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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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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89-03-12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89_0312_7. 실상을 보는 믿음.hwp

7. 실상을 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기독교에서“믿음”이란 말을 가장 많이 쓰면서도 믿음에 대한 개념도 불분명하고,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지내는 분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씀에 의지해서“실상을 보는 믿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보는 것같이 믿는 신앙


 참된 신앙은 내가 바라고 믿는 바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실상을 보는 것과 똑같이 믿고 생각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고 했지만, 기독교 신앙은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도리어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믿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고 했습니다.

 여러분! 총기가 눈에 보입니까? 라디오나 TV의 전파가 눈에 보입니까? 하나도 보이지는 않지만 이 가운데 가득 차 있습니다.이와 같이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이 가운데 가득히 임재해계시지만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보이진 않지만 그 실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이니라”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똑똑해서 대답한 것도 아니고, 지식이 많아서 그 지식으로 대답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 심령에 깨닫게 해 주셔서 그와 같은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던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환상으로 하나님을 보았다든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든가 한 것도 아닙니다. 또한 온몸이 화끈했다든가 찌르르하면서 전기가 통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심령에 감화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셔서 그와 같이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며칠 후에 보면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사단아!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도 베드로에게 사단 마귀가 시커멓게 생기고 뿔이 달린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물체나 환상이 보이지 않았고 마귀가 일러주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분명히 예수님은 “사단아!내 뒤로 물러가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천사나 마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재하지 않는 것을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실재를 보고 만지는 것 이상으로 매일매일 순간마다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코 보는 것이나 듣는 것에 의존해선 안 됩니다.무슨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어야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아직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이 자리에 임재하십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며,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는 손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혼과 영으로 구성되었다고 늘 말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으로 먹는 것은 입으로 씹어서 먹지만 혼, 즉 정신적으로 먹는 것은 따져보고 이해해서 먹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먹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을때는 “아멘”으로 받아먹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이성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고 말씀했습니다.

 실마이(Silmai)라는 유대인 랍비가 말하기를, 모세는 356가지의 금지하는 계명과 248가지의 적극적인 계명을 말씀했으나 다윗은 시편 15편에서 11개의 계명을 말했고 이사야는 33장14~15절에서 6가지 계명만을 말했으며 미가 선지는 6장 8절에서 오직 3개의 계명만을 말했으나, 하박국 선지자는 오직 하나“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아직 눈에 안 보이지만 보는 것 이상으로 믿고 나가야 하고, 지옥이 우리 눈에 안 보여도 보는 이상으로 믿고 지옥에 떨어질 영혼을 하나라도 더 구원하도록 힘써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2. 받은 줄로 믿는 신앙


 참으로 산 믿음은 육안으로는 안 보여도 그 실상을 보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이, 진정한 믿음은 내가 믿고 기도하는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받은 줄로 믿고 나아가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셨습니다. 23절에는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참된 신앙은 아직 받지 못했고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받은 줄로 믿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 지식으로 따져볼 때 안 될 것 같아도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을 잘 받는 비결 중에 하나는 내가 구하는 것이 정욕에서 나온 것이 아닌 이상 기도하고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영상을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매일 한 바퀴씩 나팔을 불며 돌았고 마지막 날은 일곱 바퀴를 돌았을 때 와르르 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6일째 돌고 난 뒤에도 성벽에 금이 가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날 다섯 여섯 바퀴 돌 때에도 흔들리지 않은 줄 압니다. 믿음의 완성 기도의 분량이 다 찼을 때,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믿고 바라는 것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받은 줄 믿고 나갈 때 마침내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해결 받기 위해 기도할 때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해결된 실상을 그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말하기를“믿음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can)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실 것(will)이라고 믿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어느 교회에 부흥회를 갔을 때, 저녁예배를 마치자 어떤 사람이 병 낫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얼굴을 보니까 믿음이 있어 보이지 않아서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꼭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까?”했더니,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면서“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 번 받아 보려고 해요”라고 해서 야단만 쳐주고 안수기도도 안했던 일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 소리를 높여“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고 부르짖으니까 예수께서는“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실 때에“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눅 17:14)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능력 있는 믿음, 하나님께 응답받는 믿음은 받은 줄로 믿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결과가 나타난 것을 본 다음에 믿는 것은 반신반의한 믿음이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하면서“할 수 있거든 이 아이를 고쳐주십시오”할 때 예수께서 책망하시면서“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믿고 바라는 것이 정욕이 아니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한, 받은 줄 믿고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실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3. 행동으로 옳기는 신앙


 진정 산 믿음은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입니다. 1860년에 블른딘(Blondin)이라는 사람은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 위에서 많은 관중이 보는 앞에서 줄타기를 하며 곡예를 보였습니다. 그 160피트나 높은 데서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곡예를 보여주고 난 다음에 “여러분!제가 등에 한 사람을 업고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을 때 모두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잠시 후 내려와서 한 사람에게 “자, 등에 업히십시오.”하니까 싫다고 거절하더랍니다.

 업을 수 있다고 긍정하는 대답은 하면서도 막상 업히지는 않더랍니다. 정신적으로 말로 동의하는 것과 실천하는 참 믿음(real belief)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행동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존 라이스(John. R. Rice)라는 사람은 말하기를“하나님의 말씀이 끝났는데 다시 의문표를 달지 말라(Never put a quest ionmark when God hat put a period)”고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목적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 많은 의문과 순종할 수 없는 조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침 일찍이 나귀에 장작을 싣고 사환을 데리고 떠나갔습니다.‘주실 때는 언제고 바치란 땐 언제인가, 죽인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나’온갖 모순과 의문이 다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안 다음에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엄청난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말과 생각으로만 동의하는 것 가지고는 참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행동은 계산과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아랍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왔을 때 엘리사는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왜 그냥 안수해서 고쳐주지 않았을까요?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그는 처음에는 노를 발하면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종들이 간청하는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옷을 벗고 일곱 번 몸을 담그고 난 다음에야 어린아이 살과 같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행동으로 옮겨야 참 믿음이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기껏 병 기도를 해주고 나면 믿지도 않고“무슨 병원에 갈까요?”하고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그럴 바엔 왜 기도를 해 달라고 합니까?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는데도 생전 병자를 위해 기도를 안하는 교역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능력이 한량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가르치면서 실제 행동은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령 십일조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축복해 주신다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십일조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적도 축복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했는데, 이보다 더 간곡한 말씀, 축복에 찬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5년, 10년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질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만도 이 십일조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 수천 명이 될 것입니다. 매일 피부로 느끼며, 하나님이 사업과 생활을 간섭하시고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사는데 행동으로 옮겨보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처럼만 생각되고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진정한 믿음, 살아 역사하는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실상은 뚜렷히 바라보는 믿음이며, 또 손에 잡히지 않아도 응답이 오기 전에 받은 줄로 믿는 신앙이며, 말씀대로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입니다. 아멘.

<1989년 3월 12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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