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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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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5년 10월 12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13. 성령은 실존적이게 한다
요한복음 16장 7~16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대개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령을 체험하는, 이 모든 신앙의 생활을 하나의 사상이나 관념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실존적으로 체험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존적인 신앙이 되게 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만이 성경의 모든 말씀도 실존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요,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해도 찬송을 불러도 실존적인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존적(existential)이란 말은 이념적(ideal), 혹은 관념적 사상적(thinking)인 것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한 사람은 아니고 또 철학적인 설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실존이란 말이 나왔기에 어쩔 수 없이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철학에는 실존주의 철학 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의 발생 원인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본다고 하면 중세기에는 종교가 극도로 부패해져 그 때를 가리켜 역사가들은 암흑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부패성과 암흑을 보고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95개 조항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종교적인 개혁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학이나 철학에 있어서도 새로운 사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계몽주의 철학입니다.
 그 때부터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신을 떠나서 인간의 존엄성만을 주장하다 보니 모든 사상이 현실성이 없어지고 실존적이 아닌 형식주의 내지는 관념주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비현실적 비실존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서 묘사한다고 하면 마치 사상과 철학은 고층 빌딩과 같이 지었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살아가기는 조그만 초가집에서 사는 것과 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념적인 철학에서 반발적으로 생겨난 사상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인 것입니다. 이 실존주의 철학도 두 가지로 분류한다고 하면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를 든다고 하면 전자에는 킬케 골이나 칼 야스퍼스를 들 수 있고, 후자에는 쟝 폴 샤르트르나 알베르 까뮈를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실존주의 의미는 사실적이고 참으로 존재하는 현실적이며, 체험적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교회나 다니고 성경과 교리만 잘 알아서 관념과 사상을 아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되시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체험 되어져야 그의 신앙은 확실하고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고 하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믿던 하나님을, 하나님의 그 현존을 내 속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어떤 직분을 맡아서 잘해 나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성경을 잘 알고 외운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말씀과 교리에 대한 신앙이 실존적이며, 체험적으로 살아 움직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감정과 지식과 의지와 내 인격 전체를 기울이고 내 생명까지라도 투자할 수 있는 전 인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져야 하지, 형식적으로 조금 알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실존적인 신앙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야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그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니까 찬송과 기도도 힘이 없고 생명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때에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들어 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는 원래 아볼로라고 하는 젊은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학식도 많고 성경도 잘 알아서 잘 가르치고, 설교도 잘했으나 그는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의 아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자기의 신앙이 실존적인 것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이 광경은 본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교를 하고 교인들을 붙들고 간절히 안수 기도를 드렸는데, 모두 성령을 받아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은혜를 충만히 받아 실존적인 신앙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관념적 으로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실제로 받아서 체험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을 모셔 드리고 매일 매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체험을 얻게 되는 것이요, 공상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의 신앙에서 실존적인 신앙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했는데 무슨 성령을 또 받으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하면 그것은 샤마니즘이라고 비웃어 버리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코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9장 2절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의 체험 이전에도 분명히 중생은 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제자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러한 성령의 체험이 없었기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체험이 없었다고 하면 하루에 3천명씩이나 회개시키는 능력도 없었을 것이고 순교할 신앙의 자세도 못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실존적으로 모셔 들여야만 그 사람의 신앙이 사실적이 되고 산 신앙을 소유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셔 드리지 아니하고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나 인간의 총명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로 확실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모시는 방법은 육의 감정을 자극시키거나 혼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영이 되시는 성령으로만이 이해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2~13)라고 했습니다. 또 성령은 진리의 영이신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바로 알려고 하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내 속에 들어와야 말씀도 진리도 깨닫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1서 2장 27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존적이게 하시는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는 천국도 지옥도 믿어지지 않고 죄가 무엇이며 영생과 부활이 어떠한 것인지조차 믿어지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령을 모셔드려 실존적인 신앙의 자세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체험을 위해서 먼저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루 이틀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두고 날마다 사모하는 심령이 되어져야 성령은 그 사람을 가까이 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찾아 들어오지만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환영하고 사모하지 않으면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를 때, 기도를 드릴 때,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누가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의 밤낮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우연히 혹은 자연적으로 오는 것으로 착각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허락하신 은사를 받고 뜨거운 불의 체험을 할 때뿐만 아니라, 전도나 설교를 하나 기도할 때나 무슨
일에든지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하고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어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시며 실존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까지 체험하게 하시고 산 신앙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라며, 날마다 실존적이게 하시는 성령을 모셔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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