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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12.20 15:08

07권 - 12. 섬기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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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80년 1월 6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12. 섬기는 생활
마가복음 10장 35~45절, 마태복음 22장 37~40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크리스천의 생활은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아래로 이웃과 형제를 잘 섬기는 만점 생활입니다. 한마디로 크리스천의 생활은 섬기는 생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형제와 이웃에게 봉사 잘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범적인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에 서비스(service)란 말은 예배란 뜻도 있고, 봉사, 혹은 섬긴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과 서비스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고 말씀하시면서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성경의 대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금년도의 표어를‘섬기는 생활’이라고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모든 복과 행복을 하나님이 다 허락해 주십니다.

 

 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에 어긋난 삶은 올바를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하듯이 목적론적으로 말할 때 모든 피조물은 다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 마이크, 종, 강대상, 시계, 다 자기 혼자 있기 좋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존재의 목적이 있는데, 인간도 장가들고 시집가고 먹고 자고 자식 낳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에 어긋난 생활은 다 그릇된 생활이요, 복 받지 못할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보다,  돈을 벌고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중요 하거나 앞세울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②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주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까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24장로와 흰 옷 입은 무리들의 모습과 말을 들어 보십시오.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도 우리의 영생이 아니라, 영생을 얻은 후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③ 우리는 모두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이란 원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은 토지분배도 받지 않고, 다른 직업도 가져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모든 크리스천은 다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개신교에서는 마틴 루터 (Martin Luther)가 주장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 중간 중보자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부도 마리아도 우리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죄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교회 제도상 사도나 교역자의 반열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많은 사람 가운데 복음 전할 사도들을 특별히 택해 부르셨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데”라고 했는데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기름 부어 세운 주의 종들의 반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사도들이나, 오늘날 교회의 교역자들이 구약시대의 제사장들과 같이 하나님과 평민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제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시고 운명하실 때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이 헐린 것입니다.
 전에는 지성소에, 대제사장만이 일 년 한 차례씩 피를 가지고 들어갔으며,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면 즉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방울을 달아서 소리 나는 예복을 입고 또 몸에 끄나풀을 매어 놓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방울소리를 듣고 제사장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고,또 죽더라도 그 맨 끈으로 끄집어내야지 다른 사람이 들어갔다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엄하던 지성소의 휘장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헐어버리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음과 동시에 영원히 제사 드릴 수 있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신자는 다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천은 교수이든 농부이든 의사이든 간호원이든 노동자이든 다 본업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은 본업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세상 직업은 부업입니다.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은 돈 많이 버는 것이나 유명해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생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수는 가르치는 것이 부업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본업 입니다. 의사는 병 고치는 것이 부업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본업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고 한 바울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겨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야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영광이요, 가장 큰 특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케 하고 영광 돌리는 일로만 생각하는데, 실은 우리에게 더 큰 영광입니다. 우리가 헌금드릴 때 하나님을 위해 큰 호의나 베푸는 것 같이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도리어 우리에게 영광이요, 큰 특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겸손과 감사로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요, 특권입니다. 복음의 최종 목적은 인간이 구원받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데 있습니다.
 
 ④ 또 이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나, 그 나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세계를 다녀본 사람은, 기독교가 들어가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는 문명하고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나라는 복이 있다”(시 14:15)
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졌으므로 하나님을 찾아 만나기 전에는 별짓을 다해도 참 만족과 행복은 없는 법입니다.

 

2.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생활 
 예수님은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놓고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간청하기를 “주의 영광중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라고 했는데 즉 좌정승, 우정승을 자기들이 해먹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이것을 괘씸히 생각하고 분이 가득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꼴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쓴 잔을 먼저 마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을 섬기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야 더욱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칼빈은 말하기를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도, 장로·권사·집사도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교회 직분이 높아지면 으스대고 섬김을 받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회 직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섬기는 목사가 목회에 성공합니다.
 예수님은 교훈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그렇게 생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그 거룩한 손으로 더러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상전이 아랫사람을 섬기면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금년, 여러분이 복을 받으려면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하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고 하였고,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으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가 영생을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 알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 서신에서 말하는 형제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같은 생명을 받은 크리스천들은 믿지 않는 형제, 친척보다 더 반갑고 사랑스러워져야 정상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꼴도 보기 싫던 신자들이 예수 믿고 은혜 받고 나면 예수 믿는 사람, 성경, 찬송을 들고 있는 사람만 봐도 친형제보다 더 반갑고 사랑스러워지는 법입니다. 안 믿는 형제 친척보다 예수 믿는 남이 더 반갑고 사랑이 가게 마련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신자들이 밉고 꼴 보기 싫다면 아직 영생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의 확신이 없으면 영생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본성과 뼈와 골수에 타고난 친밀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끼리 미워하거나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 되고 가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1~12)고 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싸우지 말고 부드러운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말을 하고 온화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여야 하겠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고 했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가 본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는데, 지옥이라는 곳에 가보니까 좋은 음식상 앞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는데 모두 야위고 허기가 져서 볼품없이 앉아 있더랍니다. 가만히 보니까 손들이 전부 뻗친 손이 되어서 음식을 집어 입에다 넣지를 못하고 보고만 있으려니까 바싹 말라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천국에 가보니까 지옥에 차려 놓은 음식상과 같이 좋은 음식상 앞에 죽 둘러앉아 있는데, 손들은 역시 똑같은 뻗친 손이었지만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기름기가 돌고 살이 쪄 있더랍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뻗친 손으로 자신은 못 먹더라도 서로 앞에 앉은 사람을 먹여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날, 어느 시골집에서 아들이 “궁금한데 시루떡이나 해 먹읍시다”라고 하자 며느리가 쌀 방아를 찧어다 떡시루를 앉쳐 놓고 불을 때는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사랑해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주고 있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솥이‘땅’하고 터졌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아이구, 이 늙은이가 떡을 빨리 먹으려고 불을 너무 지폈더니 솥이 터졌구나”하고, 며느리는 또 며느리대로 “어쩌면 좋아요, 내가 솥에 물을 맞추지 못해서 솥이 터졌어요”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얘야, 젊은 사람이 뭘 알겠니. 내가 물을 맞추어 부었어야 했을 것을”하고 며느리를 위로하고, 물 지개를 지고 들어서던 하인은 “아이구 마님, 이건 내 책임입니다.게을러서 물을 많이 길어 놓지 못한 탓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데 방에 앉아 있던 아들이 나오면서 “이것은 모두 내 탓입니다. 왜 오늘따라 떡을 해 먹자고 했는지…”라고 하며 서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며 위로했답니다. 솥은 ‘땅’하고 터졌지만 그 가정의 평화는 터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게 뭉쳤다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는 생활을 할 때만이 참 평화가 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 카뮈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학위만도 네다섯 개가 되는 사람인데 아프리카 람바레나에 가서 흑인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주며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적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두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벨상 상금을 가지고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흑인들을 치료해 주는 생애를 보냈습니다. 오늘날 20세기의 태양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카뮈는 노벨상 상금을 가지고 한적한 교외에다가 멋있는 별장을 짓고 신나게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전주를 들이받고 즉사해서 그의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남을 섬기는 것이 바보 같고 밑지는 일 같아도 이것이야말로 보람 있는 생활이요, 복된 생활입니다. 남을 섬기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연히 자기도 행복해집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빌 2:3)고 했습니다. 섬기는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됩니다. 교만은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권세가 있으면 교만이 권세를 따라오고, 재산이 있으면 교만이 재산을 따라오고, 지식이 있으면 지식을 따라오고, 은혜를 받으면 신령한 교만이 따라옵니다. 거머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날마다 애통하며 무릎 꿇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존 트랩(John Trapp)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다른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는 것들이지만 교만은 하나님 앞에 대드는 죄악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히 섬기는 생활, 사랑으로 생활을 합시다. 이것이 크게 되고 으뜸이 되며 복 받는 비결입니다.
 금년에는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아래로 이웃과 형제를 잘 섬기는 생활을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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