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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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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2013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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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

금란교회 담임목사 김 정 민 목사
(김홍도 목사 아들)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면 엄하고, 차갑고, 냉정하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며

너무 강하시다고 생각하고 많이 어려워하고 무서워한다.
물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것과 하나님이 세운 이 나라를 지키는 애국에 관한 것은

타협을 모르는 분이시다.

설령 당신이 상처 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복음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실 분이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분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난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지께서 이용도 목사님의 일화를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어느 날 이용도 목사님께서 한 교회에 부흥회에 초청을 받아 가셨다.

집회 시간이 되고 설교 시간이 되었는데도 강대상에 올라가신 이용도 목사님은

아무런 말씀을 증거 하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그냥 내려오셨다.

그 다음 날도 말씀을 증거 하지 않으셨다.

초청한 목사님이 화가 나서“왜 말씀을 전해 주시지 않습니까?”하자

이용도 목사님은“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시며

강대상에서 내려오시곤 집으로 가셨다’는 일화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버지는 이용도 목사님이 하나님과 그렇게 깊이 교제하며

검소하게 사역하신 훌륭한 목사님임을 말씀하시며“나 같은 건 목사도 아니지…”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충격이었다.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부족함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흘리는 눈물,

너무 큰 축복 가운데 목회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송함에서 흘리는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아버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그저 강하고, 능력 있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분이라고 아버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생각해도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 스스로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겸손하시고,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하며 지금까지 목회하시는 순수한 모습이 나에겐 가장 인상이 깊다.


이런 목회자이자 아버지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소망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이렇게 순수 복음의 열정을 가지신 아버지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건강하고 힘이 있게 사역하시기를 소망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은퇴하는 그 날,

아버지도 같이 두 번째 은퇴를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나도 아버지처럼 순수 복음의 목회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지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목회자,

그래서 아버지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버지를 뵙게 되는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글을 마칠까 한다.
아버지는 정말로 순수하고, 실은 사랑과 정이 많은 분이시다.

모든 분들이 이와 같은 아버지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무서워만 하지 말고, 두려워만 하지 말고 다가가 보시면 아버지의 따뜻함과 순수함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치려고 한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런 귀한 목사님을 나의 아버지로, 또 동사 목사님으로 모실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이제 성역 50주년을 맞으신 아버지가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더욱 힘 있게 사역하시기를 기도드린다.

 

 

 

 

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

정암교회 담임목사 이 동 환 목사
(김홍도 목사 셋째 사위)


만남
내가 김홍도 목사님을 처음 뵌 때는 1992년이 아닌가 싶다.

 그 때 나는 군에 갔다 와서 막 복학한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신학생이었다.
1991년 여름, 그러니까 내가 아직 군인이었던 시절.

제대를 한 달 정도 앞둔 나는 소위‘말년 휴가’를 나왔다. 그리고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 여성이 김홍도 목사님의 따님(?) - 그냥 내게는 그 분의‘딸’이었다. 그 때까지는. - 이었다.

다시 군으로 복귀한 나는 내가 김홍도 목사님의 딸을 만났다고,

놀랍지 않느냐고 같이 군인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친구들에게 늘어놓았다.
사실, 이야기가 좀 거꾸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나는 김홍도 목사라고 하는 분을 어려서는 잘 몰랐다.

장로교에서 자란 나는 장로교 목사님들 가운데 유명한 분들, 몇 분의 함자는 들어 봤지만,

교파가 다른 목사님들은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군에 갔고, 군 생활 중 6개월 정도 군종병 생활을 했다.

그 때 내가 모시던 군목께서 군목수련회를 다녀오셨고,

그 분은 그 수련회 이후에 많은 변화를 보이셨다. 은혜를 받으신 것이다!

우리 군종병들은‘목사를 변화시킨 목사’가 누구인지를 궁금해 했고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도대체 어느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이다.),

 곧 그 군목수련회의 강사로 오신 분이 김홍도 목사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대하면 그 분이 목회하시는 교회를 방문하기로 의기투합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분의 딸을 만났다고 하니 이는 뭔가 기적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는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제대했고, 그 해 겨울 즈음부터 그 여인과 본격적으로 교제를 하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여기서 분명히 밝힐 점은, 눈이 무척이나 맑았던 그 여인이 나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감동을 받아 시작하게 된 교제라는 점이다. 제발 오해들 하지 마시기를.)
그렇게 해서 나는 그 1992년 어느 때인가 그 여인의 아버님이신 김홍도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식으로 교제를 허락받기 위한 자리였다.
평소 소문에 호랑이 같은 어른이라는 말을 들었고,

내가 군인이던 시절 역시 호랑이 같던 군목을 변화시킨 능력의 사자를 만나는 자리라

나는 무척이나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제를 허락할 수 없다고 하시면 어떡하나,

호통을 치시면 어쩌나 아니면 내게 기도를 해보라고 시키실까,

신학적으로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는 않으실까 등등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떠는 가운데 그 분의 서재로 들어갔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을 상상하고 있는가?

저와 여러분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그 분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다.

아니 뭔가 하문하기는 하셨던 것 같은데, 대답하기 곤란할 질문을 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 분은 나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하셨다.

심지어 정중하게 까지 맞아주셨다.

세상에! 상상이 되는가?

천하의 김홍도 목사가 일개 신학생에 불과한 나를,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셋째 딸을 채갈 지도 모를

낮도 코도 모르는 놈(?)에 불과한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다니….
그렇게 나는 그 분을 처음 만났다.

 

 

은혜
내가 지금의 집사람 그러니까 김홍도 목사님의 셋째 딸과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하고,

그 해 여름 즈음에 목사님께서는 본인이 강사로 초대되신 어느 목회자 집회에 참석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신학생에 불과해 참석할 자격은 되지 못했지만,

강사님 빽(?)으로 나는 그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소위 성령 세례,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성경이나 신학책 안에만 계시던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와 만나 주신 것이다.

모태 신앙으로 경건의 모습이면 되는 줄 알았던 날라리 신앙인이

경건의 내용을 채우는 기도하는 신학생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날 밤 얼마나 울었던지, 그리고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나는 가끔 우리 교인들에게 그 날의 일을 증언하곤 한다.
물론 예수께서 나를 찾아오신 밤이었지만, 분명 그 날의 강사는 김홍도 목사님이셨다.

그 분을 통해 예수님은 나를 만나주신 것이다.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날이 없었다면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단에서 선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내가 그 분께 입은 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내가 한 사람의 목회자로 서기까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서기까지 참으로 많은 은혜를 입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신앙과 삶
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의 신앙과 삶, 사실 이 부분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할 생각이다.

그 분에게 신앙과 삶은 이중적이거나 양면적이 아닌 ‘그 분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분의 신앙과 삶의 첫째 특징은 청교도적이라는 것이다.

목회에서나 개인 생활에 있어 스스로에게는 매우 엄격하시다.

신앙적인 면에 있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을 못하신다.

누가 보던 안 보던, 국내에서든지, 해외에서든지 매일 기도의 시간을 두세 시간을 갖는 것,

가혹하리만치 철저한 십일조 생활,

언제나 교회 우선주의로 사시는 등 경건하고 절제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이신다.


또한 사치를 용납 못하신다.

물론,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런 면에서는 파격적인 예산 할애,

그것으로 부족하면 사비라도 아낌없이 털어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을 나는 곁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다.

사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분은 집회를 나가셔도 좀처럼 사례비를 받지 않으신다.

목회자가 아프다거나 교회가 어렵다고 하면 사례비를 받지 않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비를 더 털어주고 오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의 교회 행사나 개인사에서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짜(?)시다.

이제는 좀 안락하게, 편안하게 지내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에 있어서도 가차 없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에게는 더 엄격하시다.

둘째로 웨슬리적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도 어려서 장로교인이었고, 그 분도 어려서는 잠깐이지만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래서‘아버님의 신앙은 감리교보다는 장로교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당시가 워낙 우리 교단 정치와 신학에 염려가 많았던 시절이었고,

오히려 감리교를 걱정하던 장로교 목사들 사이에서는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찬사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그 분은 그런 내 말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이미 뼛속까지 감리교도였던 것이다.

존 웨슬리의 신앙을 누구보다 흠모하셨다.

그래서 그 분을 따라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강조하셨다.

웨슬리가 금식했다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신 시절도 있었다.

또 십일조만이 아니라, 십의 이조, 십의 삼조 때로는 그 이상을 하나님께 드렸고,

‘메소디스트’로서‘규칙쟁이’의 삶을 사셨다.

기도시간,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 식사시간, 운동시간 등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기준을 세워 평생을 지켜왔던 것이다.

독립선언 33인 가운데 포함된 감리교 목사님들의 애국 애족심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고,

이용도 목사를 떠올리며 우리는 너무 호사하며 목회한다고 눈물을 지으셨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도 내게 존 웨슬리를 깊이 연구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목사님은 웨슬리와 감리교를 무척 사랑하신다.

 

 

셋째로 신앙과 삶, 모두 일관성 있게 보수적이다.

신앙과 국가관 모두‘보수’라는 말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신앙은 진보적이나 삶은 보수적이거나, 신앙은 보수인데

삶은 진보적(?)인 사람들을 종종 대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 분은 언제나 일관성이 있으시다.

신앙도 보수, 삶도 보수다.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려 하신다.

진보적 신앙과 신학이 자칫 소홀할 수 있는 경전으로서의 하나님 말씀에 누구보다 깊이 천착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강경하다.

하나님의 뜻이다 싶으면 물불을 안 가리신다.

마음은 한없이 여린 분이 신앙만큼은 강철보다 강하다.

나는 그 분만큼 강인한 신앙을 가진 분을 뵙지 못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국가관이 보수적이신 것은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일이라 두 말하면 입만 아플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삶의 모습을 스스로 참지 못하시는 모습이다.

이게 진짜 보수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국가관은 보수이면서 말씀 앞에서는 보수적이지 못한 신앙인,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분은 스스로 견디지 못하신다.

웬만하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마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 때고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스스로를 쳐 말씀 앞에 복종시키려 하신다.

이는 참으로 목회의 후배가 되기도 하는 내게 귀감이 된다.

말씀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나 끊임없이 정진하고 매진하며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려고 하는 모습,

나는 이 모습이야 말로 정암 김홍도 목사의 진면목이라 생각한다.

 

 

글을 정리해야겠다.
그분께 나는 후배 목회자이기에 앞서 사위(나는 그 분의 셋째이며 막내 사위가 된다)이다.

이 글을 부탁받았을 때 선뜻 승낙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내 글을 진정성 있게 읽어줄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어서다.

나 또한 얼마나 솔직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이 세 가지는 결혼 전부터 그 분에게 목회자로서의 미덕으로 줄기차게 가르침을 받아왔던 덕목들이다.)

 이 글을 적어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막상 적으려 하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20여 년 내가 그 분을 가까이서 보아온 대로 적어 나가면 그 뿐이었다.

그런데도 보기에 따라서는 찬양 일변도의 글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서는 독자 제위께서 저의 양심을 믿어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귀한 사자를 우리 시대에 보내시어 50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올곧은 모습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이게 하시니.

아무쪼록 앞으로 언제까지나 그 모습 잃지 않으시기를 기도드린다.

 

 

 

 

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

세계로금란교회 담임목사 주 성 민 목사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저의 영적 아버지시자 스승님이신 김홍도 감독님을 처음 만나게 된 때는

감리교 목회를 하셨던 부모님이 백혈병과 암병으로 두 분 다 돌아가신 후,

10년 연속 신학대학 입시실패로 좌절했을 때입니다.

1990년 8월 첫째 주, 저는 부모님이 계신 천국에 가려고 자살을 결심하고 농약병을 들고

오산리기도원에 올라갔었습니다.

그 때 주강사님이었던 금란교회 김홍도 감독님의 설교제목은‘지옥은 있는가’였고

저는 그 설교를 통해 뜨거운 성령의 불을 체험하였고“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에 자살을 포기하고,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저 능력 있는 감독님 밑에서 훈련받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 했습니다.
그 후, 신학교에 들어가 금란교회 김홍도 감독님 밑에서 교육전도사로 훈련 받았던 시간은

제 인생을 변화시킨 가장 큰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감독님을 통해 배운 영혼구원과 성령의 역사는 부족한 제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었고,

그 가르침과 실천은 현재 세계로금란교회 부흥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를 이루신 김홍도 감독님의 성역 50주년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고 축복이며,

오직 영혼구원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하신 감독님과 사모님의 남다른 희생의 결과입니다.

이번 김홍도 감독님의 성역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부족한 제가 바라본 감독님의 모습을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1. 첫째로, 제가 본 김홍도 감독님은 참과 거짓을 분명히 알고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이 시대의 엘리야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 가운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에

고난을 당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아합왕이 바알신을 섬기는 이세벨과 혼인하여

온 백성에게 바알신과 아세라 신상을 숭배하게 하자, 엘리야는 아합왕과 싸웠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열왕기상 18:21)라고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바알신과 싸워 그가 기도하는 곳에 불이 내려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명을 모두 이기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열왕기상 18:40).
그러나 그 승리 뒤에는 축복이 온 것이 아니라

이세벨의 마음이 더 강퍅해져서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곳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쳤고,

그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 너무나 지치고 힘든 나머지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열왕기상 19:4).


이처럼 하나님 편에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능력의 사자 엘리야도

그 시대에 애매한 고난과 억울한 고통으로 공격당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하나님 편도 아니고 바알편도 아닌” 머뭇거리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진리를 위해 끝까지 싸운 것 같이

김홍도 감독님은 이단 사상과 거짓에 결코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위해 싸우다가 애매한 고난을 받으신 이 시대의 진정한 엘리야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 감독님은 감리교 신학교에 들어온 이단사상의 신학과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야 할 감리교단 신학교에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포스트모던적 해체주의 신학이

들어오면서 전 신학대학 학장이었던 고 모학장은“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성경적 참 복음을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속자가 아니라, 타종교를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화와 우상화를 버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감리교단 신학교 모교수는“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죽음과 공통성이 있다”고 하며,

“예수의 피가 거룩한 속죄의 피가 아니고,

동물들이 흘리는 피보다 월등하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며 엄청난 신성모독을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적 부활 사건을 사실과 다르게 주장하면서

감리교단에 이런 사상이 퍼지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의를 보고 김홍도 감독님은

“그렇다면 불교를 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이냐?”,

“예수의 피와 짐승의 피가 같을 수 있다는 말이냐?”

“만약 이런 이단교수들을 내쫒지 않으면 내가 감리교를 탈퇴하겠다!”고 하시며

참 복음과 진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셔서 우리 감리교를 이단 신학으로 부터 지켜내셨습니다.

 

- 그 후, 감독님은 수많은 공격을 당하셨고

목숨까지도 위협 당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신 분입니다.
제가 김홍도감독님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로 그냥 편하게 목회하실 수도 있었는데

불의와 이단사상과 맞서 끝까지 목숨 걸고 싸우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과 반대파들의 맹공격과

모 공영방송국의 편파적인 왜곡보도로 수많은 어려움을 억울하게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며 믿음을 지켰던 김홍도 감독님의 모습을 보면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절하며 진리를 위해 싸우다 고통당하신 주기철 목사님과

참과 거짓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알신과 싸웠던 엘리야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둘째로, 제가 본 김홍도 감독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100% 믿고 그 능력을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대는 기도는 하지만, 능력이 나타나는 기도,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아말렉군과 싸울 때 태양아 멈춰라! 라고 할 때 태양이 멈추었고(여호수아 10:1~14),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늘에 조그마한 먹구름이 보이더니 비가 내렸습니다(열왕기상 18:41~46).

이처럼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주의 종들을 보면 자연과 모든 환경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 움직였습니다.

 

- 감독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선포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금란교회 교육전도사로 임명되어 사역을 시작할 때에,

제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태풍이 올라와 100% 우리나라를 강타해 큰 피해를 입는다고 TV에서 연일 보도 하자,

김홍도 감독님께서는 금란교회 전 성도들에게 철야기도를 선포하셨고

온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태풍을 몰아내달라고 금식하며 목숨 걸고 기도했더니,

그 태풍이 새벽에 서울을 강타한 것이 아니라 동해안으로 빠져 일본으로 건너간 적이 있습니다.
또 김홍도 감독님이 서산에서 연합집회를 할 때도

태풍이 서산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태풍을 물리쳐달라고

서산연합성회에 모인 성도들에게 집중 기도를 시켰더니,

정말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때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된다고 하는 확실한 믿음을 배우게 되었고

(만약 태풍이 멈추지 않았다면 얼마나 민망할까하는)내 자신의 체면보다는

나라와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선포하시는

감독님의 그런 믿음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 변함없는 열정으로 영혼구원에 목숨을 바치시는

감독님의 헌신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제가 김홍도 감독님을 가까이 뵈면서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교회가 부흥되어 어느 정도 되면 편히 쉬실 만도한데

열정 있는 젊은 시절뿐 아니라 70세가 넘으신 연세에도 변함없이

영혼구원에 온 힘을 다하시는 김홍도 감독님의 모습을 뵈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는 말씀처럼

오직 천국의 면류관을 사모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시는

김홍도 감독님의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모습은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특별히 보혈의 복음과 영생, 십자가와 부활, 천국과 지옥에 대한 핵심적인 생명력 있는 설교 말씀은

앞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지켜주는 큰 힘이 되며,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한국과 전 세계의 영성을 이끌어 오신 김홍도 감독님의 성역 50주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김홍도 감독님께서 더욱 건강하셔서

한국과 세계의 영성을 계속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부족한 자의 글을 맺을까 합니다.

 

 

 


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

양주정암교회 담임목사 김 배 재 목사


사람은 저마다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감독님은 하나님의 열정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열정은 감독님을 구령열, 기도열, 헌신열에 불타는 분으로 세우셨습니다.
 
감독님은 먼저 구령열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감독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도하시고 설교하시고 심방하시고 목회하십니다.

이와 같은 구령열은 하나님의 말씀 준비로 이어집니다.

 설교 말씀 한 줄 한 줄에 기도와 정성을 쏟으십니다.

 한 영혼이라도 말씀을 듣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쏟으십니다.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힘을 기울여 말씀을 전하시면 쉬실 만도 한데

다시금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음 전하실 말씀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십니다.

이렇게 구령열에 불타는 감독님의 뜨거운 외침은 불기둥 설교 집으로 편찬되어 평신도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큰 은혜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경외심과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감독님은

교단내의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적인 사상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을 좌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일이며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오히려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감독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왜곡되고

거짓 복음이 퍼져가는 것을 참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갖은 위협과 협박, 시험 중에서도 복음을 바로 세우시고자 하는 감독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은

사람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자 어려움을 무릅쓰시고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습니다.

감독님은 구령열에 불타는 분이십니다.

 

 

감독님은 기도열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감독님은 목회학 박사학위 외에 또 다른 학위를 가지고 계시는데 바로 무릎학의 학위입니다.

기도의 사람이십니다.

교회가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른 신학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무릎학(Kneeology)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생명처럼 여기시며 살아오셨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수 시간씩 기도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선교 길의 피곤하신 중에서도 기도하시는 시간을 잊지 않으십니다.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중상모략을 당하시고 심지어는 모 방송사에서는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도 않고

왜곡된 방송으로 감독님을 음해할 때에도

감독님이 평안을 유지하시면서 이겨나가실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감독님은 기도열에 불타는 분이십니다.

 

 

감독님은 헌신열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교회를 향한 헌신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감독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헌신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감독님은 자신의 목숨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금란교회가 이처럼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된 것은

무엇보다 감독님의 교회를 향한 절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섬기시던 시골 교회를 위해 신혼여행과 결혼예물을 대신하여 교회 종탑을 세우시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기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때로는 어린 자녀들을 홀로 남겨둔 채로 사모님과 함께 교회 성도들을 돌보시며

성도들이 복 받고 잘되기를 진심으로 원하셨습니다.

또한 감독님의 소유보다 교회재정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서 사시던 집까지 하나님께 바치시며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시며 헌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나라가 종북, 친북 세력들에 의해 방향성을 잃고 어둠의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때 감독님께서는 분연히 일어나셨습니다.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공산주의의 해악과 그것이 왜 사탄의 사상인지를 불기둥의 말씀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할 때에 이 나라가 가는 길을 보시며 눈물로 안타까워 하셨고,

신변의 위협과 협박에도 나라가 공산화의 길로 접어들면 절대 안 된다는 일념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오셨던 것입니다.

감독님은 헌신열에 불타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감독님께서는 하나님의 열정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열정이 감독님을 구령열, 기도열, 헌신열을 품게 하셨고

오늘의 금란교회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감독님의 손을 잡아주셔서 오늘날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후로도 더 큰 능력의 손으로

붙잡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본 김홍도 목사님

미얀마 선교사 김균배, 최기숙


존경하는 김홍도 감독님 그리고 사모님!
모든 열방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문안과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십 수 년이 아닌 지난 반세기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감독님과 함께하시어

지난 50년의 긴 세월을 그토록 존귀한 성역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영혼 구령의 불타는 열정으로만 한민족 복음화 운동과 지구촌 세계 선교를 위하여

불철주야, 노심초사 정말 분주하시도록 감당해 오시느라 건강을 살펴보실 여념이 없이

매일, 매시간, 순간을 달려오신 감독님이십니다.

오랫동안 군부 사회주의 지배 체제와 현대 불교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우상의 나라! 미얀마에서

한국 교회의 거목이시며 한민족의 지도자이신 정암 김홍도 감독님을 모시고

금번 이곳에 <미얀마 개신교 선교 200주년 기념 축하 성회>를 개최하고

성공적으로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혼신을 다하시어 열정적으로 선포해 주시고 전해주신

김홍도 감독님 능력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연인원 4백여 명의 참석한 목회자들 모두에게는 감동과 감격스러운 풍성한 영혼의 양식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들 미얀마 개신교 목회자들에게는 역사적이며 기념비적인 말씀 집회였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목회 현장에서 적응하면서 여호와의 부흥을 속히 이룰 수 있음을 소망해 볼 수 있는

커다란 도전과 깨달아서 배움이 되고 성숙해지는 진정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김홍도 감독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더욱 더 강건 하십시오!
부디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정암 세계 목회자 말씀 훈련원>을 통해서

지난 반세기를 붙들고 앞서 인도해 오신 한국 교회와 한민족을 이제는 뛰어 넘으시며

지구촌에 흩어진 열방의 교회들과 현지의 목회자들을 불기둥의 말씀으로

다시 세워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저들이 거하는 그 현장에서 강력한 말씀과 무릅 신학으로 무장토록 하여서

최전방을 사수하는 원주민 목회자들이 진정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정암의 깃발을 올려주시옵소서!

 

 

존경하는 김홍도 감독님!
거듭거듭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자상하시며 귀하신 사모님과 범사에 늘 강건만 하시옵시며

승리하시기만을 간절히 비오며 저희들도 감독님의 성역과 금란 제단의 지속적인 부흥을 위하여

두 손 모아 기도드리겠습니다.

  • ?
    행복하세요 2013.05.28 19:05

     

    너무도 많은 인생 굽이 굽이를 넘어 오늘까지 이른 교회의 머리 위에 세우신 성령의 역사가 이땅 망우리 골짜기에 교회를 세우사 하나님의 종 김홍도 목사 성역 50주년을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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