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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08.24 14:25

03권 - 29. 성령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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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7년 1월 23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29. 성령의 그릇
마태복음 16장 13~34절,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어느 목사님이 강단에서는 참 은혜스러우신데 집에만 일단 들어오시면 화를 내시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사모님이 보다 못해서 하루는 보따리를 싸더랍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어디를 가려고 하냐고 물어보니까“당신은 강단에만 서면 천사가 되는데 집에만 오시면 마귀가 되어버리니 이거야 어디 살겠습니까. 그러니 이젠 아예, 강단에 올라가서 삽시다.”하고 말하시더랍니다.
 이것은 목사님이 위선자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그릇과 같아서 말씀을 전할 때는 언제든지 성령께 사로잡히고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니까 은혜의 말씀 성령의 말씀을 잘 전하지만, 일단 강단을 내려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육신의 본성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성령의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1. 사람은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자체는 선한 것이나 신령한 것을 스스로 만들거나 생산할 수 없는 단지 담아 넣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릇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말씀하셨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속에 성령님께서 내재하셔서 예수님이 안에 계셔서 역사하실 때는 그것이 보배를 행하도록 나타나기 때문에 신령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질그릇 그대로 나타날 때는 흉측하고 보잘 것 없는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본문에 수제자 베드로는 잠깐 동안에 천추에 남을 큰 칭찬을 주님께 받기도 하고“사단아 물러가라”하는 수치스러운 책망을 받은 사실이 불과 몇 절 사이에 나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묻기를“세상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더러는 세레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하고 대답하니까, 그러면“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실 때“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베드로가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뜻에 꼭 맞는 대답을 할 때 주님은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반석 천국 열쇠는 인간 베드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속에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 고백이 천국 열쇠와 천국의 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인간 베드로의 혈육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셨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인간 베드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신앙 고백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다음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고 삼 일만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시니까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과 인정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잘했다 싶은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고 책망했습니다. 인정스럽고 사랑 많은 베드로의 전하는 말에 냉정하게“사단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베드로는 인간 혈육이 잘나서 신앙 고백을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 같았으나 사실 그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였고 인간적인 사랑과 인정으로 베드로가 간하는 것 같았으나 그 속에 칭찬 듣고 우쭐하는 동안에 마귀가 들어가서 마귀의 조롱을 받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을 영안으로 보시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하나의 그릇이었지 스스로 잘 믿을 수도 없고 선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한 번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심을 보고“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할 때“오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얼마 동안 물 위를 걸었으나 얼마 안 가서 바람과 물결을 보고 다시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그릇임을 철두철미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질그릇입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질그릇입니다. 떨어지면 깨지기 쉽고 깨지면 무가치하고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육성을 지닌 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주님이 계셔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때 보배롭고 귀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 스스로는 꽃도 피울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고 오직 포도나무에 굳게 붙어 있으면 나무줄기에서 진액이 올라와서 저절로 꽃피고 열매 맺는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은 스스로 신령한 것도 선한 것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만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수다스럽고 변덕스러운 것을 보면 질그릇 같은데 전도하고 기도할 때 보면 보배 같고, 신경질 부릴 때는 질그릇 같은데 설교 말씀을 전할 때 생명의 역사가 나는 것을 보면 보배 같고, 거만한 것 같고 무정한 것 같아서 질그릇 같은데 헌금하는 것을 보면 보배로운 믿음이 있고, 제 자랑만 하고 말만 잘하는 것 같은데 영혼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을 보면 보배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한 그릇이요 참으로 신령한 것 선한 것을 나타내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하셨습니다. 우리가 두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례미야 33장 2~3절 말씀에“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의지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그릇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2. 자신에 대하여 절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절망을 느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때 보배로운 것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줄로 알면 큰 오산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 보면“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절망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The end of self is the beginning of God).”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가 됩니다(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
 고린도후서 3장 5절에 보면“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 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인간의 힘으로 의롭게 되어보려고 했으나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9~24). 바울은 절망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과 성령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 속에 아직 죄성이 남아있고 부패한 육성이 있다 해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넘어지고 실족함이 있다 해도, 때때로 죄를 지었다 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씀했습니다.
 자신이 의롭게 되려는 상태에서 절망을 느껴야 보혈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무능하고 허물과 결핍 투성이임을 느끼고 절망해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사단의 찌르는 가시(질병)를 뽑아 달라고 간곡히 세 번이나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병은 안 고쳐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질그릇과 같이 약하고 무가치한 깨지기 쉬운 그릇임을 깊이 깨닫고 절망할 줄 알아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절망해야 합니다. 다음에

 

3. 성령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그릇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환영하고 믿고 의지할 때 성령께서 내 대신 역사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육신으로 돌아갈 때는 질그릇의 본성이 나타나고 성령께 의지할 때는 보배로운 은혜가 나타납니다.
 성령께서만이 중생케 하시고(요 3:3~)
 성화케 해 주시고(고전 6:19)
 확신도 주시고(엡 4:30; 요 10:28~29; 롬 8:14~15)
 연약함을 도와 주시고(롬 8:26)
 기도해 주시고(요 14:16~; 사 66:13)
 깨닫게 해 주시고(고전 2:10~12)
 다시 살게 해 주십니다(롬 8:11).

 성령께만 순간순간 의지하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고 우리 육신적으로 절망하고 성령께만 시시각각으로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고 열매 맺는 생활인 것을 깨달으시고, 육신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만을 모셔드리고 의지하시는 성령의 그릇이 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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