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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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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0-04-22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태복음 26장 36~39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00422-13. 쓴 잔을 회피하지 말자.hwp

13. 쓴 잔을 회피하지 말자 

마태복음 26장 36~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어느 분이 시원한 콜라를 마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미국 사람들이 저 버릇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조금만 덥고 목마르면 얼음냉수나 시원한 콜라 같은 것을 마셔 버릇했기 때문에 덥거나 목마른 것을 참지 못하고 조그마한 고통도 참을 줄 모르고 극기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술이나 담배뿐 아니라 이제 온갖 마약도 서슴지 않고 복용하다가 결국은 무서운 죄를 범하며 폐인이 되고 맙니다. 

 어제도 법무부 갱생보호회 일을 맡아 보시는 박수일 목사님이 저에게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간청하면서 지금 한국에는 마약 복용자가 40만 명이나 되고, 또 중독자와 범죄자가 급속 도로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라 이것이 한국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세계에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고통을 참거나 극기할 줄 모르고 도리어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드는 성향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술과 담배를 먹을 뿐 아니라 마약을 사용하고 혼숙을 하는 등 음란 방탕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극기나 타인을 위한 희생 같은 것은 거리가 먼 단 어들이 되고 웃기는 말로 들어 넘기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복되게 하고 살리는 일과 위대한 일들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져 왔고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쓴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날 아무리 달콤하고 시원한 것만 마시기 좋아하는 세대가 되었을지라도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는 사람이 있어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밀알이 거름 냄새나 습기 찬 방속에 들어가 죽기 싫다고 그대로 있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없고 결국은 자기도 사는 것 같지만 죽는 결과가 오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달콤해 보이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세상에 저주와 멸망이 들어왔지만 제2의 아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쓰디쓴 잔을 받아 마심으로 세상에 죄 사함과 용서와 사랑과 영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계신고로 이 십자가의 쓴 잔을 앞에 놓고 심히 고민하며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엎드려 기도하시기를“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지만 곧 이어“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피, 쓰디쓴 고통의 잔을 마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주신 쓴 잔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쓴 잔을 잘 받아 마실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쓴 잔을 마시는 분이 많을 때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이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세대는 희생이나 쓴 잔을 마시는 것을 바보 취급하고 웃기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가치기준이 전도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국 전쟁 때 중요한 메시지를 적진에 들어가 전달해야 될 일이 있어서 한 사신에게 메시지를 들려서 군인을 달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도착하기 전에 적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 그를 따라갔던 병사도 큰 부상을 입었지만 얼른 그 메시지를 꺼내 가지고 적의 손에 들어 갈까봐 부상입어 피가 흐르는 자기 옆구리에 집어넣고 계속 달렸습니다. 피를 다 쏟아서 말은 하지 못하지만 웃는 얼굴로 간신히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가리켰습니다. 그 속에는 그 중요한 메시지가 나왔는데 그 병사는 죽었습니다. 치료하던 의사가 말하기를 “그 상처는 죽을 만큼 심하지 않았는데 그 종이를 쑤셔 넣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사의 용감한 희생으로 큰 전과를 올리고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쓴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야 나라도 잘되고 교회도 부흥되고 많은 영혼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2.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 


 예수께서 고통의 쓴 잔을 마셨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이 찾아왔고 수억만의 구원받은 성도들로부터 영원히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계시록에 보면 어린 양의 피로 속 죄 받은 천천 만만의 셀 수 없는 성도들이 찬양과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서 면류관을 쓴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고통과 희생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는 달콤한 축복의 잔, 영광의 잔을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희생의 쓴 잔을 마신 만큼 영광의 면류관과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달콤한 것 속에는 멸망과 파괴의 독이 들어 있는 수가 많습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잠 5:3 이하)라고 했습니다. 달콤하고 미끄러울수록 나중에는 백배 천배 쓴 맛을 보게 되고 두 날 가진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 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어서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까지 된 것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쓴 잔을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정든 고향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정처도 없이 정들고 달콤한 고향을 떠날 때 그것도 목적지도 없이 떠날 때 얼마나 쓰디쓴 고통이었겠습니까? 사라는 쭈구렁 바가지처럼 늙은 할머니인데도 아들 하나 보기 위해서 젊고 예쁜 하갈과 처음으로 가져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할때 그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쓴잔을 피하지 않고 냉정히 쫓아버렸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100세가 돼서 얻은 아들을 잡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외아들을 잡아 바치는 심정은 칼로 가슴을 째고 소금을 끼얹는 것 같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쓴 잔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 마셨습니다. 중심을 보신 하나님이 아들에게 칼을 대지 못하게 하시고 대신 양을 잡아 제사드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쓴 잔을 순순히 받아 마셨기 때문에 온 세계에 뛰어난 인물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쓴 잔은 안마시고 달콤한 면류관만 받아쓰려고 하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성장의 비결을 배우려는 분들이 많은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려는 마음은 없으면서 큰 교회로 부흥시켜 명성을 날리고 봉급이나 많이 타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면 큰 착각에 빠진 것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욕심이요 정욕입니다. 십자가의 쓴 잔은 회피하면서 영광의 면류관만 받아쓰려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3. 쓴 잔을 회피하지 말라 


 우리는 신앙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쓴 잔을 회피하는 약삭빠른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남들이 회피하고 안 마시는 쓴 잔을 잘 받아 마시는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도 존경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칭찬받고, 대접받는 일에는 빠지지 않고 앞장서서 나오는데 괴롭고 힘든 일에는 미꾸라지처럼 빠지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타산적이고 약삭빠른 사람은 하나님도 인정하시지 않고 사람들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농속에 간직한 비단이 되지 말고 손쉽게 필요할 때 쓰여지는 걸레가 되자”고 했습니다. 괴로운 일, 궂은 일 귀찮은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쓴 잔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4)라고 했습니다. 좋은 음식 차려놓고 뚱땅거리고 노는 잔치 집에는 가기 좋아하지만 송장냄새 나고 밤을 새우고 무거운 관을 메는 초상집에는 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는 것이 달콤한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지혜로운 처사입니다. 

 피곤할 때, 바쁠 때, 밤에 잠들었을 때 심방 가자고 하면 참 죽을 맛이지만 그럴 때 잘 가야 훌륭한 교인이고, 훌륭한 교역자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장로를 택해서 세울 때 먼저 신앙상태, 인격과 성품 등을 다 살펴본 다음에는 오밤중에 전화를 해서 좀 나오라고하여 짜증나는 일들을 시켜본다고 합니다. 그럴 때 순종을 잘 하면 장로로 세우고 핑계대고 약삭빠르게 굴면 안 세운다고 합니다. 

 교사나 성가대를 해도 일기 좋고 신날 때, 먹을 때, 놀러갈 때는 잘 나오는데 비 오는 날,추운 날, 귀찮은 날은 성가 연습도 안 나오고 교사가 애들 가르치러 안 나와서 애들이 어미닭 잃은 병아리떼처럼 흩어져 다녀도 그냥 내버려 두는 그런 교사가 되어선 안되겠습니다. 

 지난번 파라과이에서 권사님 한 분이 늘 웃는 인상으로 힘든 일, 궂은 일, 귀찮은 일을 도맡아하는데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삶을 보았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그 권사님 칭찬하기를“저분은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없는데 무슨 일이든 일꾼이 적을 때는 언제나 옆에 있곤 한다”고 칭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권사님입니다. 

 다윗(David) 왕이 이새의 말째아들이며 천한 목동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가장 훌륭한 왕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양떼를 지킬 때에도 밤잠을 제대로 못 자가며 곰이나 사자가 나타날 때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쫓아가 물리쳐 다른 형들이 귀찮아서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양들이 맹수한테 잡혀가든 말든 낮잠이나 자고 농땡이나 피웠으면 결코 그런 훌륭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골리앗 장군을 때려눕힌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장수들이 다 무서워 나가지 못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 사자나 곰이 나타났을 때 싸우던 경험으로 물멧돌을 던져 골리앗을 맞추어 죽이지 않았습니까? 궂은 일, 괴로운 일, 수고로운 일을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괴롭고 고통스런 쓴 잔을 회피하지 맙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요단 동편에 자리를 잡고 살겠다고 할 때“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않아 있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느냐”고 할 때 기업은 요단 동편 땅을 받고 싸울 때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고 말하였습니다. 달콤한 것만 찾아 먹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에 동참치 아니하면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쓴 잔을 회피하지 맙시다. 

 제가 어떤 때는 부흥회 나가기가 참 싫을 때가 있고 또 부흥회 인도하다가도 가방 들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강단에 엎드려 기도할 때 마귀가“그만 두고 가라”고 

유혹하며 충동을 일으킬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괴로워도 기분이 나빠도 참고 쓴 잔을 마시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더 큰 역사가 일어나고 큰 은혜가 넘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지난번 남미에서도 중간에 그만두고 오고픈 시험을 많이 받았지만 괴로움을 참고 이겼을 때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지난번 이천 중앙교회에서 부흥회 인도할 때도 이천 양정고등학교에서 부활절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도 육신의 생각으로는 “못 간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내 심령에는 “너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사람이 아니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되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있으냐?”하는 음성이 들려와서 괴롭고 피곤하지만 순종 할 때 역시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낮 예배에나 밤 예배에 특별히 나가기 싫을 때, 마귀가 방해할 때, 이기고 나오면 반드시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으로 영을 따라 사는 신자가 쓴 잔을 회피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못 받습니다 

 여러분 베드로(Peter)의 순교사화를 다 잘 아시지요.<쿼바디스>란 영화를 봐서도 아실 줄 압니다. 로마의 박해시대 때 베드로가 순교하려고 했으나 그의 제자들이 강권하면서 잠시 피했다가 복음을 더 많이 전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할 때 할 수없이 로마 도성을 빠져나갈 때 알반 언덕에 이르자 환한 빛이 나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로마 성을 향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 할 때 “네가 양떼를 버리고 도망가서 내가 다시 가서 십자가를 져야겠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로마에 들어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거성 등 남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들은 남들이 싫어하는 쓴 잔을 회피하지 않고 잘 마신 사람들입니다. 쓴 잔이 앞에 다가올 때 회피하지 맙시다. 아멘. 

<1990년 4월 22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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