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0403 짧은 인생과 부활 신앙

by 미디어사역부 posted Nov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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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4-04-03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마가복음 16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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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과 부활 신앙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연어란 물고기는 수천 리, 수만 리 넓고 넓은 바다를 헤엄치며 다니다가도, 몇 년이 지나 죽을 때가 되면 어려서 먹던 물맛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강물로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합니다. 나침반이나 이정표도 없이 수만 리를 돌아다니다가 찾아오니 참으로 희안한 일이 아닙니까? 이것을 회귀본능, 혹은 회향병(nostalgia)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본능과 영원을 사모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짧은 인생 기간에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돈을 벌어도 영의 문제, 즉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참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 날,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를 찾아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줄 터이니 요구해 보라고 하니까,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좋으니 영원한 것(the least portion of immortality)이 있으면 조금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왕은“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때 디오게네스(Diogenes)는“그런데 왜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다 정복하려고 합니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한 순간의 보장도 없으면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디오게네스(Diogenes)는 궤변 철학자라고 말들 하지만,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간파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알렉산더는 33살에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원한 존재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참 평안과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안에 떨다가 노이로제, 정신 질환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은 부자들 중에 훨씬 더 많은 법입니다.

 인생은 영원한 존재인데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유한하고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고 했습니다.


1. 짧은 인생과 헛된 소망


 본문에“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흙에서 난 풀은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다가도 쉽게 말라 죽고 말며 그 꽃은 풀보다 더 빨리 시들어 떨어

지고 마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흙에서 난 육체는 조만간 다 늙고 병들어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며, 육신적인 인간이 성취한 부귀영화나 행복은 잠깐 동안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속히 끝나고 마는 것 입니다.


 ① 풀과 같이 생명이 짧습니다.

 연속사극에 나오는 조선 500년의 역대 임금들을 보면, 각양 좋은 보약을 다 먹었지만 다 일찍 죽어 버렸고, 피바람을 일으키며 정권을 탈취했지만, 전광석화와 같이 지나가 버리고 지금은 무덤에 비석 몇 개만 남았습니다. 참으로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미국의 아담스 대통령이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한 젊은이가“아담스 대통령 각하, 평안하십니까?”하고 인사했더니, “아담스는 평안한데 우리집이 다 낡아서 서까래가 무너져 지금 기둥을 막대기로 버티고 있다네. 아담스는 곧 이사가야 되겠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즉, 영혼은 평안하지만 육체의 집은 다 낡아서 무너지게 되었으므로 천국으로 이사가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모든 육체는 이와 같이 곧 시들고 말라 버리는 풀과 같은 인생입니다.


 ② 풀과 같이 약합니다.

 흙에서 돋아난 풀은 밟혀도 죽고 토끼나 병아리 같은 짐승이 뜯어 먹어도 죽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육체는 티코 같은 차에 치어도 죽고, 병이 나서도 죽고, 물에 빠져서도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면도하다가 코털 하나 뽑았는데, 파상풍으로 그 이튿날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이렇게 약한 존재인데 몇 천 년이나 살 것처럼, 욕심을 내고 육신의 생활에 소망을 둡니다.

 중국 음식이 다양하고 맛이 있는 이유는 죽지 않으려고 불사약을 구해다 먹으려 했다는 진시황이, 상어 지느러미(shark’sfin), 곰의 발바닥(웅장) 요리도 해 먹고,제비집 요리(연채석)도 해 먹었기 때문입니다. 요리사가 일 년에 똑같은 음식을 두 번만 상에 올려놓으면 그 요리사의 목을 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식을 먹으며 오래 살려고 했지만, 그 진시황도 49세에 죽어 관 속에 들어갔고 한 줌의 흙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약한 인생입니다.


 ③ 풀과 같이 낮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60층, 100층의 고층 빌딩을 짓고 달나라에도 가고 세계를 정복한다고 해도 풀과 같이 낮고 볼품없는 존재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보면 고층 빌딩도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 같고, 벤츠나 캐딜락 같은 고급 승용차도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한다, 장관을 한다 해도 천상의 성도가 내려다 볼 때는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것 같습니다.개가 교통사고로 죽으면 보신탕 해 먹으려고 끌어가는 이가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가까이 가기도 싫어합니다.

 인간은 풀과 같이 낮은 존재입니다.

 이와 같이 풀과 같고 풀의 꽃과 육체에만 소망을 두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원한 존재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영원한 것 입니다.


2. 부활 신앙과 영원한 소망


 흙에서 난 육체는 풀과 같이 짧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존재의 인간이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하고 영원한 소망을 갖지 못할 때, 모순과 갈등 속에 살다가 궁극적인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목적은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불안의 원인이 되는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정복하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을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케 하고 부활을 얻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를 없애 주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를 들면 무정란은 계란이 부화될 때 썩어 버리고 말지만, 유정란은 껍질이 깨어질 때 병아리가 되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더 좋은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자는 육신은 죽을지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영원한 존재로 다시 살아 낙원에 가 있던 영혼과 부활한 몸이 결합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크리스천들은 육신의 죽음마저도 당하지 않은 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변화되어 들림 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재림 때까지 살아남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 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38~4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육신의 썩을 양식만 얻어 먹으려고 모여드는 군중에게, 예수님이 오신 참된 목적을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하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시고, 그 뜻과 목적은 영생과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정복하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②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설교한 모든 메시지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들이 죽기까지 하면서 힘써 외친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의 죽음과 그의 부활입니다.

 즉,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과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였던 죄와 죽음의 해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를 케리그마(kerygma)라고 하는데, 그 케리그마의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를 빠뜨리거나 믿지 않는다면 생명을 끊은 기독교요, 사실 기독교도 아닌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소굴입니다. 이 복음에서 이탈될 때 사이비 종교와 온갖 이단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에서“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12절 이하)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을 필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19절에“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부활과 영생이 없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부활을 체험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짧은 인생살이에 고생을 하고 실패를 했어도 가장 출세하고 부자가 된 불신자보다 억만 배 행복한 사람이며 축복받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Pluralism)니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나, 부활의 역사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계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무서운 사단의 도구입니다.


 ③ 부활의 조건

 부활절이 인간에게 가장 큰 명절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서 그를 믿는 크리스천들이 그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지라도 우리에게 부활을 주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지 우리가 기뻐할 이유가 없고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고 설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장차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영생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그 피의 구속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시지 않았다면 우리와 같은 죄인이므로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이 신앙 고백이 제일 먼저 들어갑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하셨으므로,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확실히믿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하셨으므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벙어리가 아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내서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주 예수여, 이제부터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시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아무리 보아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1994년 4월 3일 부활주일 대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