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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10.11 15:08

05권 - 24. 성도의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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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8년 6월 18월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24. 성도의 근심
스가랴 9장 1~8절, 고린도후서 7장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하고 말씀했습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 혹은 세상 근심과 경건한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 육적 근심은 하지 말라고 성경에 말씀했지만 영적 근심은 우리가 해야 되고 또 유익한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적인 근심, 세상적인 근심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과 심령을 다 해롭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 근심 배후에는 분명히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 잘하던 사람이 근심 걱정이 많아지면 그것은 벌써 믿음의 상태가 건전치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근심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가 있으며 성령 받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경건한 근심, 영적 근심은 유익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여도 근심과 눈물이 없이는 못사는 세상인데 기왕 근심하며 살 바에는 영적 근심, 경건한 근심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본문 말씀 에스겔 9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사자들을 불러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는데 일곱 사람 중 여섯 사람이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었는데 허리에 먹 그릇을 찼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 가는 베옷을 입고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성읍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 9: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에게는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고 했습니다. 이마에 표 있는 자, 즉 그 백성들의 가증한 죄악을 인하여 탄식하며 울던 자는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됐고 늙은 자로부터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마땅히 근심하고 탄식해야 할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가 무감각해서 근심하고 탄식할 줄을 모를 때에 누구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 근심이 아닌 마땅히 가져야 할 영적 근심, 경건한 근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근심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해서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고 근심하고 탄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자기의 죄를 인해서 애통하고 회개하고 근심할 줄 알아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팔복 중에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하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고 근심해 보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 때문에 애통하는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영안이 밝아질 수가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자기는 이중인격자라고 탄식하며 근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어느 날 자신의 죄를 너무 깊이 깨닫고 졸도까지 했다고 합니다.죄를 짓고도 근심할 줄 모르고 애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미 화인 맞은 심령이요 영적 문둥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하고 탄식했습니다. 다윗은 범죄 한 후 회개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정상적인 영적 상태는 언제나 자신에 대하여 약함과 무능함과 부족함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까?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려고 안타까워하고 근심하는 자가 참된 기도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그릇이 됩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끊임없이 진단해 보고 근심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 생활에 애쓰는 자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진실한 성도가 됩니다.

 

2. 교회를 위해서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진실한 성도라면 내 집 살림 못지않게 주님의 피로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근심할 줄 알게 마련입니다. 이 귀한 교회를 위해서 근심하며 안타깝게 기도하고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이 교회를 사랑하고 책임감을 느낄 줄 모르면 참 믿음을 소유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담 없이 예수를 믿는다고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교회에 등록은 하지 않고 등 뒤에서 예배만 드리고 살짝 피해 달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미련한 것이요, 지혜로운 처사가 결코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힘껏 책임을 지고 부담감을 가지고 해 나가야 믿음이 자라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곳에는 물이 아주 세게 흐르는 강이 있는데 이곳을 무사히 건너려면 큰 돌을 등에다 짊어지고 건너야지 그렇지 않으면 떠내려가서 빠져 죽고 만답니다. 그래서 사람들 은 무겁고 등이 아프지만 큼직한 돌맹이를 힘껏 지고 건넌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받은 재능과 역량대로 책임을 지고, 교회 일을 나의 일처럼 근심하며 걱정하며 일하며 살아야 믿음도 자라고 복도 받습니다.
 학개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졌는데 백성들이 자기들은 완벽한 집에 거하면서 아직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회피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학 1:5~6, 9~11).
 교회를 근심하며 돌보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큰 손해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내 집보다 주님의 몸된 교회 일을 더 염려하고 근심하며 책임감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가 참으로 진실한 성도입니다.
 어떤 이는 교회 일을 해도 자기 이름과 명예를 위해서 하고 생색이 안 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만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3. 나라를 위하여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를 위해 근심하고 사랑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하고 물을 때에 “가이사(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장차 죄 값으로 멸망당할 자기 나라를 내려다보시며 울며 탄식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정말 나라가 안전하고 튼튼하기 위해서 염려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십시오. 토끼 꼬리만한 나라가 그것도 바다 끝에, 절반은 붉은 무리들이 적화 야욕을 품고 남침의 기회를 노리며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도사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 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북한을 조정하며 편들고 있고, 또 그 뒤에는 소련이 한반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침을 흘리며 북한을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믿고 의지하고 있던 미군은 철수한다고 합니다. 마치 엄마가 걷지도 못하는 젖먹이를 떼어놓고 친정으로 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미국을 믿을 수도 없고 유엔을 의지할 수도 없습니다.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비참하게 공산당에게 망해 무참히 학살당하고 나라를 잃고 슬퍼 통곡하는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정신차리지 못하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사리사욕만 채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타락해서 음란하고 패역한데다가 하나님이 가장 가증히 여기는 우상은 날로 늘어 가고 있으니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되려고 하는지 정말 우리는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보다 수십 배 더 비참한 참극이 벌어져서 아름답게 건설한 대한민국은 다시 잿더미가 될 것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은 굶어죽고 밟혀죽고 총에 맞아 죽고 아니면 고아가 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교회도 나갈 수 없고 신앙생활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데모만 하던 월남의 목사, 신부, 중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염려하고 나라가 안전하고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나라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2)고 말씀했습니다. 고요하고 평안한 가운데 생활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국가의 안전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성경이 명하는 바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망하면 고요하고 단정한 중에 신앙생활도 바로 못하고 구령사업, 선교 사업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나라를 위해 고난의 길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백성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이중국적을 가졌으므로 천국을 위해서도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서도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하기를“자기의 인생과 자기의 종족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뿐 아니라 생활을 영위할 자격조차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① 성도들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 5:14)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고 했습니다.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고 했습니다. 의인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안전하고 튼튼할 수가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라도 의롭게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② 힘써 전도하고 복음 사업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사상인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도 기독교 사상이요, 무신론인 마귀의 사상을 이기는 것도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을 제일 미워하고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산당을 이기려면 복음화가 되어야 합니다. 죄악과 부패를 막는 것도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고 거듭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18세기의 영국은, 낮에는 실업자와 거지들이 거리를 메웠고, 밤에는 강도와 절도들이 들끓었고, 몇 집 건너 한 집이 술집이었던 완전히 소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존 웨슬리가 은혜 받고 구령애에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해 영국을 무혈혁명으로 구원했다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선교 사업을 많이 한 나라가 망한 적은 없습니다. 선교 사업을 힘쓰는 나라는 모두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말세에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민족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면 결코 월남이나 크메르같이 망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③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근심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죽게 되었을 때 3일 동안 금식 명령을 내리고 기도하여 죽게 된 백성을 살리고,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 도리어 죽음을 당한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기 아래 있는 나라는 망해도 무릎 위에 있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까지 무사한 것은 분명히 새벽마다, 밤마다 부르짖고 기도하며 산골짜기마다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밤새워 기도하는 성도들의 힘인 줄 믿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해서 근심하고 기도할 줄 아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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