데 교회의 부패와 죄에 대하여 분개한 마음을 가지게 했으며, “두렵게”했다고 했는데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대하여 두렵게 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며, “사모하게”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을 사모하게 했으며(고후 7:7), “열심 있게”했다는 것은 죄를 고백하고 바울의 교훈을 지키려고 열심을 내었으며, “벌하게”했다는 것은 범죄자를 벌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고귀한 근심은
 ① 회개하게 만듭니다.
 ② 기도하게 만들어 줍니다.
 ③ 구원을 얻게 합니다.
 ④ 세상 근심을 하지 않게 해줍니다.
 ⑤ 개인적 국가적으로 구원받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감각하게, 무관심하게 살지 말고 또 백해무익한 세상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어차피 근심하며 살 바에는 영적인 근심, 경건한 근심, 고귀한 근심을 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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