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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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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2-02-16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태복음 24장 23~28절, 갈라디아서 1장 7~8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20216-8. 자유주의 신학은 사단의 가장 큰 도구.hwp

8. 자유주의 신학은 사단의 가장 큰 도구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영국 웨일즈 대학교의 신학교에 가서 신학생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다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한 영국 목회자는 강의를 듣고 난 뒤 “망치로 가슴을 두들겨 맞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제가 쓴 작은 영어 책자를 열 번도 더 읽었다고 했습니다. 스완시(Swansea)에 있는 대학교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는 미국의 웨스트 민스터(Westminster) 신학교까지 나온 유력한 목사님이 참석했는데 줄곧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하나 다 적어가며 은혜를 받고 나더니 “꼭 그런 목회를 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처음에 강의를 한 램피터(Lampeter)에 있는 신학교에서는 중국 북경에서 웨일즈 대학에 온 두 교수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박사학위 공부하고 있는 교수인데 시간시간 참석하며 은혜를 받고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교수는 “내가 영국에 온 후에 가장 훌륭하고 가치 있는 강의를 들었다.”고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공산당이었고 무신론자들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백인들이라 콧대가 높아서 많이 모이지 않은 것을 보고 실망했으나 간증들을 듣고 나니 하나님의 보내신 섭리가 계신 것을 깨달았고, 제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으나 그렇게 은혜들을 받는 것은 배후에서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해 준 덕분이라고 믿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어느 분이 말한 대로 “배후에 간절한 기도의 뒷받침이 없이는 참된 선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수십 년에 웨일즈 지역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던 곳이고,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에 선교사로 왔다가 목이 잘려 순교한 토머스 목사님도 바로 웨일즈 사람이었고, 그 후손과 친척들이 램피터에서 20마일 밖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부흥이 일어났던 웨일즈였건만 이제는 교회들이 거의 다 죽어가고 있고 형식만 남아있었고, 교회가 죽으니까 신학교에 오는 사람이 없어지고 또 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못해 주니까 신학교 운영이 어려워서 이슬람교에서 일 년에 100만 불씩 원조를 받으면서 회회교의 조정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어떻게 기독교의 신학교가 다른 종교인 회교의 돈을 받아먹겠습니까? 그 이유가 어디있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종교다원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사단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큰 도구입니다. 따라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큰 종들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목사 한 사람이 잘못 되면 그 교회 하나만 파괴되지만 교역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가 잘못되면 수많은 잘못된 목회자를 양성하여 다량으로 교회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독사가 많은 독사 새끼를 낳는 것같이 말입니다. 


1. 자유주의 신학은 구라파의 교회들을 죽이고 미국의 교회까지 죽이고 있습니다. 


 구라파의 교회들을 가보면 한때 수천 명씩 모이던 거대한 교회들이 몇 십 명도 안 모이는 죽은 교회들이 되었고, 이제는 여행객들의 방문 장소에 지나지 않고, 볼펜 같은 기념품이나 팔아서 유지비로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수십 년 전부터 횡행하던 다원주의(pluralism)니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구라파의 교회들을 죽인 사단의 역사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교회들을 죽여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1965~1990년까지 25년 동안 400여만 명이 연합감리교회를 떠났고 지금까지도 매일 350명짜리 교회가 하나씩 문을 닫고 없어지는 형편입니다. 미국의 연합장로 교회는 교세가 감리교의 절반도 안 되는데다가 더 자유주의여서 감리교회보다 더 빨리 감소되는 추세입니다. 매일 203명짜리 교회가 하나씩 문을 닫고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말세에 믿는 자를 찾아보겠느냐”고 탄식하신 말씀대로 믿음이 식어지고, 따라서 성경을 불신하고 뒤엎는 자유주의 신학이 횡행하기 때문입니다. 호주에 가보니까 역시 연합교회(Uniting Church)가 죽어가고 있어서 마치 숨이 넘어가고 있는 시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 하나는 미국이나 호주나 연합(United, Uniting)자가 들어간 교파는 더욱 빨리 쇠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교회가 죽어가고 있고, 죽어가는 교단끼리 뭉쳐나 보자 해서 폭넓게 수용을 잘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성경의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수호하지 못하고 합치기만 잘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사단의 배교운동 즉 자유주의, 이단 신학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 배교운동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말, 150년간에 걸쳐 유럽으로부터 교회와 신학교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유럽의 교회들을 파괴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교회들을 죽여 놓고 있으며, 이제는 전 세계에 퍼져 한국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A)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배경 

 ① 합리주의 사상(rationalism)입니다. 

 원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이 성경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믿어야 되는 것인데,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비평하기 시작하면서 성경의 오류를 찾아내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해 도전을 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자들의 대표가 애쉬트록, 그라픈, 뉴슨, 벨하우젠, 드라이버 등입니다. 

 ② 사회복음 운동(social gospel movement)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대속하시고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과 부활을 얻게 하고 지옥으로부터 천국에 들여보내기 위해 오셨는데 인간의 이성으로 비판하다 보니 영생 부활이나, 영혼 구원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대신 내세운 것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참여를 부르짖으며 사회복음을 강조하게 되었고 영혼구원이나 영생의 복음은 현실도피주의라고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월터, 타우젠 부쉬, 옥스남 같은 사람입니다. 

 ③ 실존주의 철학(existentialism)입니다.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신비적 주관주의가 팽배해지고 실존주의 철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키에르 케고르, 위겐 스타인, 부르너, 불트만, 바르 트, 틸리히 같은 사람들입니다. 

 ④ 행동주의 신학(behaviorism)입니다. 

 영생이나 부활을 믿지 않고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니까, 2차 대전을 전후하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이라도 감행해야 된다는 행동주의 신학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폭탄을 들고 들어갔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본회퍼(후에는 잘못을 참회함), 하비콕스, 리처드 니버, 간디, 마틴루터 킹 같은 사람들입니다. 

 ⑤ 과학적 방법입니다. 

 성경말씀은 심령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게 되니까 과학적 방법을 쓰게 되었는데,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에 의한 세계관과 진화론이 지성인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다윈의 진화론까지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창세기 같은 성경은 꾸며낸 이야기, 설화 취급을 하게 된 것입니다. 


 (B) 자유주의 신학(배교사상)의 침투 

 ① 회중교회 

 미국의 청교도 운동으로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같은 목사가 큰 부흥 운동과 선교 운동을 일으켰으나 18세기부터 사단 마귀의 자유주의 신학이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19세기에는 목사의 50%가 Unitarian(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인함)이 되었습니다. 1922년에는 하버드 신학교와 뉴턴 신학교가 합치면서 완전히 자유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1931년 미국 기독교 대회에서는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었고 그 후 회중교회는 완전히 자유주의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1956년에는 두 교파가 연합하여 The United Church of Christ가 되었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② 감리교회 

 1908년에 보스턴 대학의 H.G. 미첼 교수가“Social creed of church”(교회의 사회신조)란 문헌을 발표하면서 벨 하우젠의 문서 설을 가르치게 되었고 따라서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면서 더욱 자유주의 신학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1922년에 에드보 케이트(Advocate)와 메서디스트 리뷰(Methodist Review)라는 자유주의 잡지를 발행하면서 신학이 더욱 잘못되어 갔습니다. 여기에 반발하여 문홀 목사와 헤럴드 폴 슬로니 목사 등이 “essential”(기본교리)이란 잡지를 내면서 성경 교리를 주장하고 수호하려고 했으나 자유주의가 너무 강해졌기 때문에 리더십 부족으로 대세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1930년에는 랠이라는 자유주의자가“Home Study Course”를 담당하면서 점점 더 성경에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로는 에드워드 루이시(Edward Louise)와 옥스남(Oxnam) 감독이 있습니다. 드루 신학교 교장까지 지낸 옥스남 감독은 구약의 하나님은 “a dirty bully(더러운 깡패)”라고까지 불렀습니다. 1939년에는 무심한 좌경분자들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이 감리교를 이탈해서 “Bible Protestant Church”란 교파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단의 신학인 자유주의의 교육을 받았으니까 변선환, 홍정수교수 같은 사람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③ 장로교회 

 미국의 장로교회는 감리교회보다 더 타락했습니다. 1891년 1월 20일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취임하면서 브리그스(Charles A. Briggs) 박사가 “성경교리와 이성”이란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교리나 이성이 성경만큼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에 오류가 많다고 하고,모세와 이사야가 모세 5경과 이사야서의 저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1893년 장로교 총회는 브리그스 박사를 자격 정지 시켰으나 유니온 신학교는 이에 반발하여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독립하고 그 교수를 유임시켰습니다. 1923~24년엔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한 두 젊은이나 예수의 처녀탄생을 부인하는데도 뉴욕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주게 되었고, 그 중에 한 사람이 헨리 벤 듀센 박사인데 1948년 WCC가 창설될 때 회장으로 당선되어 오랫동안 끌고 갔습니다. 

 1910년, 이에 반발한 장로교 총회는 목사는 최소한 다섯 가지 기본교리를 믿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성경의 무오설, 처녀탄생, 대속의 교리, 부활, 성경의 기적 등을 믿어야 한다고 했으나, 자유주의 신학을 물먹은 목사가 많이 나오게 되자 표 대결을 해도 이제는 이길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물들게 되자 메이첸, 윌슨, 알리스, 벤틸 교수 등이 나와 필라델피아에 웨스턴 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하여 독립하여 진리를 수호하며 건전하게 가르치는 신학교가 애즈베리 신학교인데, 이 학교 졸업생은 서로 모셔가려고 하고, 교회를 부흥시킨다고 합니다. 

 이 세 교파 외에도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단과 교회들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자유주의 신학, 마귀의 신학이 세계에 퍼지는 가운데 한국에도 들어와서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지 않으면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쇠퇴하게 되고 수많은 영혼을 잃게 됩니다. 


2. 자유주의 신학은 목숨 걸고 배격해야 합니다. 


 구라파의 교회들을 죽여 놓고 미국의 교회들을 죽이고 온 세계 교회를 죽이려 드는 자유주의 신학은 사단 마귀의 가장 큰 도구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는 무당이나 히틀러나 사단보다 무서운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무당이나 점쟁이는 그렇게 큰 피해는 주지 못 하고, 히틀러가 600만 유태인을 죽였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온 천하 보다 더 귀중한 영혼을 6,000만도, 6억도 죽여서 영원한 멸망으로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① 성경의 근거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 

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라고 했습니다. 바울 같은 대사도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을지어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큰 경고의 말씀입니까? 그까짓 잘못된 신학자들뿐입니까?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릇 되었 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6~1)고 말씀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사단의 신학이요, 영혼을 죽이는 신학이요, 믿음을 무너뜨려 지옥으로 밀어 쳐 넣는 마귀의 사상이므로 단호한 태도로 물리쳐야 합니다. 동정녀 잉태, 부활, 삼위일체, 예수님의 대속의 사실, 천국, 지옥 등, 어떤 것 하나도 믿지 않으면 두 말할 것 없이 자유주의 신학이요 마귀의 사상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은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1~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성경을 불신하는 교수들은 적그리스도의 종이요, 가장 큰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 속에 거하는 사단을 미워하고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므로,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신학에는 학문의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배치되는 신학은 신학도 아닙니다. 교역자를 양성하라고 세운 신학교에서 성경을 뒤엎는 교수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② 부모 형제라도 배격해야 합니다. 

 제가 만일 제 아버님이나 형님이 이런 자유주의 신학 교수요, 학장이라도 저는 앞장서서 척결하는 데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부모는 부모로 효도하고 잘 봉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누구든지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한 말씀대로, 육신의 혈육 관계보다 영혼의 문제가 더 중요하고, 신앙은 육신의 생명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내 신앙을 파괴하거나 영혼을 망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면 목숨 걸고 배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사람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 말씀이나 신앙은 생명보다 중요하고 부모 자식의 정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라”(마 10:28)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육신의 문제보다 억만 배 중요한 것입니다. 

 ③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 

 간신 하만의 간계로 바라사 나라의 모든 유대인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하게 되었을 때에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에게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했습니다. 

 이번에 저도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의 육신을 죽이는 일보다 억 천만 배 중요한일, 곧 한국 교회를 죽이고 수많은 영혼을 멸망으로 떨어뜨리는 사단의 궤계를, 늦었지만 이제라도 속히 척결해야만 합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처럼, 이 이단 사상, 자유주의 신학은 목숨 걸고 기도하며 몰아내야 한국 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992년 2월 16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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