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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3.10.12 14:26

05권 - 34. 내세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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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8년 8월 27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34. 내세의 복음
요한복음 14장 1~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유명한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이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창 밖에는 어두움이 깔렸는데 내가 죽으면 흑암이 나를 뒤덮고 말겠지. 이제는 찬란한 빛, 인생의 장엄함도 모두 사라진 밖은 한 순간의 무위와 공허만이 남고 말겠구나!”그는 이렇게 탄식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양에 바루네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이 세상에는 신이라는 것이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기선을 타고 먼 나라로 가다가 바다 한복판에서 큰 풍파를 만나 기선이 파선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방을 바라보니 만경창파요, 끝이 안 보이는지라 이제는 별 수 없이 죽었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며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다행히 바람이 잔잔해져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사람들은 그 다음부터 그를 보고 “바루네 씨의 무신론은 육지에서는 훌륭하나 바다에 가면 소용없군요.”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1. 죽음은 궁극적인 공포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궁극적인 공포입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는 모두가 다 벌벌 떨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은 불안, 억압 상태에서 기인하는데 그 근원은 죽음의 공포에서 온다고 합니다.
 얼마 전 강희규 박사가 농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나 대학의 천재적 두뇌를 가진 장학생이 시체로 발견된 일, 이 모두는 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어버리기 위해 죽음을 스스로 앞당긴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인생 최대의 문제이며 궁극적인 불안이 되는 죽음의 문제를 의식적으로나 고의적으로 피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시체가 관에 누워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기는 죽음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도, 부활하신 것도, 그리고 승천하신 것, 이 모든 일은 바로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요 인생의 최대 공포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것이지 희생적인 삶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가장 큰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2.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피터슨 스미스(J. Patterson Smith)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죽음이란 결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러셀이 말한 대로 죽음 너머엔 흑암과 공허만이 남고 의식도 자취도 다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길래 끝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버드 대학의 헨리 비코(Henrry Beacho) 박사는 죽음이란 ‘첫째, 뇌세포가 그 기능을 중지하고 의식의 활동을 멈춘 것 둘째, 심장의 고동이 멎는 것’이라고 두 가지로 정의를 내려 말했습니다.
 물론 육체의 죽음은 이 말이 맞지만 영적인 면에서 성서적으로 볼 때, 죽음은 정지가 아니라 분리(divide)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셨으므로 흙에서 나는 것을 먹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만든 다음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었다고 했으므로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먹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사람은 육신은 살았어도 영적으로는 죽었다고 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육신은 죽었어도 영혼은 그대로 의식을 가진 채 남는 것입니다.
 콩이나 옥수수 같은 곡식의 알맹이도 땅에 묻으면 썩어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그 생명이 살아 있다가 더 싱싱하고 더 많은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명이 죽음으로 끝나고 말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 15:35~36)라고 하며 씨앗을 뿌리면 죽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사람도 죽어야 산다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도 실제의 과정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죄의 문제, 즉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전향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데이비드 윈터(David Winter) 씨는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자세야말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진정한 삶의 자세이며 또 모든 고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도 값지고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어떠한 고난과 시험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죽음으로 끝이 아닌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심령과학자들도 그런 것을 많이 말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군 대위 바르틴은 어느 날 대낮에 막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답니다. 밖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코넨이라는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 여보게 친구.”하고 부르더랍니다. 그를 보며 “아니, 자네 벌써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나?”라고 했더니 “그렇네, 오늘은 참 훌륭한 비행을 했어”라고 말을 하는데 공군정복(正服)을 하 고 이상하게 해군 모자를 썼더랍니다. 하도 이상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문 입구에서만 말을 하고는 들어오지도 않고 “그럼 잘 있어.”하고 문을 닫고 나갔답니다. 그때가 바로 3시 25분이었는데, 3시 30분에 연락이 오기를 3시 25분에 코넬 대위가 비행기 폭발 사고로 죽었다고 하는 전갈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등산하다 떨어져 자일에 매달려 죽었는데, 죽어 매달려 있는 자기의 모습을 분명한 의식으로 다 보고 동료들이 자기를 내려놓는 것도 다 본 후에 다행히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순복음 중앙교회의 김상호 목사님은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다 가 보았는데, 염까지 하고 장례식을 하려는 직전에 살아나서 그가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3. 영원한 두 곳 
 죽음 후에는 영원한 두 장소가 있어 그 곳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는 두 곳에서 사자들이 온다고 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은 사람은 천사들이 오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흑암의 사자 악령들이 끌어가려고 모여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을 위해서는 임종 시에 구원의 확신을 깨우쳐 주고 찬송을 불러 주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장례식을 많이 치러 보았는데,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의 모습도 다르고 죽은 다음에도 그 방 안의 영적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 모습도 흉악하거니와 죽은 다음에도 그 방 안의 영적 분위기는 악령으로 꽉 들어 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죽을 때의 모습도 천사와 같이 고요하고 평안할 뿐 아니라 방 안의 분위기도 성신이 충만한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도 마지막 운명하시기 직전에 안녕히 가시라고 하니까 며칠 동안 말씀을 못하셨는데 “오냐, 잘 있어라.”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우리는 통곡할 준비를 했는데 부흥회 때 성신 충만한 것처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옆에 계시던 권사님 한 분이 시신 뒤에 천사들이 가득히 춤을 추는 것이 보인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원받고 죽은 사람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낙원에 있게 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 가기 전에 음부에 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이 끝나고 심판이 다 끝난 다음에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게 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며 형벌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죽으면 이 두 가지 영원한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됩니다. 죽은 후에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고는 결코 성경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하늘 위나 땅 속이나,어느 다른 별세계에 있다고 여러 가지로 말들 하지만 그 위치와 장소는 어디라고 말 할 수 없고 그때 가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천국은 슬픔과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없이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즐거운 곳이요, 지옥은 세상의 어떤 불 못지않게 분명히 뜨거움을 더 심하게 느끼는 곳이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지옥이 없다면 선교도 전도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으나 오늘날 설교자들이 가장 적게 하거나 안하는 설교가 바로 지옥에 대한 설교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이런 죄를 한번 지었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죄를 계속적으로 짓고 회개하지 않고 돌이킬 줄 몰랐던 사람들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4. 유일한 구원의 길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했습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길은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시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지옥을 갈래야 갈 수 없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했습니다.
 도덕적인 행위로 혹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충심으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고 했습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믿음이 변치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먼저 믿고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 사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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