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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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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2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20. 하나님을 보는 눈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사람들은 귀로 듣는 라디오보다 눈으로 보는 TV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습니다.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나 “본다”는 말을 많이 넣어서 씁니다. 맛을 본다, 들어 본다, 냄새를 맡아 본다. 심지어 예배를 본다고까지 합니다. 사실상 예배를 드린다고 해야지 제사나 굿을 구경하듯이 본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어쨌든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1. 복된 눈

 

 ① 겉보다 속을 볼 줄 아는 눈
 사람들은 겉을 보려고 하지 속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있듯이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이 형편없이 나쁠 수가 있습니다. 독사의 알은 알록달록하고 예쁘지만 그 속에는 독한 독사가 들어 있습니다.
 처녀 총각들 중매를 하다보면 처음에는 마음 좋고 믿음만 좋으면 된다고 하며 인물 잘나선 뭘 하느냐고 하다가도 막상 중매하려고 들면 아무리 믿음좋고 마음 좋아도 대부분이 겉모양을 제일 먼저 보고 결정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예수 믿는 데만 간다고 하다가도 돈 있고 인물만 훤하면“…가서 믿게 하면 되지요 뭐”하고는 결국 육신의 신랑은 얻었는데 영혼의 사랑은 잃고 신앙생활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합니다.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핀 것을 보아도 그 속에 꿀 몇 드럼이 들어있다는 것을 봅니다. 속을 볼 줄 아는 눈이 복된 눈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보자기 속에 들어있는 축복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② 현재보다 장래를 볼 줄 아는 눈
 사람들은 흔히 현재만 보고 장래를 볼 줄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기름진 푸른 풀밭만 보았지 소돔 고모라성의 죄악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소돔 고모라성이 불 탈 때 비참한 운명이 되고 말았으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먼 장래에 큰 축복을 받고 잘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했을 때 아간은 당장 눈앞에 금 덩어리, 은 덩어리, 시날산의 멋있는 외투만 보았지 그 죄 값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 뿐 아니라 귀여운 처자식들까지 돌 탕에 맞아 죽어 돌무더기에 장사 지내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음란하고 투전에 미친 사람은 당장에 말초신경만 자극해서 쾌락을 누리는 것만 좋아했지 먼 장래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무서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많이 봅니다. 마귀는 언제나 먼 장래를 보지 못하도록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이 세상만 보고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현재보다 장래를 보는 눈, 이 세상보다 내세를 보는 눈이 복된 눈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보는 눈
 복된 눈은 안될 것을 보지 않고 될 것을 더 봅니다.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봅니다. 할 수 없는 것만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보는 눈이 복된 눈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신문에 이런 만화가 실렸다고 합니다. 산 밑에는 그가 태어나서 자라난 작은 오두막집을 그리고 그 산 위에는 백악관을 그렸는데 그 오두막집과 백악관 사이에 사닥다리를 그려놓고는 그 밑에 글을 쓰기를 “이 사닥다리는 지금도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할 때 그의 배 한 척만 침몰되면 실패로 끝나기 때문에 성공의 확률이 500분의 1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전투가 역사상 500번 있었는데 그 중에 노르만디 작전이 한번만 성공했기 때문에 500분의 499는 실패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지마는 한번이라도 성공한 사례를 보고 적극적으로 “그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보고 작전을 시도한 결과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어서 친구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그의 친구가 그만 수렁에 빠져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렁에 빠지면 죽는 줄 알고 절망에 빠져 울부짖기만 하더랍니다. 이때 비스마르크가 엽총을 그 친구 머리에 겨누고 “자네를 건지려고 손을 내밀었다가는 나까지 빠져 죽고 말겠네. 그렇다고 내가 자네를 그냥 놔두고 가면 무한한 고생을 하다가 죽을 것이 아닌가. 내가 자네 고생하는 걸 덜어주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겠네. 그러니 저승에 가더라도 내 우정을 잊지 말게”하고 당기려는 체 하니까 그 친구가 그제 서야 죽을 기를 써서 반쯤 나온 다음에야 손을 내밀어 건져주고 나서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그 친구에게 말하기를“내 총은 자네의 머리를 겨눈 것이 아니라 자네의 생각이었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엇이나 부정적인 면만 보고 절망하고 실망낙담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해결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처칠(Churchil) 수상이 한번은 옛날 어렸을 때 다니던 고향 학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교수들이 모인 강당은 조용히 처칠 수상의 성공의 비결에 대한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얀 은테 안경을 쓴 처칠 수상은 강단에 올라서서 말씀을 하는데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라고 딱 3마디만 하고 강단을 내려갔을 때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④ 하나님을 보는 눈
 눈에는 세 가지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 지식의 눈, 영의 눈(육안, 지안, 영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육신의 눈이나 지식의 눈으로 보는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택시를 타고서 택시 운전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기사님 예수 믿으십시오.”그러니까 이 운전기사님이 하는 말이 “나 하나님 보여 주면 믿겠소.”하더랍니다. 그래서 꾀를 하나 생각해 냈답니다. 운전기사한테 “아저씨,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하고 갑자기 물으니까“내가 정신이 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지요.”하길래“그럼 기사님 그 정신을 내게 좀 보여주세요.”하니까 그 운전기사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하는 말이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해.”하더랍니다.
 공기나, 전파나, 전기, 전자, 양자를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안 믿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달밤에 보면 구름 속에 달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름이 지나가는데 우리 눈에는 달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물 컵에 젓가락을 넣으면 곧은 젓가락이 구부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보는 대로만 행하는 사람은 세상 물질이 끝날 때, 죽음이 올 때 공포에 사로잡히고 절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보이는 대로 행치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다 없어져도 죽음이 와도 염려가 없습니다.
 어떤 광부가 광산에 수백 길 갱 속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헬멧에 달린 등불이 꺼졌습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혜를 짜내었습니다. 신발을 한 짝 벗어 들고 석탄을 실어 나르는 레일 위에다 발을 대고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레일을 따라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답니다. 우리의 믿음의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눈,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눈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까?

 

2. 하나님을 보는 눈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여기서 “청결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깨끗하다는 말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카타로스라는 말은 ① 깨끗하다(clean)는 뜻이 있습니다. 즉 흙이 묻은 옷을 빨아서 깨끗이 한다는 뜻이며 ② 곡물에 껍질이나 겨를 까불어 내서 순 알곡을 만든다는 뜻이 있고 ③ 술에 물을 타듯이 금속에 비금속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unmixed) “순수한”(unadulterated)이란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단순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봅니다. 이중 삼중으로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쓴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한(simple-minded) 사람, 정직한(honest) 사람, 성실한(sincere) 사람, 어린아이와 같은(childlike)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① 죄와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은 지 몇 달도 안돼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죽인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데, 어떤 이는 몇 년을 믿어도 하나님을 분명히 만나는 체험도 없고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 못하고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보나마나 죄와 탐심으로 꽉 찬 사람은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 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자신의 더러움 때문에 회개하고 자복하지도 않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눈에 금 덩어리를 가로막아 놓으면 태양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영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9~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네 보물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두 마음을 품은 자(Duplicity)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한(simple) 마음, 솔직하고 정직한(honest) 마음, 어린아이 같은(childlike) 마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몇 꺼풀 뒤집어 쓴 위선자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위선의 껍질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믿음이 안 생기고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단순 소박한 사람, 은혜 안에서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러므로 5년 10년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들어도 확신이 오지 않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위선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콩나물을 기를 때 비닐에 싸서 길러 보십시오. 다른 콩은 다 자라도 비닐에 싼 콩나물은 물이 안 빠지기 때문에 자라지 않습니다.

 

 ③ 형식주의자(Formality)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형식과 외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겉껍질(shell)만 보았지 속 알맹이(kernel)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형식주의자는 뼈의 겉만 핥을 뿐이지 정수와 골수(marrow)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거룩한 무질서를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듯이 때로는 하나님은 형식과 의식을 무시하십니다. 그래서 미국에 신령한 교회로 큰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 중에는 꽉 짜인 프로그램도 없고 틀에 박힌 설교나 기도가 없이 찬송하고 말씀을 전하고 자유롭게 헌금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좌우간 형식주의나 의식주의자는 참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④ 교활한 사람(Crafty man)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간사하고 교활해서 아무한테나 좋게 하고 양다리 걸치기를 잘하는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전도할 때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예, 예 믿지요”그러는 사람은 잘 안 믿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순진하고, 소박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무섭게 반대하다가 믿게 되면 잘 믿습니다.

 

 ⑤ 까다롭게 트집만 잡고 무엇이든 의심하려고만 드는 사람(Questioning spirit)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하고 어찌하든지 말씀과 믿음 편에 서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라야 언젠가는 의심의 구름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어떤 대학생이 질문을 하는데 까다로운 질문만 자꾸 하길래 한번은 선교사님이 많은 손님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대학생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많은 사람한테는 맛있는 음식을 갖다 놓았는데 그 대학생 앞에는 생선가시만 갖다 놓았답니다. 그래서 이 대학생이 선교사님한테 짜증을 내면서 물었습니다 “왜 나한테는 이런 가시만 갖다 놓았습니까?”하니까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자네는 성경을 읽을 때 맛있는 영의 양식인 고기는 다 빼고 꼭 소화 잘 안 되는 것만 질문하는데 음식도 그렇게 먹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어린아이와 같이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두 마음을 품은 위선자나, 형식주의자, 교활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진실하고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은 강도, 창녀, 도적이라도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내 죄를 고백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히 씻어 주시옵소서”하는 진실한 기도를 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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