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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07.09 18:07

01권 - 23. 사랑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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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5년 3월 2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

23. 사랑의 운동
고린도전서 13장 1~1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
 세상에는 여러 가지 운동과 캠페인이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운동을 일으켜야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게 될 줄로 생각합니다.
 우선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사랑만이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빅톨 위고의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죄를 범해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왔으나 마음은 변화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어느 교회의 성직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은촛대를 보고는 그의 결심이 깨졌습니다. 그는 그 은촛대를 훔쳐 가지고 나왔습니다. 몰래 도망하려다 순경한테 붙잡혀 그 성직자 앞에 끌려 왔을 때 성직자는 말하기를 “저쪽 것도 주었는데 어찌 하나만 가져갔소?”하여 장발장은 마음이 큰 감동을 받고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 인간을 엄하게 다스리고 심판했지만 인간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최후로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어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그 사랑을 보여 주셨을 때 마침내 인간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버리겠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제일 큰 능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완력만 가지고 기르려면 잘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무슨 실수나 허물이 있을지라도 사랑으로 감싸주고 용서해 줄 때에 마음이 감동될 줄로 믿습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싸우게 되는 것은 서로 사랑으로 대해 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가 완력, 폭력을 버리고 사랑으로 대해 주기를 축원합니다.
 사랑밖에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없고 가정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많은 운동이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 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랑의 운동을 일으키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내 마음 속에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② 사랑이 최고의 덕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 보면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계명이 있지만 그것을 줄이면 10계명이 되고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 위로 하나님 사랑하고 아래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말씀이 됩니다. 이것을 다시 하나로 줄이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살인을 할 수 없고 이웃을 해칠 수도 없고 거짓말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드러몬 헨리(D. Henry)라고 하는 사람은 “세계 최대의 것은 사랑이다.”라고 말했고, 골로새서 3장 14절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띠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에 말하기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고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비록 산 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고 순교를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덕은 사랑인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인을 강조합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최고의 덕인 사랑을 지닌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③ 사랑은 최고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은사에 대해 나옵니다. 성령은 같지만 은사는 서로 다른데, 지혜의 은사, 지식, 믿음, 병 고침, 능력과 예언, 방언, 통역, 영 분별 등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 은사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길 하나님이 교회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가 사도요, 둘째가 선지자요, 셋째가 교사, 능력, 병 고침이라 했습니다. 은사에 대한 마지막(31절) 말을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제일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말씀하시며 12장을 끝맺고 13장에 와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제일 큰 은사요 가장 좋은 길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④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장 7~8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한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도 요한은 나이가 굉장히 많이 들었을 때 설교를 하라고 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성도들이여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왜 선생님은 그렇게 똑같은 소리만 하십니까?”하고 물을 때에 “사랑 외에 무엇이 더 필요 하겠는가?”하면서 설교할 때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을 이야기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의 운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우선 사랑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해야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가에 대해 알 아야 되겠습니다.


첫째, 사랑이란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여 최대의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줄까를 생각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주려고 할 때 그 가정은 진정한 행복이 있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상대편 중심으로 사랑해야지 나 중심으로 될 때는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을 때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보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가까이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지나쳐 갔지만 이 사람은 가까이 가서 기름을 부어 주고 포도주를 부어 주어 상처를 싸매고 짐승에 태워 주막에 가서는 데나리온 둘을 주인에게 내어 주고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해 줬습니다.
 이것은 준 이야기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장 5절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라고 한 말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기심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셀휘시(selfish)라고 하는데 이 이기심이야말로 만 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에고이스트(egoist)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자기중심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슬픔과 고난을 당한 자에게 위로를 주고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사랑해서 복음을 주어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 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최대의 사랑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물질적으로 조금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죽어 가는 영혼을 전도하여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최대의 사랑인 것입니다. 복음을 나눠 주도록 힘쓰는 그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흥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이란 원어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필리아>라는 친구간의 사랑이 있고 두 번째 <스톨게>라는 친족 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귀한 사랑은 <아가페(agape)> 사랑인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듯이 아무도 받는 것을 생각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아가페 사랑의 실천자가 되길 축원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미움이 있는 곳에 지옥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할 때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가 되기 쉽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부간의 불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미워하여, 어머니는 아들을 며느리는 남편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때 그 아들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자기의 부인을 불러 “꿀밤을 먹이면 노인들은 위가 두꺼워져 죽는다고 합디다”했더니 그 부인이 당장 꿀밤을 시어머니께 갖다드렸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그 시어머니는 좋아만 했습니다. 매일 계속 되다 보니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일도 돕게 되고 밖에 나가면 자랑도 하여 결국 서로 마음이 변화되어 화목해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시고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주는 자가 되었습니까? 주는 자가 됩시다. 적은 것이라도 주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기도해 줄 수 있고 위로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주는 생활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 사랑이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살인강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고 그 아들도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강도가 잡힌 후 예수 믿는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강도의 집에 가보았습니다. 너무나 가난한 것을 보고 그 집에 쌀을 사주기도 하고 또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풀어 달라고 하는 탄원서까지 법원에 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용서할 수가 있어야 사랑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보면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못 박아 죽이고 침 뱉고 조롱하는 무리를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셨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전도하다가 원수들의 돌에 맞아 쓰러져 죽어 가면서도 일어나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최후로 이 용서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으로 갔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여러분 가정에 사랑이 늘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내가 수양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이러한 사랑을 행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야 만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곧 사랑 충만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의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이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되는 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치 달은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와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오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을 줄 수 있고 용서해 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 같이 우리의 가지가 예수님께 붙어서 사랑의 진액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옮겨와 진정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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