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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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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6년 1월 18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24. 생활화의 능력
마태복음 7장 15~29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탕을 많이 먹으면 이가 삭는다고 합니다. 이가 삭는다는 것은 사실상 당분을 소화하려면 칼슘이 많이 필요한데 치아에 칼슘을 공급하기 전에 칼슘을 다 소비하기 때문에 치아가 튼튼하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 삭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가급적 설탕은 많이 안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심지어 미국인들은 설탕을 먹으면 자살행위’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비교적 해롭지 않은 당분이 있습니다. 바로 꿀입니다.
 꿀은 벌들이 꽃에서 빨아먹었다가 다시 토해낸 것으로 일단 소화된 것이기 때문에 꿀을 물에 타 먹으면 직접 혈관 속에 들어가서 영양제가 되기에 피로가 잘 풀리고 별로 해가 없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도 먼저 그 말씀을 받아먹고 소화해서 생활화한 다음에 그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이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듣는 이에게 감화와 감동을 줄뿐만 아니라 생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비가 벌레를 물어다가 맛도 안 보고 먹여 주듯이 자기 자신은 중심으로 믿지도 않고 생활하지도 않으면서 설교하거나 전도한다면 이것은 타인을 감동도 변화도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1. 말씀의 생활화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에 실현하고 실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비록 많이 알고 위대한 신학사상에 정통하고 또 설교를 멋지게 잘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생활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설교를 할 수 있고 미사여구로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로써 사는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져서 회개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깨뜨려 회개시킬 수가 있고, 또 자기 자신이 기도생활에 힘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도의 영감을 불어넣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 말씀을 생활화하여 우리의 인격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옹이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 분이 옥스퍼드 출신이고 변호사이며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박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며, 또 위대한 사상 위대한 웅변 때문도 아닙니다.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의 위대한 생활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경애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영국 여왕을 만나는 자리에도 물레질 할 때 입던 무명옷에 맨발 그대로 가면서 “나의 백성이 고생을 하는데 내가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합니다. 이때 영국의 여왕도 경의를 표했다 합니다. 또 영국에서 어느 강연회를 마치고 난 후 어느 치과 의사가 찾아와서 그의 형편없는 치아를 보고 가장 값진 상아로 틀니를 해 드리겠다 했더니“상아 이빨이 아니라 사기 이빨이라도 좋으니 내 백성 모두 한 후라면 할 수 있어도 그렇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했다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 있는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한 온스의 모범이 한 톤의 교육보다 더 가치 있다(An ounce of example is worth a ton of teaching)’는 말이 있습니다. 한 온스의 본을 보여 주는 것이 한 톤의 교육을 퍼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어떤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아버지 되는 사람이 아들 담배 피우지 말라고 몹시 때리더랍니다. 그리고 돌아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뻐끔뻐끔 열심히 피우더랍니다. 이런 교육 백 번 시키면 무엇합니까? 마치 옛날 어느 서당의 훈장 선생이 혀가 짧아서 ‘바람 풍’자를 가르치면서 “나는 바담풍 해도 너희들은 바담풍해라”했다는 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15~23)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말씀은 경건하게 보이는 겉모양의 옷차림보다 입으로 주여 주여 부르는 것보다도, 능력을 행사하는 것보다도 말씀의 생활화가 더 중요하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판가름이나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판가름이나 또는 천국에 들어 갈 자와 못 들어 갈 자의 판 가름은 바로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든지 허물과 실수가 없어 완전한 교인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약해서 넘어질 때는 넘어지더라도 허물과 실수가 있더라도 중심으로 말씀을 믿고 생활화 하느냐 아니면 말씀을 귀로만 듣기만 하고 생각과 사상에서 그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목사님들의 모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령한 목사라고 다 믿음 좋은 자식을 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이란 겉을 낳지 속을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깡패가 된 자식이라도 우리 아버지는 진짜 목사야 하는 인정을 받아야만 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목사는 사기꾼 목사이거나 거짓 선지자일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이고 위대한 명성을 떨치고 훌륭한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그 자식들이 아버지를 믿어주지 않고 아버지 뒤를 따르는 아들이 하나도 없다면 무엇인가 중심에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인은 네 가지 인정을 받아야 참 교인이라고 합니다.

 ①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고,
 ② 목사님께 인정받아야 하고,
 ③ 가까운 친구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④ 마귀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유혹해도 안 넘어가는 인정).

 사실 늘 보고 같이 사는 가까운 식구에게 인정받는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한 우리 아버지나 우리 어머니는 진짜 크리스천이야 하는 인정을 못 받아도 안 됩니다.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려는 사람,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이런 인정을 받게 마련입니다.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은 집을 지을 때 기초 석을 깊이 파고 잘 놓은 것과 같아서 위에서 비가 내리고 옆에서 바람이 부딪치고 아래에서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지만 말씀을 듣기만 하고 형식으로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환난과 시험이 올 때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 날에 견디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고기 가운데 되새김질하고 갈라진 굽이 있는 짐승의 고기만 먹었다고 해서 오늘날도 돼지 같은 고기는 먹지 말라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는 성도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의문에 속하는 법으로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폐기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깊은 의미가 있는데 굽이 갈라졌다 하는 것은 구별된 생활을 의미하고,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소가 풀을 먹고 자꾸 씹고 씹어 되새김질할 때에 소화가 잘되어 살찌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넘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에 되새김해서 생활 속에 되살아나도록 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일상생활과 관계를 맺어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큰 결과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믿는다는 증거요 그 말씀을 순종한다는 증거입니다.

 

2. 말씀의 능력(Reincarnation)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단순히 사람의 말을 빌려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전달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고로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생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말씀을 생활화해서 생활로 나타내는 재교육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고, 또 고린도후서 3장에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 하지 않지만 우리의 생활은 읽지 말라 하여도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읽도록 해야 합니다.

 

3. 생활화의 능력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도 위대한 신학사상에 정통한 것보다도 성경을 줄줄 외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도 말씀으로 사는 자가 더 큰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인격이 너무 크게 말하므로 당신의 입으로 하는 말은 들리지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말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말씀을 얼마만큼 생활화 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생활화하는 사람은,
 
 ① 기도의 응답을 잘 받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생활이 까맣게 떨어져 있으면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②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살면서 외칠 때는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마 7:29)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치심에 놀라고 그 가르치심이 권세 있는 자 같고, 가르치기만 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가르치기만 하고 머릿속으로만 잘했지 생활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③ 시험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이 위에서 비가 쏟아지고 옆에서 바람이 부딪치고 아래서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 같이 말씀을 듣고 생활화하는 사람은 도중에 낙심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말로나 혀로만 하지 말고 진실함과 행함으로 하자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생활화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쓴맛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0장 10절에 보면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했습니다. 이 말은 설교 듣기는 달콤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달콤하지만 이것을 소화해서 생활화하려면 쓰디쓰다는 말씀입니다.
 설교를 잘 하는 것보다 성경을 줄줄 외우는 것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한 것보다도, 말씀을 듣고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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