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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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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82년 6월 20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36. 온전한 신앙
신명기 6장 4~9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지난 한 달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회를 은혜 중에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며 배후에서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제일 귀한 말씀이며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서 이 말씀을 누으나 앉으나 길을 걸을 때에나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할 때 돈의 종이 되고 세상을 더 사랑할 때 세상의 종이 되지만 인간이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참 만족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한 마디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7~39). 여기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저는 현대적인 용어로 전 인격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격이란 무엇입니까? 인격의 세 가지 요소는 지, 정, 의 즉 지식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신앙이란 지식으로 아는 것만도 아니며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것만도 아니며 의지적 결단을 내리는 것만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데 머리로 아는 데만 그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진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감정적으로 흥분하기만 하고 뜨겁기만 하다가 가랑잎이 푸드득 타다가 싸늘하게 꺼지는 것처럼, 쟁개비가 파르르 끓다가 내놓으면 금방 식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있고, 또 너무 의지적이어서 좀처럼 감정의 움직임도 없고 자기 고집 때문에 진리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되지 못하고 균형이 잡히지 못한 불완전한 신앙입니다. 호세아서에 말씀한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쪽은 타고 한쪽은 설은 전병과 같은 신앙입니다.
 온전한 신앙이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총동원한 인격적인 신앙입니다.

 

1. 신앙과 지식

 

온전한 신앙은 첫째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진리를 바로 알아야 믿음도 바로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고 하셨습니다.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 10:2)고 사도 바울은 탄식하였습니다. 열심은 있으나 바로 알고 내는 열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열심도 좋고 흥분도 좋으나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열심은 위험한 것입니다.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같은 사람이나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열심이 아니었으므로 결국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고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하고 호세아 선지가 책망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축복을 받지 못하고 또 멸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인격적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3위의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겠고 그러기 위해선 진리의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배워서 진리의 지식을 키워나가야 되겠습니다.

 

2. 신앙과 감정

 

 지적으로만 알고 감정의 움직임이 없는 사람도 올바른 신앙이 못됩니다. 어떤 이는 감정적인 것은 물거품과 같이 무가치 하다고 무시하지만, 비누나 샴푸가 질이 좋은 것은 반드시 거품이 잘 나는 법입니다. 거품이 없이 때가 잘지는 좋은 비누는 없습니다. 비누가 좋으면 반드시 거품이 좋은 법입니다.
 온전한 신앙은 반드시 감정의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감정이 창백한 사람은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감정의 줄로 통하여 역사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감동된다”는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신이…스가랴를 감동시키매…”(대하 24:20)라고 하였고, “여호와께서…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매…”(대하 36:22)라고 하였고,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스 1:5)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그 사사들이 모두 여호와의 신(신령)에 감동되었다는 말씀이 많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감동시킬 때 감정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에 감정을 무시하고는 제대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기쁨도 역시 감정에 속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3장에 보면(15~20절)엘리사가 여호사밧 왕의 간청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때 먼저 거문고 탈자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요사이로 말하면 찬송가를 은혜롭게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그때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십시오. 그러므로 찬송 부르거나 기도하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감정을 총동원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도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미국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제일 애를 먹고 힘 드는 것은 감정이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한 교회에 Ph. D, M.D, 닥터가 수십 명이나 되고 서울대학, 이화대학 나온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다 지식이 많고 똑똑해서 교만이 잔뜩 들어 있는 탓에 좀처럼 감정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멘도 안 하고 할렐루야도 안 하고, 더구나 박수를 하거나 열심히 통성기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을 받고 은사를 받고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게 하려면 우선 그 고집과 교만을 깨뜨리고 감정을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까지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설득하고 달래고 야단치면서 크게 박수하게 만들고 아멘하게 만든 다음에는 모두 울며불며 회개도 하고 성령을 받고 기뻐하며, 10년, 20년 믿었어도 헛 믿었다고 간증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감정의 움직임이 없이는 결코 성령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의지적인 결단이 없이 감정적으로만 날뛰는 것이 나쁜 것이지, 결코 감정의 움직임이 없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교육에도 전인적인 교육을 시키는데 정서 교육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어, 수학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같은 정서 교육도 잘 받아야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대참사를 일으킨 우순경 같은 사람이나 고재봉, 김대두 같은 끔찍한 살인자들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정서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잘하는 사람 중에는 그렇게 끔찍한 악질적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번 자기 제자를 목 졸라 죽인 사람도 체육 교사이지 음악이나 미술 선생이 아닙니다(그렇다고 체육이나 다른 교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신앙 생활하는 것도 감정을 가능한 한 총동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기도할 때도 찬송 부를 때에도 헌금할 때에도 뜨겁고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교회, 부흥되는 교회는 감정적인 면에 뜨거운 교회입니다.

 

3. 신앙과 의지

 

 의지가 약해서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위대한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떠나는 결단,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실 때 내쫓는 결단,“독자 이삭을 번제 드리라”고 하실 때 드리는 결단, 결심하고 결단하는 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부흥회 때 은혜를 받고 나서 간증을 하더랍니다. 할머니가 긴 담뱃대를 가지고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이제껏 예수를 믿었지만 담배를 못 끊다가 이번에 은혜 받고서 담배 를 끊겠다면서 성도들 앞에서 담뱃대를 뚝 꺾어버리니까 박수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할렐루야!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가을 부흥회 때 또 그 할머니가 담뱃대를 가지고 나와서 성도들 앞에서 간증하기를 지난번 봄 부흥회 때 끊으려고 했는데 못 끊고 이번에 은혜 받고 담배를 끊겠다면서 담뱃대를 뚝 꺾어버리니까 지난번보다 박수소리가 절반으로 줄어들더라는 것입니다. 또 다음 부흥회 때 그 할머니가 나와서 그러니까 성도들이 모두 비웃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렇게 믿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있고 감정도 풍부한데 의지가 약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신앙이 좋은 사람이 못됩니다. 살만 있고 뼈대가 없는 동물과 같은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라고 말씀했습니다.
 전에 황해도 어느 곳에 양조장을 하는 큰 부자가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그것이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나서 즉시 가득 가득한 술독을 모조리 도끼로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 날은 온 동네 개들이 흘러내리는 술을 마시고 주정했다고 합니다. 웬만하면 돈 좀 더 벌고 그만 둔다거나 만들어 놓은 술이나 팔고 나서 그만 둔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는 은혜 받고 깨닫자마자 그 많은 돈의 술독을 깨뜨려 버리는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세상 떠날 때 그 집 지붕에서 불빛이 하늘에 치솟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불난 줄 알고 물을 퍼들고 달려 왔는데 보니까 불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막 운명해서 하늘나라로 가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잘 믿었으면 그런 표징이 다 나타났겠습니까? 어떤 분은 몇 년씩 예수를 믿으면서도 술,담배 하나도 못 끊어서 질질매고, 어떤 분은 그렇게 믿으면서도 아직도 십일조 하는 결단 하나도 못 내려서 믿음도 안자라고 축복도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지가 약해서 결단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합니다.
 구원받는 것도 결단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기로 결심하고 입으로 시인해야 결정적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기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요 1:12) 결단을 내리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죄를 짓고 사울도 죄를 지었는데,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고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감정적으로 약해서 죄를 지었으나 그는 눈물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감정으로 죄를 짓지 않고 의지적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죽이라고 했는데 죽이지 않고, 멸하라고 했는데 멸하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제사 드리는 것을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줄 아느냐”,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다”, “불순종하는 것은 우상 숭배의 죄와 같다”면서 내가 너를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의지가 중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즉 감정적으로 지은 죄와 의지적으로 지은 죄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약하다고 핑계해서 죄를 지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배운 중요한 세 가지, 지식, 감정, 의지를 올바로 갖추어 훌륭한 교인,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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