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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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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15. 표면적 신자와 이면적 신자
로마서 2장 28~29절, 갈라디아서 1장 11~16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기독교는 표면적 종교가 아니라 이면적 종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표면적(outward) 신자가 아니라 이면적(inward) 신자를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 다녔어도 이면적 신자가 되어야 참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표면적 신자란 겉으로 믿고 의문적으로만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리도, 의문도, 예절도 알지만 겉으로만 믿는 것이고 결국 사람에게서 난 자이지 하나님에게 난 자는 아닌 것입니다. 물론 학습도 받고 세례도 받고 주기도문이나 사도 신경도 잘 외우지만 참으로 주님의 생명을 가질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면적 신자는 속으로 변화를 받은 영적인 신자란 뜻입니다.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신자란 뜻이고 참으로 하나님에게서 난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면적인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생명적인 것 영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주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 사람은 신자가 아니며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명적인 것이며, 영적이며, 내면적인 것이지 의문(儀文) 속에 표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도“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고 하셨습니다.
 이면적 신자가 되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과 부딪혀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영접하는 자(예수님)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으니 참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며, 그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거하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만 믿어서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머리로 긍정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믿고 시인한 사람은 그때부터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이면적 신자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깁니다.

 

1. 예수님을 참으로 압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배워서 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계시로 영적으로 깨달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물으시기를“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했을 때“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례미야나 선지자 중이 하나라 하나이다”고 했습니다.이때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했을 때 베드로가 얼른 대답하기를“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된 이면적 신자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의 교훈에 호감을 가진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참으로 예수를 접촉하고 예수를 만나는 것이며 예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이며 조상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으로 교회를 심히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 주님을 만났을 때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르침을 받아서 주님을 안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에서 간증하기를 그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신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면적 계시가 없는 사람, 참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믿는 사람은 아무리 기독교의 의식을 알고 성경을 잘 알아도 또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그 열심은 다 헛된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그가 조상의 유전을 잘 지켜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그 속에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주님의 생명을 가진 이면적 신자는 내보 일 수는 없으나 좌우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나의 구주가 되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2. 시험을 이깁니다. 
 이면적 신자도 시험을 당할 때가 있으나 그 시험을 이깁니다. 낙심할 때는 있어도 타락하지는 않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표면적 신자는 아무리 잘 믿는 것 같고 열심이 있는 것 같다가도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하고 떨어져나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겉보다 속을 중요시하고 의문이나 의식보다 영적인 내용과 그 생명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동문서답격으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했는데, 선생이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지 이면적인 것이 아니며 생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영이며, 생명이며, 이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배우고 연습을 잘해도 육은 육이지 육이 영이 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5~7)고 하신 것입니다. 그 속에 생명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니고데모는 결국 예수님의 생명과 접촉하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져 버리고, 다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또 보면 5병 2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육신의 양식을 얻어먹으려고 온 사람들이지 영생의 양식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실“생명의 떡, 영생의 양식”이 되신 분이지 육신의 양식이나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생명의 떡은 인자가 주리라”(요 6:26~27)또 말씀하시기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 하리라”(요 6:32~35)고 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어떻게 해야 이 영생의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요 6:28)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예수)를 믿는 것이 영생의 양식을 먹는 법이다”(요 6:29)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7~48)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영의 말씀,생명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수군거리며“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요 6:41~42)고도 하고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하기도 하면서“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하셨고 제자들이 많이 물러간 뒤에 예수께서 12제자에게 묻기를“너희도 가려느냐?”고 했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역시 시원한 대답을 하기를“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5병2어의 기적으로 육신의 빵을 배불리 먹었을때 많은 무리가 몰려왔으나 막상 영생의 빵을 내놓을 때 많은 사람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표면적 신자는 아무리 열심히 믿고 의식을 잘 아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지만 그 속에 생명을 가진 이면적 신자는 어떤 시험도 이깁니다. 낙심할 때는 있어도 타락하지는 않습니다. 칼빈도 말하기를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귀의 화살을 아무리 많이 맞아도 결코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비판하고 의심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많은 사람이 물러간 뒤에“너희도 가려느냐?”했더니 베드로가“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시원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계시의 영이 있는 신자, 생명이 있는 이면적 그리스도인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느낌을 가집니다. 
 이면적 신자는 생명을 내놓지 못하고 볼 수 없고 보여주지 못할지라도 생명을 가졌으므로 생명의 느낌을 가집니다(요1:4; 롬 8:12; 고전 12:26).

 

 ① 죄를 범했을 때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죄를 범했을 때 불안한 느낌을 가지고 괴로움을 느낍니다. 기쁨은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생김을 느끼게 됩니다. 생명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악을 미워하게 되므로 예수를 믿고 생명을 가지면 죄에 대한 느낌을 가집니다. 죄를 범하면서도 괴로움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표면적 신자입니다.

 

 ② 몸의 지체로서의 느낌을 가집니다(고전 12:26).
 여기서 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몸의 한 지체가 되기 때문에 한 지체로서의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게 되고 교회가 잘 되고 부흥되면 기쁘고 또 고통과 시험이 있으면 내 집 일처럼 괴로움을 느끼면서 염려합니다.
 그러나 외면적 신자는 형식적으로는 교회는 다녀도 그 안에 생명이 없으므로 그런 사랑과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마치 의족을 해 끼운 사람은 모양은 다리와 꼭 같아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무감각한 것과 같습니다. 설교를 해도 누가 기도를 해도 아멘도 안 나오고 반응도 없습니다. 성가대가 되든 말든 무관심하고 여선교회, 남선교회 좀 같이 하자고 하면 귀찮게만 여깁니다. 교회 재정이 남든지 모자라든지 정성껏 헌금을 하는 법도 없고 기도하는 법도 없습니다. 교회일 하자고 하면 “부담없이 믿으렵니다”하고 도망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③ 형제 사랑의 느낌을 가집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 3:14)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같은 생명을 가진 믿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자연히 하나님으로부터 난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안 믿는 가까운 친척보다 믿는 남이 더 사랑스럽고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증거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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