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보기

불기둥의 목자

조회 수 8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 일자 1992-06-21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역대하 20장 1~4절, 12~13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20621-23. 인생의 풍랑이 일어날 때.hwp

23. 인생의 풍랑이 일어날 때



여호사밧이 두려워하며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 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대하 20:3~4) 

 인생은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풍에 돛 달고 항해하듯이 기쁘고 평안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노도풍랑이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노도풍랑이 엄습해 와서 정신 차릴 수가 없고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을 때, 이를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풍랑을 대처할 줄 모르면 불안해 하다가 노이로제 환자가 되거나 정신병 환자가 되거나 아니면 간단히 끝내 버리는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풍랑이 일어 날 때 대처하고 승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의 여호사밧 왕이 풍랑을 잘 견딘 그 한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유대 나라의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 암몬, 마온 이 세 나라의 연합군대가 유대 나라를 쳐들어왔을 때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 20장 12절에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한 것을 보면 얼마나 두려워하고 당황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타개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으나, 믿음으로 그 무서운 노도풍랑을 이기고 승리한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노도풍랑이 엄습해 올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1.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거센 풍랑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자칫하면 풍랑만 바라보고 좌절에 빠지기 쉬운데, 우리는 풍랑을 보지 말고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환난 때에 가질 태도입니다. 

 한 20년 전에 춘천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 잠시 멈췄는데, 창밖으로 내어다 보니까 어느 여자 아이가 다리 위에서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다가 비칠비칠하더니만 그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험 환난을 당할 때 자꾸 그것만 쳐다보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낯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만 똑바로 바라볼 때는 파도를 밟고 물위를 걸어갈 수 있었으나,눈길을 예수님으로부터 돌이켜 풍랑을 바라볼 때 그만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건져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실 때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는데, 그 방주는 3층으로 되어 있었고 창문은 3층에다 내고 하늘을 쳐다보게 했던 것입니다. 시뻘건 홍수 물에 사람과 짐승, 온갖 시체가 다 떠다녔지만 노아는 그것을 하나도 보지 않고 3층 창문을 통해서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홍수가 그치고 육지가 나타났는지 안 나타났는지조차 볼 수가 없어서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보낸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홍수를 보았다면 겁에 질려 죽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아무리 무서운 환난과 시련이 와도 그것만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낯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고 잠재우지 못할 풍랑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12정탐꾼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할 때 믿음이 없는 10명의 정탐꾼들은 여리고성은 철옹성벽같이 난공불락의 성이고, 아낙 자손들은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지 우리들은 그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여리고 성이나 장수 같은 아낙 자손들을 본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문제없이 점령한다”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종잇장만도 못하고, 아낙 자손들이 아무리 장사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메뚜기 새끼만도 못하다고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강하고 담대해질 수가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날 때 그것을 바라보며 염려,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너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안과 근심의 풍랑이 엄습할 때 그 풍랑에서 돌이켜, 그 낯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11)고 했습니다. 절망에 부딪혔을 여호사밧도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였다”(대하 20:3)고 했고,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 할 능력이 없고 결국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 낯을 향한다는 말은 세상의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2. 죄를 씻어버렸습니다 


 인생의 노도풍랑이 몰려올 때, 그 풍랑으로 죄를 씻어버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 때문에 그 폭풍을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이 엄청난 고난을 당한 것도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 하나님이 주신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라고 예언한 대로,하나님이 미워하는 아합 왕을 도와서 전쟁에 나갔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아합 왕을 도와준 것이 무서운 죄였습니다. 아마도 여호사밧 왕은 믿음도 있고 착한 왕이었지만, 아합 왕이 와서 인정 있게 살살 빌면서 같은 동족끼리 도우며 살자고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으니까 그만 정에 끌려서 부정한 동맹을 맺었던 모양입니다. 

 마귀가 인정의 줄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범 죄케 하고 타락시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여호사밧 왕은 얼렁뚱땅하는 사이에 악한 왕 아합을 도와주었다가 자기도 죽을 뻔하고, 후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폭풍의 날에 빨리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대적할 군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면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환난 고통이 모두 다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죄의 결과로 오는 때가 많이 있으므로, 고집부리거나 원망하지 말고 얼른 깨어지면서 겸손히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 성으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때에 배에서 잠자던 요나는 제비가 자기에게 뽑힌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지도 않고 “내가 선지자인데, 왜 폭풍을 만나게 하느냐?”고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죄를 인정하면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 ”할 때, 뱃사람들도 하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 순간 풍랑이 잔잔해졌고, 하나님은 회개하는 요나를 살리려고, 큰 물고기를 준비했다가 꿀꺽 삼켜서 니느웨 성에 토해놓게 했습니다. 

 폭풍이 일어날 때 얼른 겸손히 회개하며 깨어져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 6:14)고 했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그 백성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풍랑이 일어날 때 죄가 생각하고 안 끊어지던 죄가 끊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폭풍의 거센 파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했고,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고백했습니다. 육신이 편안하면 죄지을 생각하기 쉽고,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 영혼이 깨어나고 더욱더 성결하게 됩니다. 

 노아 홍수 때 죄악을 씻어버린 것같이 인생의 풍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악을 씻어버리게 됩니다.


3.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불안과 근심의 폭풍이 몰아칠 때 정신을 잃지 말고 바다와 풍랑으로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야 합니다. 모든 인생의 풍랑은 깨어 일어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고 했습니다. 폭풍이 엄습하는 환난의 날에 무엇보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호사밧 왕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당황하게 될 때,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대하 20:9) 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애절하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하고 말씀하실 때에 선지자의 말을 믿고, 성가대원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나아가게 하면서“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하였더니,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사람들이, 연합군인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8장부터 보면 앗수르의 랍사게가 18만 5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온갖 욕설로 하나님을 욕하고 왕을 욕하면서, 빨리 나와서 싸워 보든지 항복하든지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항복하라는 편지를 사신을 통해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왔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 왕은 기가 막혀서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가서(왕하 19:15)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하기를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하면서 애절하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 19:35)고 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앗수르 군대를 치니까 18만 5천 명이 모두 다 죽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면 하룻밤 사이에 콜레라 병이 돌아 죽든지, 회저 병이 나서 죽든지 해서라도 못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천사”는 복수도 아니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천사 하나의 힘이 18만 5천 명을 해치웠으니, 하나님께 능히 못하심이 있겠습니까? 억천만 개의 별들을 지으시고 해와 달과 지구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불가능이 있겠으며, 없는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불가능이 없는 것같이 우리의 믿음의 기도도 불가능이 없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기도로 바꾸어 간절히 기도하면 태산이라도 옮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폭풍이 몰아칠 때 낯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전심전력으로 부르짖고, 눈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뜻밖에 생각지 않았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1992년 6월 21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1. 19930905 깨뜨리시는 하나님

    설교 일자1993-09-05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2. 19930829 앙모하는 신앙

    설교 일자1993-08-29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3. 19930822 영혼을 위해 치른 대가

    설교 일자1993-08-22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4. 19930815 하나님이 관심 깊게 보시는 것들

    설교 일자1993-08-15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5. 19930516 성령시대와 성도의 생활

    설교 일자1993-05-16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6. 19930502 확실한 백보좌의 심판

    설교 일자1993-05-02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7. 19930411 제자들의 부활신앙

    설교 일자1993-04-11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8. 19930314 생명보다 귀한 믿음

    설교 일자1993-03-14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9. 19930307 기도의 씨름 선수들

    설교 일자1993-03-07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0. 19930221 불안을 이기는 비결

    설교 일자1993-02-21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1. 19930214 성도의 죽음과 영원한 운명 

    설교 일자1993-02-14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2. 19930207 심령 관리의 비결

    설교 일자1993-02-07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8 Next
/ 28

전체 메뉴 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