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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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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8년 7월 2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3~4)

26. 겸손의 생활화
빌립보서 2장 1~11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3~4)
 아무리 훌륭해도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인격적인 죄가 바로 교만입니다. 신자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교만하다면, 차라리 그것을 못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한 자만 못한 것입니다.

 

1.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고 했습니다.

 

2. 교만하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멸시와 욕을 당하지만 겸손하면 영예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수룩해 보여도 지혜 있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은 똑똑한 것 같지만 미련한 사람입니다.

 

3. 교만하면 패망케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고 했습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명예, 재물, 권세, 지위를 아무리 얻었다고 해도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그것을 거두고 빼앗아 가십니다. 그 사람은 실패와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올라갈 때, 성공할 때 조심해서 교만을 물리치고 늘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도 은혜도 오래 유지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종지(춘틀)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고 했습니다. 겸손이 결핍되면 아름다운 것도 우아한 것도 모두 싫증나는 것이요, 가증한 것이 되고 맙니다. 겸손은 가장 고상한 덕행이며 모든 도덕의 기초가 됩니다. 아무리 다른 도덕을 다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겸손이 없으면 헛것입니다. 겸손의 결핍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고 타락하게 된 동기는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한 교만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보면 교만하면 마귀의 정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겸손을 어떻게 인격화하고 생활화해야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겉으로 손이나 싹싹 빌고 얼굴 표정을 겸손한 척 한다고 해서 그것이 겸손이겠습니까? 겉으론 겸손한 것 같아도 속으로 교만한 자는 위선의 죄를 하나 더 짓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마음이란 겸손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생활이 겸손한 생활을 나타내는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마땅한 대우를 기대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똑같으신 분이나 이 세상에 오실 때 사람의 몸을 입고,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큰 표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되 왕가에 오셔서 비단 이부자리를 덮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지만 그 거룩한 손으로 제자들의 냄새나는 더러운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4, 1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우리가,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마땅한 대우와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겸손의 은혜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생활이란 내가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불평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 12:16)고 했습니다. 지위가 높을지라도 마음은 높은데다 두려고 하지 말고 낮은 데다 두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 대통령 중에 포앙카레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쏘버대학의 라비스 박사의 교수 50주년 축하식에서 학생들 틈에 포앙카레 대통령이 끼어 앉아 있었습니다. 라비스 박사가 답사를 하다가 포앙카레 대통령이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 우리나라 대통령이 저기 말석에 앉으셨습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라고 그랬더니 “나는 박사님의 제자로서 축하하러 온 것만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하고 굳이 사양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특권 계급의식을 버리고 평민 의식으로 행동할 때 더욱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이 멋있는 사람입니다. 쥐꼬리만한 벼슬이나 학식이나 재산을 가지고 우쭐대는 사람은 사실은 남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 그릇이 못됩니다. 교회도 교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분쟁이 그치는 날이 없고 자꾸 갈라지고 쪼개지기 쉬운 것입니다. 백 명도 안 되는 교회가 날마다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는 가운데 마귀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자기 멋대로 좌지우지하고, 전도사는 전도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주도권을 잡고 좌지우지하는 교회는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제 갓 신학교를 나온 새파란 전도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고 충성하신 나이 많은 장로님을 존경하며 알아줄 줄 모르고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하고 교만하여 횡포를 부리고 조심할 줄 모르면 벌써 훌륭한 목사가 되기는 틀린 것입니다. 또 자기가 장로라고 교회 주인 행세를 하며, 젊은 목사, 전도사 알기를 집에서 부리는 머슴처럼 알고 행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의 교회도 아니고 장로의 교회도 아닙니다. 교인들의 교회도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조심 교회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어느 곳에 부흥회를 갔더니 80이 넘으신 장로님이 새파란 전도사 앞에 무릎을 꿇고“예”, “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인격이 얼마나 높아 보였는지 모릅니다. 대체로 평신도가 집사가 되면 목사의 가시 노릇 하려는 사람이 있고, 집사가 권사가 되면 금방 태도가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사 때는 안 그랬는데 장로가 되니까 교만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언제나 낮은 데 마음을 두는 겸손한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고 하셨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 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고 했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산꼭대기에 올라가 금식하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엔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쳐다보지를 못했지만 자기는 이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세상에서 권력, 재물, 지위가 있어도 없는 것같이 생각하는 겸손한 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②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닫는 생활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라고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죄인이며 허물과 약점이 많은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사람은 자연히 그 생활이 겸손해집니다. 사도바울 같은 위대한 사람도 스스로 말하기를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같다고 했고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8~9)고 했습니다. 이는 자기의 지난날의 죄와 허물과 실수를 생각하면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속에는 별스러운 죄와 허물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체하고 교만한 자가 더 가증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했습니다. 죄와 실수가 없고 교만한 자보다는 차라리 실수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겸손한 자가 더 낫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아서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솔직하고 정직한 것 같아도 그 속에 교만이 차 있는 것입니다. 참 겸손은 하나님만이 전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전부요,  자기는 나타내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구애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영광을 단념해 버리는 것이 겸손이요, 나아가서 자아를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 겸손의 극치입니다. 모든 일에‘나’가 많이 나타나는 사람은 아직도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다 교만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서재에 장식을 하느라고 상패, 공로패, 감사패 등을 쭉 늘어놓았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저것도 나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어 다 치웠습니다. 치우면서도 ‘그동안 오고간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겠나’하는 생각에 한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에게 만족하고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 줄 알고 더 낮아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과 허물과 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③ 겸손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매사에 하나님의 뜻만을 좇아 행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시며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겸손히 복종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처사에 불만이 많고 불평을 많이 합니다. 불평 불만이 많아지면서 늘 불안하면 교만의 병이 들었다는 징후입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 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 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 37:1~8)고 했습니다.
 겸손이라고 하는 말‘humility’는‘hurllus’,즉 땅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땅이 하늘보다 낮음같이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또 남의 교만을 많이 발견하고‘저 사람은 교만해’, ‘거만해’하고 비판을 하는 것도 그 사람 자신 속에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교만은 보지 않고 남의 교만을 보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죽여 버린 겸손한 자는 그렇게 날카로운 비판의 눈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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