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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2016.03.25 15:26

19920524 거룩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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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2-05-24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태복음 10장 28~31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20524-20. 거룩한 두려움.hwp

20. 거룩한 두려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지난번 감리회관에서 변선환, 홍정수 등 교수를 재판하려고 할 때, 수백 명의 감신대 학생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리며 재판을 못하도록 방해하며 부르는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혀 잘린 하나님, 화상 당하여 얼굴을 가리운 하나님,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그래도 민중의 아버지.”이 두 교수를 옹호하는 운동권의 학생들이 부른 노래가 이렇게 망령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짓밟는 노래였습니다. 나는 북한에서도 이런 정도로 악랄한 노래는 못 들어 보았습니다. 

 결국 감금당하여 몇 시간 동안 고생하다가 재판을 못하고 풀려 나왔는데, 재단 사무국에서 기물이 파괴된다고 다시는 재판을 못하게 해서, 서울 연회 감독님이 시무하는 종교교회에서 하자니까, 펄펄 뛰며 못하게 해서 정동교회에서 하려다 허락 안 해서 못하고, 감리교 신학대학에 가서 한다니까 못하게 해서, 결국 저도 태국 가서 없는 동안에 금란교회에서 재판하여, 출교 처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두 교수를 지지하는 학생과 젊은 교역자들이 부른 노래 하나만 보아도 그들이 사단의 무리이지 결코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두려움을 갖는 법입니다. 아무리 신학교 교수요 목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참 믿음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영혼의 귀중성도 믿지 않고,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것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믿지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지껄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아무런 학설이나 함부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말장난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라고 말씀했습니다. 버릇없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함으로 떨며 즐거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땅이여 너는 주 앞,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시 114: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참 믿음이 없는 사람이며, 남이 안 보이는 데서 무슨 죄라도 지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적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신앙을 믿을 수 있고, 그 사람에게 무엇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성경은 모두 죄와 악의 주원인은 그들이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참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두려움을 가지는 법입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fear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렘 2:19)고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시 32:9)라고 했는데,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심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까이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즉 “야훼”라는 이름이 나오면 붓을 다시 빨아서 떨며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훼”라는 이름을 감히 쓸 수가 없어서 대명사 격인 “주”즉 “아도나이”를 썼다고 합니다. 얼마나 산 신앙입니까? 

 저는 지나친 고집인지 모르지만,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당신, 당신”하면 불쾌하게 들립니다. 누가 자기 아버지한테 “당신, 당신”합니까? 한국말로는 “당신”은 3인치에 가 야 극존칭이 되고, 2인칭으로 맞대면하고 말할 때는 극존칭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자기 아내나 흠 없는 친구한테나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하다가도 “예수가, 예수가”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 “예수님”한다든지 “예수께서”해야 옳습니다. 지금 여기 살아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망령된 말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윷놀이하거나 무슨 오락을 할 때에도 함부로 “주여, 믿습니다. 모나오게 해주세요.”하는 걸 보는데, 그것도 잘못된 태도라고 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높이 들린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둘러선 스랍들을 보았는데,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둘로는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는 광경을 보고, 이사야는 꼬꾸라지면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저절로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언행심사에 조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홍정수 교수는 당돌하게 신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만일 신은 계신가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하고(베짜는 하나님 p.56) 또“신 없는 종교를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리고 무신시대(하나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종교까지는 몰라도 꼭 신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무엄 방자한 수작입니까? 그뿐입니까? “예수는 당시의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느 모로나 정결한 사람이 아니라, 더러운 사람이었다는 점을 가리킨다.”고, 예수님을 더러운 사람이라고 했으니, 장차 그 심판을 어떻게 받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구속의 종교요, 십자가의 피의 종교인데 그것을 부인하면서 “…예수라는 인간의 생체조직이 신적인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거나(예수님의 신성을 부인), 그의 피가 동물들이 흘리는 피보다 월등하게 효과가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돼지나 개나 소의 피나, 예수님의 거룩한 피가 같다는 말입니까? 얼마나 큰 신성모독입니까? 왜, 오늘 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느냐 하면,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두 교수가 출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상을 가진 교수나 목회자들이 이들을 살려 보려고 지지성명을 내고 떠들어대기 때문에 기가 막혀 하는 말입니다.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양심이 털끝만치라도 있으면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명단에 나온 목사님들한테 전화해 보니까, 대부분이 자기들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상을 가르칠 수도 없고 동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2. 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죄 짓기를 두려워하고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서슴없이 제멋대로 죄를 짓는 사람은 아직 참 신앙이 없는 사람이며, 만일 거듭난 신자가 실족하여 범죄 했다면, 다윗처럼 심한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회개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멋대로 범죄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참된 믿음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했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4:27)고 했습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 치 말지어다”(시 4:4)라고 했습니다. 죄 짓는 것, 죄의 심판이나 징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참신앙의 사람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개인이나 국가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사실은 최후에,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았을지라도 범죄하면, 최후의 심판은 받지 않을지라도 세상에서 100배, 1,000배 죄의 쾌락보다 더 큰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받을 때에도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니까”(창 39:9) 하고 물리쳤습니다. 불과 같은 눈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항상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떨게 됩니다. 성경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두게 됩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 66: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떠는 사람을 돌보아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알고 방자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자는 마귀의 사람이지 결코 참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 13:13)고 했고,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시 119:161)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비방을 하고 핍박을하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고, 하나님께 상을 받게 됩니다. 

 저는 요사이 이단교수 척결에 앞장 선 다음부터 온갖 핍박과 비방과 욕을 먹습니다. 평생에 알지도 듣지도 못하던 거짓말, 염문도 듣습니다. 심지어 나의 집을 밤에 폭파하겠다, 예배당을 불태우겠다, 평생 두고 복수하겠다, 별소리를 다 듣습니다. 육신의 감정으론 분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 없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성경 말씀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특히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하는 말씀으로 여러 차례 위로해 주셨습니다.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거짓말로 거스르는 말을 듣는 만큼 축복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상이 큰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멸망했습니다.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고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 36:15~16) 비참하게 멸망하고 살육을 당했습니다. 말씀을 멸시하고,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욕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 보십시오. 

 그런데 소위 신학대학 학장이라는 사람이 “마리아가 낳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하고, “예수를 우상화하면 안 된다.”고 하고,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고,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독입니까? 그런데 재판위원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출교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들을 살려보겠다고 지지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다음에 그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받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구원도, 심판도 믿지 않으니까, 그런 행동을 감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4.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축복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축복을 깨달을 때 두렵고 떠는 마음을 가져야 정상적인 크리스천입니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아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5) 한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로 보니까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나아가리라(They shall come in fear to Lord and to his godness)”는 뜻입니다. 

 가령 사형집행 당할 사람이 사면 받을 뿐 아니라 좋은 집과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하면 두려움과 감사를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양이나 몰던 목동이요, 변변치 못한 가문의 막동아들인데, 잘난 형들을 다 제치고 왕이 될 뿐 아니라 엄청난 축복을 받았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마음씨 때문에 평생, 하나님 마음에 드는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찬송가“나 같은 죄인 살리신…”405장의 작사가 존 뉴턴(John Newton)은 어려서부터 포악하고 거칠어서 못된 짓을 많이 했고, 군대에서 탈영하여 아프리카로 도망가다가 거기서 붙잡혀 노예 상인의 흑인 아내의 노예가 되어 온갖 학대와 멸시를 받고, 헐벗고 굶주리기도 많이 하다가 나중에 노예장사를 했는데, 얼마나 못되었는지 노예의 팔을 잘라 바닷물에 넣기도 하고, 노예를 죽여 물에 쳐 넣기도 했던 사람인데, 바다에 폭풍을 만나 침몰될 위기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후에 그는 영국 교회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복음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신앙적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라야 참된 크리스천입니다. 할렐루야! 

<1992년 5월 24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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