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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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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_vars1 <1974년 8월 25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tra_vars2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1. 신앙 인격과 의지
(요한복음 5장 30~33절, 6장 38~40절)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곤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따 먹은 다음에 죄를 짓게 만들고 또, 그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하지 않았습니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그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반역할 수도 있지만 섬기는 것을 원하셨으며 범죄할 수도 범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섬기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신 것이지 로보트나 기계와 같이, 혹은 시계와 같이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태엽이 떨어지면 그대로 서곤 하는 그런 식의 사람을 만들기는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는 것은 범죄 하는 자에게는 큰 불행의 원인도 되지만 이 자유 의지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까닭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범죄 하여 저주를 불러들이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의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의지라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기 때문에 마치 배의 키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키에 의하여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도 인격의 삼요소인 감정과 의지와 지식,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 의지는 배의 키와 같아서 내 의지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는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도 감정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도 좋은 그리스도인과 나쁜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느낌을 표현할 뿐, 그렇게 깊은 요소가 못됩니다.
 그러나 의지는 그 사람의 정수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사람의 뼈와 같은 것입니다.
 의지가 약하고 흔들리기 잘하는 사람은 뼈가 없는 사람처럼 흐물흐물한 그런 인격자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 의지는 인간의 특권이며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의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어서 인간에게 멸망을 끌어들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2의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의지로 하나님께 복종하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복종하면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었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게 구원을 가져왔으며 잃어버렸던 영생을 다시 찾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고 말씀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루도 한 시간도 일 분도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이 참다운 행복을 찾고 보람있는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을 하려면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그는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인격을 소유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노라면 그 사진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있는데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것은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이 딱 맞을 때입니다. 저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즉,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혼돈과 불행이 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이 무엇이냐 하면 내 뜻에다 가장 정확하게 맞추는 그 사람의 삶이 가장 훌륭한 삶이요,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유명한 오스왈드 스미스(O. J. Smith) 목사는 30세 되던 해에 목사가 되었는데 그는 유명한 목사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큰 교회 목사라는 명예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어느 해 생일에‘하나님! 제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의 뜻에 꼭 맞는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특별한 기도를 드렸는데, 그가 구하지도 원하지도 아니했어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제일 유명한 목사가 되어서 그 교회가 500명의 선교사를 내어보내는 신령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 얼마나 괴롭고 쓰린 일이었는지“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마 그 기도를 하실 때 마귀는 좋아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하신 말씀이“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훌륭한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에도“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영어로는“Try will be done”즉, “당신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주시옵소서”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기도의 한 표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지식이나 감정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에서 제일 큰 목적은 인간의 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과 또,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감을 잘 받고 직관이 예민하고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음성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의 뜻에 맞출 줄 모르고 순종 할 줄 모른다면 그 모든 신비한 은혜도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왜 믿음의 표상이 되었습니까? 믿음이 훌륭했던 그는 100세나 되어서 모처럼 귀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저는 40도 안 되었고, 또 딸도 있다가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냉정하고 쌀쌀하다고 하는 편인데도 부흥회에 나갔다 며칠 만 있어도 그 아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백 세나 되어 아들을 하나 낳았느니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아주 정성을 다해 길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내가 지시한 모리아 땅에 가서 네가 가장 사랑하고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하나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차라리 나의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그건 죽어도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기 쉬우나 아브라함의 훌륭한 신앙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그는“예”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가장 사랑하는 독자일지라도 데리고 가서 모리아 산에 묶어 놓고 칼로 찔러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알겠다 네게 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일지라도 나에게 아낌없이 드리려고 하는 너의 신앙을 알았다. 네 뜻을 나의 뜻에 순종하려 하는 너의 충성을 알았다.”아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후에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불행이 오는 것같이 생각되지마는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과 축복은 그 때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젊었을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왕이 특별대우를 해서“내 왕궁에서 먹는 진미를 먹도록 하여라 고기며 포도주며 좋은 것을 다 줄 터이니 마음대로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주는 진미와 떡, 고기, 술들을 먹지 아니하기로 하였습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고기나 술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떡과 고기와 술은 못 먹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뜻을 정하고 생활한 결과 몸이 더 건강해졌습니다.
 그러한 신념으로 평생 살았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죄로 사자굴 속에 넣는다고 했지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더니 죽을 자리에서도 살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의 신앙이 훌륭합니까? 감정적으로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훌륭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뼈와 같은 가장 중요한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뜻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신자가 훌륭한 신자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마도 친척이 어디를 가자고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름이 아주 가기 전에 들이나 강이나 바다로 놀러가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했기 때문에 신령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고 있으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의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가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타는 풀무 불 속에 집어넣어 태워 죽인다고 했지만 그의 명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왕은“이제라도 저 신상에 절만 해라 그러면 살려 주리라”고 했지만 그 다니엘의 친구들은“그런 말씀 마십시오 우리는 불 속에서 타 죽는다 하더라도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할 줄로 아옵소서”라고 담대히 대답했습니다. 그런 결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속에 집어넣어 죽이려 했으나 그 곳에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서 내 뜻을 하나님 뜻에 복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아니하면 아무리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기뻐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무효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의지가 약한 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뿌리가 깊지 아니해서 태양이 떠오르면 곧 말라버리는 풀과 같은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사단의 뜻이 있습니다.그 중간에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마귀의 뜻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마귀의 뜻을 선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를 가장 많이 죽이는 자가 가장 유용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고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으로는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지만 내 의지를 깨뜨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은 제일로 힘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서 받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그 말씀을 받아먹었더니 입에는 달콤하나 배에서는 쓰더라고 했습니다.
 ‘쓰다’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달지만, 나의 의지적인 결단을 내려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때는 쓰디쓰고 괴로운 것입니다. 이 쓴맛을 경험하지 아니한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모든 죄의 공통분모는 불순종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멋대로 하고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말입니다. 반드시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도적질을 하는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죄이긴 하지만 근본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란의 노른자와 같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영혼까지도 의지의 지배를 당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똑바로 알아서‘하나님이여! 내 뜻을 버리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언제나 맞추는 생활이 되게 해 주소서’하고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하며 생활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내 뜻, 나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지만 고통과 실패와 쓰라림의 손길로 우리를 치시곤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슬픔과 고통과 환란과 재난과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자 네 뜻대로 해야 이것밖에 없으니 내 뜻에 복종하고 살아라” 하시며 어서 속히 복종하고 하나님께 항복하게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즉, 고난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의지와 인간의 못된 고집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얻어맞고 많이 깨어진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되고 신령한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뜻은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깨어져야 하고 내 고집도 깨어져서 지렁이처럼 부드러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 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왜 지렁이라고 그랬습니까? 인간의 고집, 인간의 의지와 같은 것은 깨져야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구약 사무엘하 16장 이하에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나 피난을 내려갈 때 하잘것없는 시므이라는 사울의 족속 가운데 한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다윗을 향하여 저주하며 말  하기를 “피 흘린 자여 네가 남의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게 하더니 네가 그 꼴을 당하는 구나”하고 비방을 하고 티끌을 뿌리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장수들이“저 못된 놈을 죽이리까” 할 때 다윗은“아니다 내 아들도 나를 반역하는데 저 시므이가 나를 욕하고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저주하라고 했기에 저주하고 욕하는 것인데 너가 어찌 그리하느냐고 할 자가 어디 있느냐. 참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저 시므이를 내게 굴복하게 하는 때를 주신다”고 하면서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모든 슬픔과 고통이 우연한 것으로 알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자기의 뜻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럴 때에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너희가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은 나 때문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내 마음 속에, 내 가정에, 혹은 내가 속한 기관에 풍랑이 일어나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내 뜻대로 살려 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한 것처럼, 내 뜻을 죽여 버리게 될 때에 풍랑은 잔잔해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이 올 때에 원망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그것을 달게 받고서 내 뜻이 깨어지게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말의 원어는 메나토이아(metanoia)라고 하는 데 그 뜻은‘마음과 생각을 바꾼다’ 는 말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소리치고 우는 것만이 아니고 내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것을 깨뜨리고 변경시켜서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agree with)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까? 입으로는‘주여, 주여’하면서도 내 고집대로 내 뜻대로 살면서 여지껏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모든 불행과 근심과 걱정과 실패의 원인은 바로 내 뜻대로 사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역경과 실패를 통하여 내 뜻과 고집이 속히 깨어지고 하나님께 순종 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의지적인 결단을 내려서 얼마나 내 뜻을 굽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고난이 오고 손해가 오고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인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한 가지 더 말씀 드릴 것은‘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아느냐’하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으로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뜻을 나타내십니다. 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중 대표적인 두 가지만 들고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1.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장 34절에“…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셨고, 또 요한복음 6장 40절에는“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하나의 영혼이라도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믿고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지난번 엑스폴로 74대회를 했는데, 어떤 분들은 반대를 한다며 하는 말이 수많은 돈을 없앤다느니 어느 누구만을 높여 준다느니 했지만 저는 그 대회의 대회장인 김준곤 박사님을 일주일 이상 가까이 대해 봤는데, 그분의 마음속에는 피 묻은 그리스도를 이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심어 주어서 구원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보내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 저는 무조건 그의 하는 일에 동의하고 밀어 주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아니하고 뒤에서 비평이나 하는 것은 것보다 낫습니다. 돈을 몇억 아니라, 몇 백억을 없애고라도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더 귀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왜 그렇게 예배당을 몇 천만원씩 들여가면서 크게 짓습니까?”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짓게 하는 극장 같은 건물은 몇 억을 들여서라도 짓는데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를 짓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낭비입니까? 몇 억, 몇 백억이라도 이러한 전도 사업을 위한 것은 낭비가 아니요, 아까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목적도 여기에 두어야 합니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시간을 쓰는 것도 어떻게 해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는데에 목표를 둘 때 그 사람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은 하나님께 영혼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동안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마이크는 소리를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요, 시계는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인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만을 두고 얘기할 때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 보면“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살려고 할 때에 언젠가 그 사람에게는 영광을 얻게 해 주십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분도 매일 매일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생활할 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시고 또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앞으로 천 명, 2천 명, 3천 명의 신도를 목표로 큰 교회를 꿈꾸는 것도 우리가 큰 교회라고 자랑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여, 큰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이나 유명한 목사가 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또 아무리 작은 개척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따르겠습니다. 저의 영광을 위해 교회가 부흥되고 전도 사업을 하고 교회가 커진다면 원치 않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데만 뜻이 있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훌륭한 일을 했지만 그게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만삭되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높이 들어 쓰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고자 할 때에 그 사람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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