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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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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4년 9월 15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

3 복음의 빚진 자
로마서 1장 14~17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
 우리 자신을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여러가지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빚도 지고, 은혜의 빚도 지고 사랑의 빚도 걸머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이고, 부모님께 대해서도, 형제에 대해서도 사랑의 빚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족에게도 빚을 지고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허다한 도움을 받았으니 그 또한 빚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빚진 자라고 하는 의무와 책임을 깨닫게 될 때에 새로운 마음의자세를 갖고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될 줄 압니다.
 빚을 진 자는 언제나 가혹하고 잔인하고 교만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 주었더니 그는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빨리 빚을 갚으라고 호통을 친 이 야기라든가, 유명한 세익스피어의「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에서 샤일록이 채무 이행을 하지 않는 자의 젖가슴 1파운드를 빚 대신 요구하는 냉혹하고 잔인한 유대인의 이야기는 너무도 아픈 충격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빚진 자는 그와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겸손합니다. 또 빚을 갚기 전에는 빚진 자는 마음을 놓지 못하며 죄송한 마음을 갖습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했어도 그의 마음은 이웃에게 늘 송구한 마음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빚진 자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라면 복음의 빚을 걸머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복음을 듣지 못한 불행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올바른 신자이며 그러한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되고 항상 발전을 멈추지 않는 생명 있는 교회라고 확신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우리는 경주해야 되겠습니다. 미숙한 사람일수록 책임감과 의무감이 모자라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강합니다. 마찬가지로 미개인일수록 책임감이 없고 문명인일수록 이것이 강합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미숙한 초신자는‘나 하나 예배당에 와 주면 됐지 무엇 하러 전도하랴’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신앙인일수록 구령열에 불타고 한 사람이라도 주의 복된 말씀을 듣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내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빚을 갚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불타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뒤에 새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예수의 십자가와 그 부활을 증거 하면서 심지어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까지 했던 그의 불붙은 사명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거듭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라면 이 구령 사업에 우리의 정열을 쏟지 않으면 안되리라고 믿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딸기코였는데 우연히 어느 돌팔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본래대로 멋진 코를 지니게 되자 너무나 신기하고 기뻐서 길에서건 차 안에서건 딸기코를 만나기만 하면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 갈 것과 딸기코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씻을 것을 열심히 역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찮은 딸기코를 치료해 준 의사의 일도 열심히 알리려고 하거늘 하물며 절망과 좌절에 빠졌던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아들인 순간 새로운 삶과 행복을 되찾고서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사에게 여러분의 문둥병을 고침 받았다고 하면 문둥병 들린 사람에게 여러분을 고쳐 준 의사의 놀라운 재주와 기술을 전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그 문둥병 환자가 만약 그 말을 믿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그 의사 앞에 끌어다 놓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레닌이 1917년 제정 러시아에 대한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그 혁명의 지지자는 불과 4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10억의 공산주의자들
이 세계 적화를 위하여 필사적인 권모와 술수를 다하는 것을 볼 때에 사단의 감화를 받은 자들도 이러하거늘, 예수께서 오셨다 가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은 10억도
복음화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파해야 할 일입니까? 국내외 선교 사업에 힘쓰고 노력하는 교회야말로 정상적인 그리고 부흥하는 교회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일을 해야 합니까?

 ①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한 말씀은 창세기 12장에도 있고 갈라디아 3장 16절에도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씨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계획을 전하는 것이 성부 하나님의 뜻입니다.

 

 ②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 내 이웃은 물론 세상 모든 족속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된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최대의 사명인 동시에 오늘날 교회의 지상 과제인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③ 성령께서 인간을 통하여 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성령 충만의 목적은 복음 전도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은혜 충만하여서 복음 전도사업을 많이 해야 부흥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④ 복음사업 즉 구령사업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로마서 10장 13~15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주님께서 축복하신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2~3절을 보면“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을 주시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복음사업에 힘쓰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큰상을 받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⑤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예수께서 오신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0절에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 하나도 없을 때에야 예수께서 오신다고 했습니다. 사단 마귀는 주님이 오시는 날이 바로 자기가 멸망하는 날이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복음 선교 사업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과 전력을 다 바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총력을 경주해야 주님의 오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⑥ 주께서는 주는 자에게 복음을 더 주십니다.
우리는 복음전도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 복음과 은혜를 남에게 주려고 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더 주시고 부흥시켜 주십니다. 나만 잘 믿고 우리만 복 받으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믿음은 내 나라와 이 세계를 아니 이 교회마저도 부흥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스미스(O. J. Smith)라고 하는 캐나다의 유명한 목사는 토론토의 대중교회 담임자인데 별로 크지 않은 그의 교회에서 선교사 3명을 앉혀놓고 이 사람들을 외국선교사로 보낼 것을 호소했던 바 지금은 5백 여 명의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 대단한 부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로 된 교회였으나 그만큼 그들은 복음선교의 사명이 주님의 사업 중 가장 큰 사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과 제게 스스로 새롭고 원대한 각오로서 내년부터 우리도 외국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하여 기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저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 같은 데는 한 달에 2백 달러이면 넉넉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각오가 다져지기만 한다면 우리의 복음 사업은 언제나 어디서나 행할 수가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부족하다고 탄식 하
시는 주님의 음성에 새롭게 귀를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이번 선교 대학원에 인도에서 온 쟈바싱이란 젊은 목사는 원래 공산주의자로 대학에서 영어도 가르치는 교사였으나 예수의 부름을 받은 후부터 선교사업에 그 젊음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분으로서, 그는 인도에서 우리 교회의 속회처럼 10명 혹은 20명씩 짝을 지어 기도 세포를 조직하여 한 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기도하게 하고, 그 가난한 인도 사람들이 한 세포에서 정성어린 푼돈으로 한 달에 50달러씩 모아 선교사를 보내는데 60명이나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울면서“어서 속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합시다. 그 길만이 믿음이 없는 인류에게 다가오는 멸망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간증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주 좋은 슬로건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Go or send(가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 참 좋은 표어입니다. ‘가라! 네가 선교사로 가지 않겠느냐? 못 가겠거든 돈으 로라도 기도로라도 뒷받침해서 선교사를 보내는데 힘쓰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저는 Go or send라는 이 말은 주님께서 우리 교인에게 강력하게 명령하시는 말씀으로 믿습니다. 우
리는 가든지 보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분명히 하라는 주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저나 여러분도 주님의 이 절대적인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외국선교에 힘써야 될 또 하나의 이유는 달고 오묘한 복된 말씀을 수없이 아무리 전도하고 권면해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너무 지나치게 복음을 들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듣지 못한 자가 많이 있는데 그들에게 우리의 정성과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고 압제를 받아오던 민족이었으나 말세에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통하여 온 세계에 복음의 불을 던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제사장 민족으로 삼아 주신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저는 선교대학원에서 세계 각처에서 온 여러 나라의 목사들 앞에서“우리 한국이 지금까지는 도움을 받아 왔으나 앞으로는 신령한 성령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기도했을 때에 많은 외국인 목사들이 모두‘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맥가브런(McGavran) 박사는 중공이나 북괴가 언젠가 문호를 개방할 때를 대비해서 그곳에 보낼 선교사를 양성할 것은 물론 학교에 있는 학생이나 젊은이에게 그 꿈의 실현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게 하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부흥집회를 나갔던 경기도 부평에 있는 모 교회도 대체로 여유롭지 못했으나 주님 사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껴 기도하고 건축헌금을 작정했을 때에 1천만 원이나 모였던 사실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외국에 선교사로 갈 수는 없을지라도 나의 기도를 바라는 이에게 기도를, 나의 심방을 바라는 이에게 심방을 하면서 전도 사업에 여러분의 온 정열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그 이웃에 새사람이 이사만 오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도와주고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에 나오도록 한다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전도와 구령사업에 몸 바쳐 일하고자 할 때에 도처에서 우리의 심방과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에서 한 선교사에게 극동지역 대리인으로 일 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연간 1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선교사가 싫다고 대답하자 2만 달러를 제의했고 급기야는 5만 달러까지 주겠다고 했으나 거절하면서“당신이 지불하려 하는 대가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나에게 너무나 적습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금전의 유혹에도 꺾이지 않는 불타는 사명감이 얼마나 귀중하고 값진 것입니까?
 저는 마지막으로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박사의 이야기를 드리고 이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더프 박사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목사로서 오랫동안 인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
가 늙고 나이가 많아서 고향에 그 뼈를 묻으러 귀국하였습니다. 그를 환영하는 식장에서 그는 인도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응답하는 자가 없었습니
다. 그는 불쌍한 인도 사람을 생각하면서 울었습니다.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의사의 치료로 깨어난 후, 그는 자기가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다시 세워 달라고 눈물로써 간청했습니다.
 그는 강단에 다시 서서 백발이 성성한 흰머리를 숙이며“빅토리아 여왕이 지원병을 소집할 때는 수없는 젊은이가 지원했는데,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애쓰시는 우리 주님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데 한 사람의 지원자도 없다니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는 이제 내 고향 스코틀랜드에 나의 뼈를 묻으러 왔지만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인도인에게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한 사람이 저들의 영혼을 위하여 백골을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 묻으러 왔다고 말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많은 스코틀랜드의 젊은 선교사가 가난한 질병의 나라 인도를 향해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우리의 잠자던 심령을 두드려 깨우는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정열이, 우리의 젊음이, 우리의 물질이, 구령 사업을 위해 바쳐질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본회퍼는 독일 국민을 전쟁의 마수에서 구하기 위해 히틀러 암살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이나 사회적 참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이고 과격한 혁명적 방법으로서 사회 참여보다는 직접적으로 구령사업, 전도사업에 힘써야 될 것입니다. 이번에 만난 세계적 선교사업의 권위자 맥가브런 박사가 구제사업이나 자선사업은 즉 사회적 행동은 선교사의 대전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을 들었을 때 과연 식견이 놀라운 세계적 인물임을 확신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알렉산더 더프 박사의 백발이 성성한 모습과 인도 갠지스강에 자기의 백골을 묻겠다고 했던 그분의 결심을 우리도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쟈바싱 인도 목사의 슬로건이었던‘Go or send(가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가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을 때 고향 찾아 왔던 알렉산더 더프 목사는 정말로 그의 늙은 백골을 갠지스 강변에 묻어야 할 것이며,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께서는 우리의 냉혹하고 황량한 가슴속에서 다시 못 박히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Go or send!’지금은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이 시간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가라 그래서 이 아픔을 만민에게 알려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 보내서 다시는 하나님의 피조물 위에 피 흘리는 비극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지금은 가든지 보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결정할 귀중한 시기임을 깨달으시고 새로운 각오와 결심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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