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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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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2-05-10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창세기 9장 18~27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20510-18. 효도는 질서와 윤리의 기본.hwp

18. 효도는 질서와 윤리의 기본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9:26~27) 

 할렐루야! 먼저 무서운 적그리스도의 종들인 이단 교수들이 마침내 척결된 것을 감사하며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은 믿음의 승리요, 진리의 승리요, 기도의 승리 입니다. 6개월 동안이나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한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감사하며, 배후에서 초교파적으로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목사님들, 성도님들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는데 해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바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효도는 모든 질서와 윤리의 기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봉독한 창세기 9장 말씀은 보통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홍수 심판이 지난 후 노아의 가족들은 포도 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마셨는데, 노아는 이 포도주를 과도하게 마시고 하체가 드러나는 줄도 모른 채, 벌거벗고 잠이 들었는데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에 가운데 아들 함이 이 모양을 보고는 비웃고 조롱하면서 형과 아우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셈과 야벳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맞장구치며 비난하거나 흉보지 않고, 겉옷을 가져다가 애써서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을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드렸습니다. 잠이 깬 후에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해 주고, 함에게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가나안(함)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고 했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9:26~27)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함은 흑인들의 조상이 되고, 야벳은 백인들의 조상이 되어, 대체로 경제로 풍요한 복을 받아 선진국들이 되었습니다. 셈은 영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했는데 여기서“장막”은 교회나 예배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셈족을 통해 나타나셨고 한국도 셈족이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잘 받고 교회가 크게 부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 노아가 잘못했는데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비웃는 함은 저주를 받고, 얼굴을 돌이켜 애써서 그 허물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질서를 원하시지 혼돈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체의 해와 달과 별들이 각각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습니다. 해나 달이나 지구나 어느 유성들이 자기 궤도를 벗어나 서로 충돌한 일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반대로 사단은 혼돈과 흑암과 무질서의 창조자요 파괴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2절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며,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사단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있도록 파괴한 것을 하나님이 재창조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Cosmos)이고, 사단은 “혼돈과 무질 서”(Chaos)를 만드는 자요, 질서 파괴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도 예수님과 마귀를 대조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건강과 물질과 생명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하고, 혼돈과 무질서와 파괴는 사단의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2.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주 천체의 움직임이나, 국가나 사회의 어떤 집단이나 가정도 질서 있게 운영되고 유지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각자에게 필요한 권위와 권세를 주셨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authority)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고 했고, 4절에 “그는(관원들)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의 식민지로 있을 때인데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으니, 얼마나 질서와 권위의 하나님을 잘 인식하고 하신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흑암과 혼돈을 막기 위해서 가정과 국가와 교회에 다 필요한 권위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했고, 물론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엡 5:25)고 했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남편은 가정의 질서를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권위를 짓밟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짓밟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 자식은 부모에게 복종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철칙입니다. 부모가 잘 났든 못 났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부모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자이고 더욱이 자기 생명을 낳고 키워준 분들입니다. 이런 부모를 거역하거나 불효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짓밟는 행위이며 하나님 자신에 도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술 취해서 하체를 드러낸 실수는, 함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짓밟는 행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도전한 무서운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런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국가의 질서를 위해서 국민은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하라”(벧전 2:13~14) 했고,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고 사도 베드로도 말씀했습니다. 

 사회생활 하는 데도 소속된 회사나 기관에서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질서를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주께 하듯 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국가의 치리 자나 집단의 윗사람이나 부모가 우상숭배 하라거나 죄 짓는 일을 하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니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하여 세상 권위자에게 불순종하되, 국가가 주는 벌을 공손히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도 순종하고 세상 법에도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국가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탈세를 하거나 밀수를 하거나 해선 안 됩니다. 교통법규 하나라도 어기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회사에서 사장의 책상을 둘러엎고, 자동차에 불 지르고 하는 것은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요, 사단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 로스엔젤로스(L.A)의 흑인폭동 사태 같은 것도 법의 부재시대, 권위의 부재, 양심의 부재, 즉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회임을 극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방화, 절도, 살인, 혼돈이 사단의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보통사람의 시대 혹은 민주화 시대라고 해서,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에 무조건 도전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권위주의(權威主義)는 나쁜 것이지만, 권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권위주의는 교만, 허세, 멸시 등을 나타내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만, 권위 자체는 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에 도전하는 것은 사단적인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더욱더 권위를 존중하고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히 사단의 역사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고 했습니다.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도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자기를 지도해 주는 사람에게, 그 지도자들은 또 그 위에 있는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회원들은 회장의 말을 잘 듣고, 회장은 연합 회장에게 순종해야 질서 있게 부흥됩니다. 교인들은 장로님들께 순종하고, 권사 장로들은 목사에게 순종해야지, 장로가 결코 목사(제사장)와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장에 보면 바울이 공회 앞에서 변론하고 있는데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이유 없이 바울의 입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가 난 바울은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나를 치시리로다”하고 덤벼드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네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하니까 금방 돌이켜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되었으되 너희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도리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관원을 비방하지 말라고 하는 성경 말씀까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울도 얼마나 권위와 질서를 존중히 여겼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몸 된 교회요, 구원의 방주요 진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권위에 도전하고 불평, 비방, 이간이나 일삼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100%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런 사람치고 복 받고, 은혜 충만한 생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과 육이 아울러 망합니다. 

 이번에 이단교수 척결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투쟁했는데, 만일 우리 교회가 내분이 있거나 불평분자가 있었다면 결코 이 큰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다 이 목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3. 권위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거역하는 자에게 저주 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위하여 세운 권위자를 존중히 여기고 순종한 사람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거역하고 도전하는 자에게는 화를 내린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실수하여 구스 여자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방인, 그것도 아프리카 흑인을 아내로 맞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고 욕할 때 “어찌하여 내 충성된 종을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하시며 진노하셨습니다. 금방 미리암의 몸에 문둥병이 들어 얼굴이 희게 되었습니다. 아론보다 미리암이 더 윗사람이고, 반역의 주동자였기 때문에 더 큰 벌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는 자기 동생을 다스릴 수 있으나 하나님이 권위자를 거역하거나 비방할 권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한 다음에야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고, 하나님의 권위를 주셨는데 이것을 비방하고 거역하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정되었을 때, 사울왕은 시기, 질투의 악령이 들어와서 미치게 만들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은 몇 년 동안이나 피해 다녔습니다. 한번은 엔게디 굴속에 숨어 있는데, 사울 왕이 그것을 모르고 들어와 서늘하니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하나님이 복수할 기회를 주신 것이니 죽여 버리자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라”하고 왕의 옷자락만 베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결코 해하면 안 된다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그 옷자락을 벤 것마저도 괴로워했습니다(삼상 24:5). 그리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한번은 십 황무지에 숨어 있는데 사울 왕과 부하들이 다윗을 쫓아다니다가 피곤해서 밤에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에도 아비새 장군이 당장 목을 쳐 죽이라고 했으나 다윗은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하고 또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고 하여 죽이지 않고 대신에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만 들고 나왔습니다. 결국 사울왕은 전장에서 아들과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고,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었으나,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는 하나님이 처리하시도록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다윗을 축복하사, 죽을 때까지 그의 왕좌를 보호해 주시고 와석종신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반역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왕의 권위에 대한 거역이며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2중의 거역 죄를 범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고 한 말씀대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님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하나님이 가정의 질서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해도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부모공경은 모든 질서유지의 기초가 되고, 모든 원리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가 되면 훌륭한 시민도 되고, 훌륭한 제자도 되고, 훌륭한 회사원도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992년 5월 10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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