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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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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3-02-14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30214-성도의 죽음과 영원한 운명.hwp

14. 성도의 죽음과 영원한 운명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4) 

 무디(D. L. Moody) 선생이 죽음의 날이 임박한 것을 예감하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어느 날 신문에서 노스필드(Nothfield)의 무디(D. L. Moody)가 죽었다고 하는 기사를 읽거든 그 사실을 믿지 마시오. 그 때는 지금의 나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흙으로 지은 옛집에서 나와서 더 높고 영원한 집, 죄악이 접근하지 못하고 더럽힐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 육신은 1837년에 태어났고 영혼은 1856년에 태어났습니다. 육신은 죽은 것이나 성령으로 난 것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선생이 소천하기 전에 잠깐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며 말하기를 “세상은 떠나가지만 천국이 내 앞에 열립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여기는 골짜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다. 나는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옆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말을 하자, 자녀들이 “아닙니다. 아버지, 꿈을 꾸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무디 선생은 “아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천국 문에 들어서고 있단다. 자녀들의 얼굴을 보고 있단다”라고 말한 뒤, “이것이 나의 승리, 오늘이 나의 대관식의 날이다. 아! 얼마나 영광스러운지!”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 사랑하는 식구를 잃고 슬퍼하는 장면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획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처럼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이들이 죽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 재림시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갈등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아남은 자나 믿음 안에서 죽은 자에게 다 기쁨이 된다고 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이 갖지 못한 소망이 있지 아니하냐. 어느 날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죽었던 사랑하는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고 그 후에 우리도 들림 받아 그들과 함께 주님과 영원히 거하게 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듯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들과도 주님과도 이별이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눈물을 닦고“이제는 알았습니다. 참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 영원한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볼 것입니다. 찢어지는 듯한 가슴으로 장례식을 하게도 될 것입니다. 장례식 날, 부드러운 찬송 소리와 목사님의 위로하는 설교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지로 가서는 무덤 옆에 서서 안식처인 무덤 속으로 관이 들어가는 것도 볼 것입니다. 외롭고 슬프겠지만 “어느날, 사랑하는 이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소망을 가지고 영혼을 밝힐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는 죽음이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죽음이 나를 예수님께 데려다 주는 친구처럼 보게 됩니다. 죽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사랑하는 식구들이 먼저 가신 본향 집으로 데려가는 수송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1. 구원 받은 자의 죽음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연옥에 가서 정화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 사랑하는 사람이 신부에게 헌금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혼은 부활의 날까지 잠을 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 영혼도 인격도 전부가 죽는다고들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런 이론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이 죽음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찾아봅시다. 

 ① 죽음은 잠자는 것입니다. 

 잠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농담 삼아 하는 말 중에, 천국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한 일주일 잠을 실컷 자보겠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외국에 갔다 와서 시차가 바뀌면 어떤 때는 며칠씩 잠을 못 잘 때가 있습니다. 잠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잠이 들면 다시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혼이 어느 날 낙원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면, 우리의 몸은 동면하듯이 오랜 잠에 들어가 다시 깰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공중에 재림하실 때 일어납니다(살전 4:16). 우리 사랑하는 성도가 죽을 때, 그것은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어느 날 다시 깨어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소녀가 죽은 것을 보고“…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마 9:24)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잔다”(요 11:11)고 하셨고,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을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고 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다시 일어납니다. 

 ② 죽음은 이별입니다(departure).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울의 그 영혼이 무덤에 들어가 잠잔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을 의미한 것입니다. 죽음이 올 때 그 영혼이 주님과 함께 거할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이런 날이 가까웠을 때 바울은“…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라고 했습니다. 외국으로 떠날 때 환송객들이 잘 가라고 인사하며 어떤 분들은 울기도 합니다만, 도착하는 공항에서는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나와 있곤 합니다. 

 바울은 죽음을 내다보면서 “나의 떠날(departure) 기약이 가까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가 떠나갔다”고 하지만, 또 다른 저 편에서는 “그가 왔다(He has come)”고 합니다. 죽음은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상을 이별하는 곳입니다. 

 ③ 죽음은 거처의 변화입니다. 

 죽음은 세상 생활의 끝맺음이지, 생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은 계속 삽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의 생명을 과거형으로 말해선 안 됩니다. 육신의 생명이 끝난 후에도 참된 생명은 더욱 영광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사는 장소가 바뀐 것 뿐입니다. 마치 빛이라곤 호롱불 밖에 없는 시골 초가집에 살던 아가씨가 전등불, 수돗물이 나오는 서울 부잣집으로 시집 간 것과 같습니다. 우리 딸이 나 하고 살다가 미국에서 신랑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과 같습니다. 

 ④ 죽음은 신자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바울은“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gain)이니라”(빌 1:21)고 한 것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산 성도라면 죽는 것도 모두 다 유익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막살이집에 살다가 대궐로 이사 가는 것이 손실입니까? 마대자루 같은 옷을 벗고 비단 옷 입는 것이 손해됩니까? 성도가 죽는 것은 절대 유익한 것입니다. 죄를 완전히 정복하고 사단을 정복하고 의심을 완전히 이기고 공포를 완전히 이기는 날입니다. 고통과 눈물과 신음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앞서간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며 살게 됩니다. 우리의 지식이 온전해지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전에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이제부터 죽음은 나를 더 큰 기쁨이 있는 영원한 본향으로 데려다 주는 친구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성도의 영원한 운명 


 현재 우리 성도들의 몸과 영혼의 운명은 완전한 영광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의 날까지는 불신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어느 날 무덤 속으로 들어가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은 부활하여 내 영혼과 다시 합치게 됩니다(살전 4:13~18).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우리 영혼은 주와 함께 살기 위해 낙원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무덤 속에서 잠자지만 영혼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됩니다. 그곳은 놀라운 곳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는 우리 몸과 영이 다 합쳐지는 때이므로 더욱 영광스럽고 완전한 기쁨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어떤 곳일까요? 

 ① 하나님의 처소(place)입니다. 

 예수께서“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place)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이 세상 어느 도시 못지않은 하늘의 처소임이 확실합니다. 성경은 집이라고도 했고, 맨션이라고도 했고, 성이라고도 했고, 거리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살 처소입니다. 

 ② 완전한 처소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처소를 건립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상적인 저택을 지어도 얼마 후에는 결점이 드러나고 싫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처소를 지을 수 있습니 다. 잘못된 것이나 해로운 것이 일체 들어 올 수 없는 곳입니다. 놀라운 도성입니다. 

 ③ 아름다운 처소입니다. 

 성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거리는 황금으로 되어 있고, 기초 석은 보석으로 되어 있고, 성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세상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④ 안식의 처소입니다. 

 그곳에는 피곤이 없는 곳입니다. 슬프거나 아프거나 눈물 흘리는 일이 없는 참 안식의 처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놀라운 신령한 몸을 입기 때문입니다. 

 ⑤ 기쁨의 처소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노래하게 되는데, 우리 자신의 성취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속하시고 죽임 당하신 만왕의 왕 예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한 이 노래가 우리의 노래 제목이 될 것입니다.

 ⑥ 사랑과 교제의 처소입니다. 

 이 땅에서의 교제는 가끔 깨어질 때가 있으나 천국에서는 이별이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예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겠습니까? 어떤 이는 “천국에서 우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하는 질문을 받습니다만, 확실히 알아 볼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서로 모르고 어떻게 한 가족으로 살겠습니까?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고 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알아보았습니다. 전에 본 일이 없었으나 영적 직관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영체로 부활해서 나타나셨을 때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은 몸을 입게 되므로 우리는 서로 알아보게 됩니다. 

 ⑦ 봉사의 처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천국에서는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3. 구속 받은 자의 기쁨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영원한 기쁨으로 누리게 됩니다. 

 ① 구세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산에서 변형된 예수님을 보고 얼마나 좋았던지 장막 셋을 치고 여기서 살자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끄럽게 보았고 얼굴에 침을 뱉었고 채찍으로 때리고 땀과 피로 얼룩지게 만들었으나, 천국에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런 옛날 얘기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자가 가난한 사람으로 변장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신부감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신랑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신부를 찾다가 한 농부의 집에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왕자는 곧 농부의 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하니까 농부가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노동자로만 보았기 때문 입니 다. 그러나 젊은이는 간청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궁으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왕자의 아버지는 아들 부부가 온다는 것을 알고 도착할 때쯤 왕의 수레를 궁궐 문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궁의 문지기들은 대기했다가 그 왕자 부부를 둘러쌌고, 왕궁의 악대가 연주를 했습니다. 신부는 깜짝 놀라서 “이것이 다 왠 영문입니까?”하고 물을 때, “여보, 사실 나는 왕의 아들이라오. 당신은 내가 비천할 때 결혼했으므로 그것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로 되었소.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영광이 당신 것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찾으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심할 때, 그 신랑의 신부가 되고 장차 그분이 우리를 하늘의 왕궁으로 데려 가시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②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구속 받은 성도들은 영광을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롬 8:17)라고 했습니다. 어느 부잣집에서 한 동네에 살던 가난한 부부가 남기고 간 소년을 양자로 삼아서 데리고 살다가 나중에 그 많은 재산도 상속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중에 부유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가난하고 비천함을 알았습니다. 우리들을 가족으로 입양해서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그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홀연히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그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의사도 완전한 건강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때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그 분과 같이 됩니다. 

 ③ 성도는 구세주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상급 없이 섬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실 때는 그에 따른 상급과 축복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들림 받은 후, 그 분 앞에 서면 우리가 그 분을 위해 일한 모든 것에 대한 상급을 베풀어 주시게 됩니다. 만일 그 분의 영광을 위해 봉사했으면 우리의 공적은 금, 은, 보석과 같이 빛날 것이고, 만일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했다면 우리의 모든 공적은 지푸라기나 나무나 풀과 같이 타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구원은 받지만 공적은 불타든지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영광만 위해서 일해야 상을 받게 됩니다. 

 ④ 구세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하게 됩니다. 

 천국에서 불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세상에서 세운 업적을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만을 찬양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절을 보면 천천 만만의 수많은 성가대가 어린 양을 찬양하는데 얼마나 놀랍니까? 우리 성가대원이 모두 2,000명이 넘는다고 대견해 하지만, 하늘나라 성가대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⑤ 천국에서 구세주만을 섬기게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최대의 기쁨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그리스도를 섬길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 7:1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종처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과 왕같이 섬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죽음을 원하십니까? 천국이 여러분의 영원한 처소가 되기 원하십니까? 이 영원한 기쁨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죄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1993년 2월 7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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