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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08.17 13:28

03권 - 18. 바울의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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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6년 10월 17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18. 바울의 경건
사도행전 16장 19~34절, 디모데전서 4장 8절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 돈독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을‘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경건’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올바른 자세와 행동’그것을 경건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경건을‘godly’라고 한 것은 바른 표현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면서 생각도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것이 경건한 생활이라고 봅니다. 참다운 크리스천 이라면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면서 하나님이 계신 곳을 늘 깨닫고 캄캄한 밤에 혼자 있어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먼 외국 땅에 가 있다고 할지라도 경건한 생활을 해야 올바른 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나 교회에 와서는 신자인 것 같은데 누가 보지 않을 땐 거짓말과 위선으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엄연히 보고 계신데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줄 알고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줄 알거나 하나님이 못 보시는 줄 아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된 신자가 되지 못합니다. 공기도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라디오 전파도 눈에 안 보입니다. 사람의 정신도 영혼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하나님도 온 우주에 충만히 계시고 지금 이 시간도 성경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눈으로 안 보인다고 안 계신 줄 알고 못 보시는 줄 알면 그는 큰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봐야 하고 세균은 현미경으로 봐야 합니다. 냄새는 코로 맡아야지 귀로 맡을 수가 없습니다. 색깔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 코로는 알 수 없습니다. 맛을 입으로 알아야지 귀로 들어서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영혼의 눈,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가장 훌륭한 경건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사도 바울이 어느 길을 가다가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아이를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점을 치고 돈을 내는데 그 처녀 아이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아이로 주인이 귀신 잡힌 그 여종을 데리고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지나가다가 영의 눈으로 보니까 귀신에 잡혀 있는 그 여자가 불쌍하기 짝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가“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거기서 나오라”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푹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다가 일어났는데 귀신이 깨끗이 나가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의 주인이 돈벌이가 떨어진 것이 분해서 관가에 가서 송사를 했습니다. 핑계는‘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옷을 찢고 벗기고 매로 죽도록 때리고는 감옥에다 가두어 놓았습니다. 온 몸에 멍이 들고 피가 흐르고 게다가 발에는 쇠고랑을 채워 놓았습니다.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어떤 사람 같으면“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때리고 옥에 가두느냐?”할지 모르나 바울은 거기서 도리어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던 중 밤중이 됐는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더니 자물쇠를 채운 모든 문들이 모두 철컥 철컥 열리고 발과 손에서 쇠고랑이 다 벗어져 나갔습니다.
 이럴 때 도망할 수도 있었으나 도망가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노라니까, 자기를 지키던 간수가 문이 다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로마에서는 죄수를 하나 놓치면 대신 자기 생명을 하나 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처형당하느니 자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보고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하고 말했습니다. 문이 열렸는데 도망도 안 간 것을 보고 거기서 엎드려서“선생님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서슴지 않고“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말하고 그 뿐 아니라 그의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바울의 위대한 경건한 생활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을 받은 후에 이와 같은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진 아내는 가난할 때 알아보고, 충신은 나라가 위급할 때 나타나고, 참 신자는 역경에 부딪칠 때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1. 역경 중에도 마음의 평강을 잃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매를 맞아 온 몸에 멍이 들고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그 입에서 우렁찬 찬송이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역경 중에도 마음이 평강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바울이 마음의 평강을 잃지 않고 기도와 찬송을 했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경건의 생활인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만 어려운 일 당하면 찬송과 기도는 어디로 다 도망가고 불안하고 초조하여 안절부절 하지는 않습니까? 혹은 기쁘고 좋은 일이 생기면 거기에 도취되어서 마음에 안정을 잃어버리지는 않습니까?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우리 중심의 평강을 잃지 않고 찬송과 기도가 나올 수 있는 이것이 진정한 경건입니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안이 어디 있나 그대 살아서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주리시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찬송 424장 4절).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분은 그 괴로운 가운데에 세상을 떠나는 직전에도“찬송을 빨리 불러주십시오. 내가 이제 하늘나라에 가야 되겠는데 빨리 찬송을 불러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이 죽게 되면 흑암의 세계에서 악령이 오고 빛의 세계에서 천사가 와서 내가 마음속에 믿음을 준비해서 주님을 부르면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주님께로 갑니다만 마음속에 믿음으로 시인하지 아니하고 옆에서 찬송도 잘 안 불러주고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흑암의 권세에서 악령들이 끌어가서 영혼이 지옥에 던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은 찬송을 불러주는 가운데서 찬송을 부르며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는 이러한 진정한 믿음이 되어야지 괴롭다고 예수 잃어버리고 좋다고 예수 잃어버리는 것은 진정한 신앙생활도 경건한 생활도 아닙니다.“주께서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나를 어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낙심하고 절망할 것 같지마는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일은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쌀 한 가마를 등에 지라고 할 부모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주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역경과 풍파는 하나님의 축복을 싣고 옵니다. 실패 속에 각양의 신령한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풍랑을 타고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2. 역경 중에 진실했습니다 
 바울은 옥문이 다 열리고 쇠고랑이 다 풀어졌으나 그 지긋지긋한 고통의 장소를 몰래 도망가지 않고 진실을 지켰습니다. 우리 같으면‘문이 다 열리고 쇠고랑이 다 풀어졌으니 이건 아마 하나님이 나에게 도망가라고 그러나보다’하고 얼른 도망가기 쉬웠겠으나 바울은 진실하게 허락 없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또 자기를 죽도록 때리고 가두고 지키던 옥사장이 자살 하려는 것을 보고 속 시원히 잘 됐다 생각지 않고“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에 있노라”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 처해도 진실을 지켜야 참으로 경건한 신자인 줄 압니다.“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2)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진실을 지키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사흘 굶고 도적질 않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경 중에 더욱 진실해야겠습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말하기를“꿈에라도 진실을 잃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반드시 살아야 될 이유는 없어도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말 한 마디 잘하면 몇 억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할 것은‘그렇다’하고 아니요 할것은‘아니요’해야 할 것입니다.
 ‘Yes’와‘No’를 바로 하는 진실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모든 죄가 이 거짓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3. 역경 중에서 충성 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에서도 전도했습니다. 간수가 와서 선생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말할 때에“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서 한 영혼이라도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려고 애썼습니다. 역경 중에도 충성하는 목사, 충성하는 장로, 충성하는 권사, 집사가 있는 교회는 부흥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충성하기 어려운 때 충성하는 것이 참 충성입니다. 참 믿음도 역경에 처할 때에 나타납니다. 십일조하기 어려울 때 십일조하고, 헌금하기 어려울 때 감사하고 헌금해야 기적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어떤 교인은 자기는 충성도 아니하고 역경 중에 충성하는 교인을 비웃습니다. 저런 형편에 무슨 십일조를 하고 심방하고 저런 주제에 무슨 전도를 하냐고 하면서 비웃습니다. 예수는 적당히 믿어야지 너무 잘 믿으면 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다 마귀의 소리입니다. 신앙생활은 목숨을 내거는 모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경건의 생활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① 체험적인 신앙에서 옵니다.
 바울은 율법적인 죽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뒤부터는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족한 이 종도 성령의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성경말씀에 확신이 없었고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까지도 의심을 가질 때가 많이 있었으나 성령의 불세례를 체험한 다음에 그 모든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계심을 순간순간 느낍니다. 성령의 체험을 한 다음 분명히 천국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저의 마음속에 제일 큰 욕망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서 예수 믿고 천당 가게 해줄까 하는“영혼 구원”이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 전도사, 신학박사 중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안 믿고 천국 지옥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안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덕적으로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다 체험적인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믿음도 충만해집니다.“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히 11:6)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7)이것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내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자 사모하고 함께 계심을 믿음이 있을 때에 예수님이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영의 세계는 믿음대로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심을 순간순간 믿을 때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런 믿음은 역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즉 성령의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② 중생의 확신을 가지며 내세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구원받은 확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구원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확신을 가져야 다른 사람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중생의 확신을 가지고 영생과 내세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영생의 믿음이 없고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으면 참된 경건의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 중에서도“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쳤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확신과 내세관이 뚜렷해야 됩니다. 이런 신앙이 없으면 목사 아니라 전도사 신학박사라도 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여객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 위기에 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한 할머니는 찬송을 기쁘게 부르더랍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기쁜 찬송을 부르냐고 했더니“맏딸은 천국에 있고 둘째 딸은 미국에 있으니 내가 여기서 살면 미국에 가서 둘째 딸을 보고, 죽으면 천국 가서 맏딸을 만나게 되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가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는 신학대학을 나오고 옥스퍼드대학을 나오고 선교사로 나가고 경건한 생활을 다 했지만, 폭풍을 만났을 때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모라비안 교도들을 통해서 열심히 예배드리는 그 가운데서 성신의 불을 받은 그 다음부터 구원의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세관이 뚜렷했기 때문에 세상 부귀영화는 다 분토와 같이 버릴 수가 있었고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코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살아갔습니다. 그런 까닭에 감옥 속에서 그 고통의 위기에 직면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주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고 그 온 집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했습니다.“내가 그 두 사이(사는 것과 죽는 것)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3~24)고 했습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하늘 나라에 가고 싶은 소망이 더 컸습니다. 사실은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욕망이 더 크나 육신에 살면 너희들에게 설교 한 번이 라도 전도 한 번이라도 더 하니 좋다는 이러한 사생관을 가졌습니다.
 예수께서“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이 편안하게 잘 사는 것도 좋고 이 세상에서 복 받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 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도 모두 영생과 천국 때문입니다. 구령열에 불타는 마음보다 더 고귀하고 거룩한 욕망은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내세관이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경건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바울과 같은 신앙의 생활을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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