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 33. 용감한 신앙

by 미디어사역부 posted Jul 08,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extra_vars1 <1983년 4월 24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33. 용감한 신앙
여호수아 1장 5~9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지난 4월 19일 신문에 베이루트 미 대사관이 폭파되면서 40여명이 참사되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친 이란 파의‘자살 특공대’의 소행이라고 하는 기사를 읽고 그들의 신앙과 신조가 무엇이길래 자기 생명을 초개같이 던지며 그런일을 했을까 생각하면서 좋은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용기가 있다면 이 세상은 빨리 복음화 되고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온 어느 대학생이 한 그리스도인에게 말하기를 “당신들 그리스도인이 온 세상을 구원한다고 하지만 우리들(공산주의자들)은 당신네들이 2,000년 동안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불과 50년 동안에 다 해놓았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당신네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몸을 바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몸을 바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승리하고 있습니다”고 조롱 비슷하게 말하더랍니다.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지는 100년도 안 되었는데 세상을 이 만큼이나 공산화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업을 완성하신 지는 2,000년이 되어가는 데도 공산주의만큼 복음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신앙의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나 수행하고자 하는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사람들이나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신앙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훌륭한 신앙은 용감한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오”할 수 있는 용기와, “그렇소”하는 용기와, “헌신”의 용기가 있어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봅니다.

 

1. 부인(No)하는 용기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용기를 비롯해서 하나님과 사단, 거룩함과 죄, 진실과 거짓의 갈림길에서“아니오”라고 할 때는“아니오”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도 큰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고 나서 연못가에 앉아 울고 있노라니까 물속에서 하얀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번쩍번쩍 하는 금도끼를 보여주면서 “이 금도끼가 네 것이냐”할 때 정직한 나무꾼은 “아니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번쩍하는 은도끼를 가지고 와서 “이 은도끼가 네 것이냐”할 때 역시 “아니오”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무꾼의 무쇠도끼를 가지고 와서 보여줄 때에야 제 것이라고 받았더니 금도끼, 은도끼도 선물로 다 주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오”할 때 가서 “아니오”할 수 있는 신앙의 용기가 꼭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애굽나라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온 요셉은 하늘같이 높은 주인의 아내가 아름답고 요염하고 매력 있는 자태로 날마다 유혹을 하다못해 옷깃을 부여잡고 동침하기를 요구할 때, 신앙의 사람 요셉은 용기있게 “아니오”했습니다. 요셉도 본능이 있고 피가 끓는 청년인데다 보디발의 아내의 호감만 산다면 요직에도 앉을 수 있고,출세도 할 수 있었겠지만 붙잡은 옷을 던지며 달아났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찌 그 큰 악을 행하리요?”하고 용감히 “아니오”했습니다. 그 결과 억울하게 감옥살이도 했지만 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보디발 장군도 부하처럼 부리는 때가 왔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니오”하는 대신에 잔꾀를 부려서 적당히 얼버무렸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면서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1952년 7월 3일, 6·25동란 때 미국 공군대령 데오도어 헤리스라는 사람이 B29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14개월 동안 온갖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겨울에는 덮을 것도 주지 않고 땅굴에 가두어 놓고, 미국이“세균전쟁”을 했다는 문서에 서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갖은 고문을다 받으면서도 부인하고 서명을 안 했다고 합니다. 안한 것을 어떻게 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953년 9월 포로교환 때 살아서 넘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주여, ‘아니오’할 수 있는 신앙의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될 줄 압니다.
 엊그제 대구에서 10대 소년 소녀들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디스코 춤을 추다가 불이 나서 수십 명이 타 죽었는데 모두 한 덩어리가 돼서 형체도 알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사단의 유혹이 많은 때 우리 기독 청소년들에게“아니오”할 때 “아니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줄 압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전자오락실에 미쳐서 헌금할 돈으로 오락하러 가는 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을 위해서, 기도시간을 위해서 TV를 한 시간 먼저 탁 끄는 용기가 얼마나 필요한 세상인지 모릅니다.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2. 시인(Yes)하는 용기

 

 동구라파의 어느 나라에서 되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주일날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공산군들이 들이닥쳐서 총부리를 대고 “누구든지 예수를 안 믿겠다는 사람은 밖으로 나가고 끝까지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은 다 쏴 죽이고 불싸지르겠다”고 호통을 쳤답니다. 그러자 많은 교인들이 죽는 게 무서워서 다 문 밖으로 나가고 용감한 신자만 죽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시인하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공산군 장교가 낮은 목소리로 “여러분, 나도 신자요. 당신들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나간 사람들은 트럭에 태워서 죽일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죽이는 것처럼 공포를 쏠 터이니 뒷문으로 도망가시오.”하고 따발총을 공중에 쏘고 나가더랍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2~33)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고 하였습니다.

 

3. 헌신의 용기

 

 일찍이 위대한 성도들은 다 헌신의 결단과 용기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명보다 귀하고 가장 사랑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잡아 바치라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 묶어 놓고 번쩍이는 칼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생산할 수 없을 때 100세나 돼서 주신 아들을 잡아 바쳐도 다시 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절대 헌신의 행동을 나타내 보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남이 갖지 못하는 헌신의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위대한 축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대 애굽의 바로가 될 수도 있었으나 그것들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이 갖지 못하는 헌신의 용기를 가지고 헌신의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큰 그릇이 되고, 큰 축복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금란교회가 큰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을 볼 때, 세상 사람은 내가 교인들의 헌금을 짜내서 못살게 만드는 줄로 생각 할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제가 믿기는 여러분에게 헌신의 기회를 드려서 엄청난 축복과 상급을 받게 하는 기회를 드리는 것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큰 축복을 주시기 전에 큰 그릇으로 쓰시기 전에 먼저 헌신의 용기를 테스트하시는 분임을 잘 깨달아 승리하시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