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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5.04.07 16:10

19890604 참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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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89-06-04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요한복음 4장 23~24절, 역대하 3장 1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890604-16. 참된 예배.hwp

16. 참된 예배

요한복음 4장 23~24절, 역대하 3장 1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인간이 보내는 모든 시간 중에“예배드리는 시간”보다 더 귀중한 시간이 없고, 인간의 모든 집회 중에 “예배의 모임”보다 더 엄숙하고 귀중한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은 한 국가의 모임이나 대통령이나 수상 등의 국제적인 회합보다 더 귀중하고 엄숙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지구를 굽어 살피시며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본문에“…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어느 곳에 머물 때나 언제나 성막을 먼저 치고 동서남북으로 각 세 지파씩 12지파가 장막을 치고 생활했습니다. 이는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된 우리 기독교인들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언제나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생활을 해야 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라면 가고 머물라면 머무는 생활을 했는데 어디를 가든지 열 번이면 열 번 다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2:7~9)고 했습니다.

 이렇게 제단생활을 충실히 했다는 것은 예배 중심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예배, 즉 제단 쌓는 일을 소중히 여겼으면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독자를 번제물로 제단에 바치려고까지 했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 자기 목숨보다 귀중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겠습니까? 결국 그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영 육 간에 엄청난 축복을 받았고 족보상으로는 하나님의 외아들을 받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축복받은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다가 복을 받았으나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 예배를 무시하고 제단 쌓는 생활을 하지 않고 돈과 명예를 얻어 소돔성의 시장도 하고 큰 부자가 되었으나 결국 그 재산도 다 불타 버리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패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배를 경홀히 하는 신자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벼슬을 해도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예배 중심 생활을 하면 실패 같아도 성공이지만, 예배를 멀리하면 성공 같아도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잘 아는 대로 미국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자기들의 집을 짓기 전에 예배당을 먼저 짓고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또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어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려서 오늘날 우리들도 11월 셋째 주일을 감사절로 지키는 유래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감사절을 전 국민이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3백년밖에 안 된 미국이 세계 최대의 부강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미국의 국민들은 세상 향락에 끌려서 다시 예배를 무시하고 교회는 텅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도 서서히 떠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미국인이 탄식하기를“우리의 증조부들은 주일을 거룩한 안식일이라고 했는데, 조부들은 그냥 안식일이라고 했고, 아버지 때에 와서는 일요일이라고 했으며, 오늘날 우리들은 주말(weekend) 이라고 부릅니다”라고 미국인들의 신앙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배와 인간의 삶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예배를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령한 예배라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께서“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예배(spiritual worship)를 드려야 참된 예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지 물질이나 육체로 구성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 덩어리만 나와 앉아 있다고 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고 성경 지식이 있다고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사람은“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영”(Sprit)이 가장 중요하고 우리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란 껍데기도 중요하지만 흰자위가 더 중요하고 흰자위보다 노른자위가 더 중요한 것처럼 사람의 육신보다 혼(정신)이 더 중요하고, 혼보다 “영”이 더 중요합니다.

 영은 영원한 존재이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심령을 기울여 예배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배란 또 한편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주의(formalism)을 미워하십니다. 예배에는 거룩하고 장엄한 형식(form)은 있어야 하지만 형식주의나 형식주의자(formalist)가 되어선 안 됩니다.형식주의는 곧 외식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일 미워하시고 저주까지 하시며 책망한 사람들이 바로 외식하는(위선자)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선 안 됩니다.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설교하며 헌금하는 것은 모두 가증한 것입니다. 또 영적인 예배란 성령을 모신 예배, 성령님이 역사하는 예배입니다. 성령을 내어 쫓아버리고 사람들만 모여 예배하는 인본주의 예배는 하나님이 안 받으십니다.가장 신령한 예배는 성령 충만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성령님을 내어 쫓아버리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떤 흑인이 여행을 하다가 백인들만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종차별 하느라고 굳이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쫓겨나 계단에 앉아 머리 숙여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왜 우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백인들이 인종차별 하느라고 예배당에 못 들어가게 해서 슬퍼서 울며 기도하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얘야, 너 슬퍼하지 말아라. 그 예배당엔 나도 아직 들어가 보지 못 했단다”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성령님을 무시한 형식적인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으며 그런 교회는 부흥될 수도 없습니다. 항상 영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2.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야 합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진심과 정성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진정(truth)으로 드리는 예배의 반대는 거짓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중심을 기울이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거들떠보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실 뿐 아니라 진실하신 분이므로 거짓은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이 거짓으로 찬송하고 거짓으로 기도하고 거짓된 마음으로 설교하는 것은 모두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는 언제나 진실한 마음과 정성된 마음으로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해야 합니다. 설교도 진실한 마음으로 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본의아니게 잡념에 사로잡히거나 딴 생각을 하다가 헛된 예배를 드릴 때가 있는데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 들로 산으로 헤매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경우가 있는데 참으로 죄송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목소리를 내서 내 소리가 들리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정성과 희생이 있는 예배라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예배인“제사”(Sacrifice)라는 말에는“희생”이란 뜻이 있습니다. 물론 소나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을 희생시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사에는 정성과 희생이 있어야 참된 제사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에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 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 터가 바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리던 그 모리아 산 제단자리요, 또 세월이 흐르다가 다윗 왕이 군대의 수를 하나님보다 더 믿고 교만하다가 3일 온역의 상처를 받아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때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제사 드리던 곳입니다. 이때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 드리려고 했을 때 오르난이 다윗 왕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말하기를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드리겠나이다”하고 모두 다 공짜로 드린다고 할 때(대상 21:23) 다윗은 이를 거절하며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대상 21:24) 하고 상당한 값으로 사서 하나님께 값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온역이 그쳤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브라함이 귀중한 독자를 희생하여 제사드린 곳이고 다윗도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값진 제사를 드린 곳이며,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곧 예배드리던 예루살렘 성전터가 된 곳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정성과 희생이 깃들여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성의한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고 했습니다. 정성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제사를 소중히 여겼으면 독자까지 바치려 했겠습니까? 솔로몬이 1,000번제를 드리고 난 뒤 하나님이 나타나 무엇이든지 줄 터이니 구하라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1,000번제를 양 천 마리를 한 번에 드릴수도 있었겠으나 만일 하루에 한 마리씩 드렸다면 거의 3년을 드렸다는 것인데 얼마나 정성과 희생이 컸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도 희생하고 물질도 희생하며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바쳐야 합니다.

 내 할 일 다하고 등산, 낚시, 골프로 내 놀 것 다 놀고 시간이 남아돌아가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 주일을 없애기 위해 7일에 하루 쉬던 것을 10일에 하루를 쉬게 했습니다. 볼테르(Voltare)는 “주일을 없애기 전에는 기독교를 박멸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했습니다. 10일씩 사람이나 짐승을 몰아 일을 하게 하니까 결국 무리가 와서 쓰러지는 일들이 많아져서 다시 7일에 하루를 쉬게 했다고 합니다. 놀러 다니고 TV보면서 예배 안 드리는 것은 아직 예수를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정성과 희생도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내게로 나올 때에 공수(빈손)로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했습니다. 넉넉한 사람은 넉넉한 대로,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대로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이라도 정성과 희생이 담겨져 있을 때 주님은 제일 많이 바쳤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목회를 하며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가만히 보면 정말 내가 깜짝 놀랄 만큼 옥합을 깨뜨리는 사람은 반드시 본인이나 그 자손대에 가서라도 복 받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칠 수 없을 때 바치면 더욱 정성이 담긴 것이며 십일조 할 수 없을 때 굶더라도 십일조하면 바로 하나님께 큰 점수를 따는 기회가 되고 복 받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돈이라도 제일 먼저 드리고 새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전건축을 하게 되었는데,한 장로님이 3,000만 원 건축헌금을 내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었으나 성전이 완공이 된 후에도 내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목사님이 헌금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도리어 그 장로가 목사님에게 삿대질하며 대드는 순간 그만 중풍으로 그 자리에 쓰러져 지금까지도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에는 옷도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신발도 제일 좋은 것을 신고 몸도 깨끗이 하고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정성어린 예배가 됩니다. 영적인 예배, 진실한 예배, 정성과 희생이 담긴 예배가 참된 예배요, 하나님께 상달되는 예배가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1989년 6월 4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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