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보기

불기둥의 목자

조회 수 2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 일자 1987-09-27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태복음 16장 21~28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87-0927-14. 긍정을 위한 부정.hwp

14. 긍정을 위한 부정
마태복음 16장 21~28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어떤 사람이 깊은 산속에 들어갔는데 산불이 났습니다. 이제 그 산불이 밀려오면 자기는 타 죽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산불에 타 죽지 않고 살까 궁리하던 끝에, 자기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스스로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나무도 타고 풀도 타고 점점 타 번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탄 자리 가운데에 들어가 섰더니 산불이 더 이상 번져오지 않아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산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가 먼저 산불을 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는 길은 날마다 죽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빨간색을 하얗게 보려면 빨간 유리를 통해서 빨간색을 보면 하얗게 됩니다. 여러분이 실험을 해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긍정하는 것이요,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해 준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부인할 수가 있고,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가장 고상하고 좋은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불신앙의 사람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영생을 얻고 천국 가기 위해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선한 사람이 되고 수양하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사람, 또 복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거나 헌금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람, 하늘나라에서의 상급과 면류관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유치하고 잘못되었다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고상한 신앙이 아니라 믿음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아가서 허무주의자(nihilist)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상주시고 보상해 주신다는 것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래에 하나님이 주실 것보다 큰 보상을 위해서 현재의 적은 것을 과감히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세 영생과 영원한 상급을 위해서 현세의 생명과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호화로운 바로 왕의 궁궐을 박차고 나온 것은“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5~2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장차 얻을 참되고 영원한 상급을 위해서 현재의 일시적인 것을 용감히 희생하고 포기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긍정을 위해서 나 자신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긍정을 위한 부정”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고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살고 복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1. 살기 위해 죽어라


 한 알의 밀이 참으로 사는 길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밀알이 죽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죽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4~25)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사는 길은 죽는 것입니다.참된 자기 긍정을 위해 자기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고 하셨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으라는 것이지 목적 없이 죽어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어 없어진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 않습니다. 분명히“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요 10:17)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순교자들이 부활의 영생, 천국을 믿지 못했다면 결코 순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히 11:13)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자살하거나 자청해서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면서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사는 길은 죽는 것이요, 긍정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받기 위해서 주라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물질을 드리는 사람, 남을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주는 사람은 더 크게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 또한 역설적인 진리입니다.“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수억만의 신자들이 이 말씀이 진실한 약속이라는 것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더 큰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 위해서 주고, 또 바쳐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하여 꽉 안겨주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긍정을 위해서 부정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는데, 이것 하나 믿고 실천해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믿고 실천한 사람은 이것이 틀림없는 진리라는 것을 수억, 수천만의 사람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그것은 율법이라느니…”,또는“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이십분의 일만 드리겠느냐”고 한다든지,“축복을 바라고 바치는 것은 잘못되었다”느니 하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한마디로 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복을 주나 아니 주나 시험해 보라”고 했는데 인간이 어찌 하나님보다 더 고상하게 믿으려 합니까? 내 삽으로 퍼드리면, 하나님은 더 큰 삽으로 퍼서 채워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긍정을 위한 부정입니다. 예수님도“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보상과 축복이 아니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축복과 보상의 차원이 다르면 달랐지 축복과 때가 다르면 달랐지,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을 부인하면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부인하면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언젠가는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3. 높아지기 위해서 낮아져라

 

 남에게 존경받고 높아지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높아지는 비결이 역설적입니다.“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한마디로 자기를 낮출 때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으뜸이 되는 길은 섬기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치 그네를 뛸 때, 내가 힘껏 내려가면서 상대방을 올려주면, 올려준 만큼 내려오면서 나를 힘껏 높이 올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세상에 온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거룩하신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나서 말씀하기를“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아지는 방법을 통해서 높아지는 이것도 긍정을 위한 부정입니다.“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롬 12:16)고 했습니다.

 

4. 얻기 위해 버려라

 

 참으로 얻는 길은 믿음으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얻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잡아 바치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귀중한 독자를 번제로 잡아 바치라고 했을 때, 용감하게 3일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산에서 잡아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칼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 앞에 외아들까지도 포기하고 드리는지 안 드리는지를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보시고 양을 잡아 대신 드리게 하고 이삭을 도로 데리고 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외아들 메시아가 탄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자기 부정이 곧 긍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그릇으로 쓰시기 전에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가를 먼저 시험해 보십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주시기 전에 얼마나 버릴 수 있나를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큰 것을 주시기 위해 크고 좋은 것을 좀 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합격해야 예비했던 것을 주십니다.
 한 부자 청년은 재물을 버리고 나를 따라와 제자가 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것을 포기할 용기가 없어 가버렸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예수도 안 믿었으니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만 훨씬 못한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던져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더니 수제자가 되고, 또 목숨까지 버리고 순교했더니 현세와 내세에 엄청난 보상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본문에 예루살렘에 들어가“고난을 받아야만 하고”(must suffer),“죽어야만 하고”(must be killed), 또“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만 한다”(must be raised again)고 할 때 베드로가 붙잡고 간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임한다고 하는 그 나라가 어떻게 임하게 되겠느냐는 뜻으로 결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조금 전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를 창찬하셨지만, 이번에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시고 긍정을 위한 부정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의 부활이 있으려면 반드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자기 부정(self-denial)이 있어야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부자 청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났을 때, 베드로가“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을 때, 에수님은“그랬으면 되었지 무얼 바라느냐?”하시고 않고,“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어서“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 19:29~30, 눅 18:29~30, 막 10:29~30).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세상의 귀중한 것을 포기하면 세상에서도 보상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서도 영원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어야 포기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고 하시고, 끝에 가서는“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보상과 상급이 따릅니다.
 저는 요사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자기를 긍정하는 길이며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크게 받는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평생 목사로서 저금통장 없이 땅 한 평, 집 한 칸 없이 하늘에 보화를 쌓으려 했더니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하여 좋은 집을 주시고, 목사가 복음 잘 전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면 되지 무슨 감투나 박사 학위를 받겠는가 해서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었더니 그것도 강권적으로 마치게 해서 5년 만에 목회학박사 학위도 받게 하시고, 다시는 감리사 아니라 감독 같은 것 하지 않으리라고 했더니 선거도 하지 않고 박수를 쳐서 감리사도 되게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것임을 다시금 철저히 깨닫습니다. 주를 위해, 또 복음을 위해 포기하고 버리는 자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보상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 했고,“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긍정을 위해서 용감히 부인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1987년 9월 27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1. 19880410 진정한 저축

    설교 일자1988-04-10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2. 19880403 누가 이 돌문을 옮겨 주리요

    설교 일자1988-04-03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3. 19880327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설교 일자1988-03-27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4. 19880320 빚진 자냐 빚 준 자냐

    설교 일자1988-03-20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5. 19880306 믿음의 칠대 장애물

    설교 일자1988-03-06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6. 19880228 진정한 권위

    설교 일자1988-02-28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7. 19880221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한다

    설교 일자1988-02-21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8. 19880214 가장 어리석은 사람

    설교 일자1988-02-14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9. 19880207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설교 일자1988-02-07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0. 19880131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십니다

    설교 일자1988-01-31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1. 19880117 동역을 원하시는 하나님

    설교 일자1988-01-17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12. 19880110 부흥을 위한 기도

    설교 일자1988-01-10 설교 분류기타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Next
/ 28

전체 메뉴 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