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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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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1-01-13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태복음 7장 7~12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00113-7. 왜 기도해야만 하는가.hwp

7. 왜 기도해야만 하는가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기독교 역사는 기도의 역사라고 한 말대로 하나님의 뜻과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기 때문에 기도 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라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고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께서 능력 있게 귀히 쓰신 종들은 모두 무릎 꿇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를 뜨겁게 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도에 관해서 몇 가지 의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은 왜 기도해야 주시는가 하는 것과 ② 왜 어떤 때는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며 ③ 왜 때로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1. 왜 기도해야 주시는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르시는 것이 없고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꼭 기도해야만 응답해 주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구하기 전에 그때 그때 주시지 왜 기도해야 주신다고 했으며, 찾아야만 찾게 해 주시고, 문을 두드려야만 열어 준다고 하셨습니까? 문을 두드리기 전에 문을 활짝 열어 놓지 않으시고 꼭 두드려야 그것도 어떤 때는 지치도록 두드려야 문을 열어 주십니까? 그것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 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꼭 기도해야만 하고 기도해야만 주십니까? 

 ①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동역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곧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무슨 일을 행하시기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일이 우리 성도들의 입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시고 목소리를 통해 들어내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 45:11)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부탁하라”는 말씀은 대부분의 영어 성경이나 일본어 성경에“명령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명령하듯이 하나님께 간절히 간청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지구 동쪽에서 기도하는 것이 지구 서쪽에서 나타나고 수 천리 밖에서 기도하여 그곳에 아픈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하여 응답받을 때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임을 깨닫게 되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반역할 수도 있는 이 엄청난 자유의지는 인간에게만 주셨습니다. 우주만물, 해와 달, 별까지도 말씀 한 마디로 지으셨으나 우리 사람만은 친히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생기(영)를 불어 넣으시고 선악과를 따 먹을 수도 있고 안 따 먹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즉 컴퓨터나 로봇(robott)처럼 자기의 뜻은 없이 주인이 조작하고 입력하는 대로 작동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로 소원하고 간구하고 요청해야 주시는 것입니다.“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고 말씀하시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해서 우리의 뜻을 무시하고 구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풀거나 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뜻이 아니고 두 사람 이상 여러 사람이 뜻을 한데 묶어서 합심 기도하면 그 기도의 위력은 더 큰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뜻과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 그 소원이 뜨겁고 간절할수록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우리지만 그 뜻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 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겔 36:37)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양떼처럼 많게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③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과 교통(통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고기를 못 가져와도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해 드리고 교제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문제든지 가지고 와서 의논하고 교통하기를 원하시 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고 말씀하시면서 비록 주홍같은 죄, 진홍같은 죄가 있을지라도 나한테 가지고 와서 서로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 용서해주고 씻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우리 믿음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마귀와 대화하다가 그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축도하면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지려면 진실한 말을 해야 됩니다. 어린애가 부모님께 아뢰듯 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미사여구는 필요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보혈에 의지해서 자백하고 씻음 받아야 합니다(요일 1:9). 기도는 꼭 달라는 것이 아니라도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대화를 깊이 오래할수록 하나님과의 접촉이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요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2. 왜 응답을 받지 못하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기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하셨고“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는데, 응답하실 때도 많지만 왜 어떤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믿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을 안 해주십니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① 정욕으로 구할 때 못 받습니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고 했습니다. 가령 사업의 성공과 물질의 축복을 구하면서 그것으로 투전이나 하고 술이나 많이 먹고 첩이나 얻을 생각을 하면 주시겠습니까? 그럴 때는 안 주는 것이 그에게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구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② 더 연단이 필요할 때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더 연단을 받고 육성과 죄 성이 깨어지고 처리되어야 할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가 3:31~33)고 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때릴 때에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맞아야 합니다. 

 바울은 남의 병은 잘 고쳐주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을 가졌는데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사단이 찌르는 가시는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이나 특별 기도를 했는데 가시는 제거해 주시지 않고“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고통의 가시까지 있어야 온전한 은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되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바울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③ 죄의 값을 치뤄야 할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과거의 모든 죄는 주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참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사람은 범죄하고 실수하는 일이 있어도 영생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알고 지은 죄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반복해서 범죄 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그 죄에 대한 징계를 받으며 죄의 값을 치루게하십니다.이렇게 하나님께 매를 맞고 죄의 값을 치뤄야 할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다윗(David)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일주일이나 베옷을 입고 금식했으나 소용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신복들은 그 사실을 고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 아이가 죽었느냐”고 묻고, 죽었다고 하니까 울지도 않고 즉시 의복을 갈아입고 성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돌아와 맡은 일을 처리했습니다. 

 신복들이 의아해서 질문했더니“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 12:22~23)하고 자기 죄를 생각하며 겸손히 징계를 받아 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야속하다느니, 하나님이 계시면 그럴 수 있느냐 등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피난나갈 때 시므이란 사람이 돌을 던지면서“가거라 가거라 피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하면서 억울한 말로 저주하고 욕할 때, 옆에 있는 아비새 장군이 당장 목을 쳐오겠다고 했지만“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삼하 16:10) 하면서 그 원통함을 하나님이 풀어 주실 때가 올 것을 믿고 참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는 대신 이 세상에서 죄의 값을 치뤄야 할 때가 있고 맞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 주시기 않습니다. 맞을 만큼 매를 맞고 죄 성과 육성이 깨질 만큼 깨져야 하나님이 그 채찍을 거두십니다. 다른 문제를 위한 기도는 들어 주시면서도 그 문제에 대한 기도만은 얼굴을 돌이키시고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했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우리가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고 하셨으므로 죄악을 품으면 더욱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④ 낙심해서 응답을 못받는 때가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눅 18:1 이하)을 비유로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간청하여 응답받은 예를 들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기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응답이 늦어진다고 거절당한 것이 아니다(Delaying is not denial)”란 말이 있습니다. 

 끈질기게 간구하고 기도하면 마침내 응답을 받을 텐데 쉽게 낙심하고 중단하기 때문에 응답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구하는 동안 우리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⑤ 불응답이 응답일 때 

 응답 안 해주는 것이 응답일 때가 있습니다. 가령 어린애가 아버지의 면도칼을 달라고 울어댈 때 아직 칼을 주면 안 될 때 이므로 과자를 대신 주고 그 칼을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 줍니다. 안 주는 것이 주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가령 물질을 많이 달라고 하는데 물질축복을 주면 그나마도 예수 안 믿고 음란방탕하다가 지옥갈 것 같으면 안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물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응답을 안 해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회피하신다면 저와 여러분은 아니 온 인류는 멸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응답이 오지 않지만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3. 왜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가 


 기도는 길을 가면서도 할 수 있고 눈을 뜨고 일하면서도 할 수 있고 묵상으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급적 내 기도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기도가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5분도 안 가서 곧 잡념이 들거나 졸음이 옵니다. 

 성경에는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수백 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조용히 묵상으로만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고 했습니다. 

 능력있는 기도,간절한 기도는 말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소리를 높여서(speak up) 목소리를 내고(with voice) 높여서(lifted their voice) 부르짖어야(cry out) 합니다(시 3:4, 77:1, 142:1). 

 ① 부르짖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롬10:13) 하는데“부른다”는 말의 히브리어는“외치다”,“부르짖다”란 뜻이 있고, 헬라어로는“사람을 불러일으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부르짖는 것도 좋은 기도입니다. 통성기도할 때 목소리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도 얻기 힘들고 체험적인 신앙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부르짖으십시오(시 12:2~6, 116:13, 행 2:21). 

 ② 부르짖을 때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시 86:7, 81:7 등). 

 ③ 부르짖을 때 고통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 18:6).“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시 118:5)고 했습니다. 

 ④ 슬픔과 아픔에서 구출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부르짖어 구원받았다(시116:3~4)고 했습니다. 

 ⑤ 긍휼히 여기심을 받습니다.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이니이다”(시86:5)고 했습니다. 

 ⑥ 풍성함이 넘치게 됩니다. 

 “…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고전 15:45, 12:3). 

 ⑦ 하나님을 만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고 했습니다. 

 ⑧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lifted their voice)”(행 4:24) 기도했더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고 했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성령 충만 받는 것을 수백 번 보아 왔습니다. 소리 내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면서 한 두 달 교회 다닌 사람이 더 믿음이 좋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1991년 1월 13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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