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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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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4-01-09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10장 4~6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40109-선악과냐 생명과냐.hwp

선악과냐 생명과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하다가 중단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건축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금 받은 액수만큼은 공사를 했는데, 몇 억만 더 해주면 다른 회사가 이어 받아 건축이 완성되도록 해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붙들고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건축법상 건설업자가 건축 중에 중단한 것은 다른 회사가 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두 패로 갈렸는데, 사리에 밝고 옳고 그름을 잘 따지는 교수님이나 지식 있는 장로님들은 건축을 못하더라도 돈을 더 줄 수는 없다는 주장이고, 사업하는 장로님들은 돈 몇 억이 없어지더라도 예배당 건축을 완성해야 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양 틈에서 시달리는 목사님은 병환으로 입원 중에 있어서 교회는 점점 더 어려운 형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말을 듣던 중,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와 “생명과”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고 다른 나무의“생명과”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무엇이 사는 길이냐’즉, ‘생명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사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저는 건축이 중단된 그 교회 목사라면 억울하겠지만 몇 억을 손해 보더라도 교회가 사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그 교수 장로님들의 말씀이 타당한 말씀이고 계산상으로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만 따지고 있는 한, 건축은 안 되고 교회는 흩어지고, 결국 교회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선과 악만 따지고 옳고 그른 것만 따지고 드는 한, 교회는 죽습니다. 옳고 그른 차원을 넘어서 어느 것이 과연 사는 길이며 생명의 길인가를 찾아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오늘날까지 확장되는 도중에 집을 여러 채 사서 늘렸는데, 어떤 때는 50%, 어떤 때는 100% 더 비싸게 살 때가 많았습니다. 참으로 괘씸하고 분했지만, 그 집과 땅을 샀기 때문에 오늘의 금란교회가 되었지, 옳고 그른 것만 따지고 돈의 액수만 따졌더라면 성전 터가 넓어질 수 없었고 오늘날의 교회 성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사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아닙니까?

 옳고 그른 것만 따지다가 가정이 파괴되고 죽는 것을 봅니다. 부부간에 하찮은 문제 가지고‘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따지면서 서로 자존심을 살리려다가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불량아, 문제아가 되어서 사회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가정이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자존심만 세우면서 옳고 그른 것만 따지다가 가정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지 옳고 그른 것만 따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뭄이 들어서 물이 몹시 귀한 때에 농촌에서는 물싸움을 하는 때였습니다. 한 성도가 밤새도록 수고해서 논에 물을 대어 놨는데, 다음 날 아침에 나가보니까 아래 논임자가 논둑을 터서 자기 논으로 물을 빼앗아 갔더랍니다. 당장 가서 멱살이라도 붙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참고 다음 날 다시, 밤새도록 수고해서 물을 대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침에 또 물을 빼앗아 자기 논에 대었더랍니다. 이번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또 물을 대었습니다. 삽으로 찍어 죽이고 싶었지만, 참고 목사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말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담했더니, 그 목사님은 “당신은 옳고 그른 차원을 넘어서 어느 것이 생명의 길인가를 알아서 그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기왕 빼앗긴 것, 한 번 더 빼앗긴 셈치고 오늘 밤에는 그 아랫논에 물을 대주고 당신 논에 물을 대십시요.”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아랫논 주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기도 예수 믿겠다고 하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외국 유학하는 동안, 사모님이 7계를 범하고 외국으로 도망까지 하려는 차에 그 목사님이 귀국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병이 들 정도로 몹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으나, 만일 이혼하고 그 여자를 버린다면 자식들이 불쌍해지고 자기의 목회 생명도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용서하고 살기로 했습니다. 결국 자식들도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고 그 교회도 엄청나게 부흥되어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옳고 그른 것만 따졌다면 당연히 이혼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음행 연고가 확실하면 이혼해도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교회도 죽고 목회도 죽고, 자식들도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깡패 부랑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그 말씀하신 근본 의도는“음행하면 이혼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5~6)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에 누가 묻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교훈의 근본정신은 간음했다고 이혼하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용서해 주고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잘 잘못만 따지고, 옳고 그른 것만 따지는 부부는 이혼하기 쉽고 그 가정의 생명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참으로 사는 길이냐를 성령의 조명을 받아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율법을 따라 옳고 그른 것만 따져 심판 받는다면 한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는것입니다.


2. 산상수훈과 생명의 길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중에“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같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상대방이 잘못해서 눈을 뽑으면 같이 눈을 뽑아 주고 이를 부러뜨렸으면 같이 이를 부러뜨려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사회에 기본법으로 존재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 차원을 떠나서“그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무엇이냐”를 알아서 그것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주라.

 옷 한 벌 때문에 싸우다가 수치를 당치 말고 한 벌 더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옷 한 벌 더 양보한다고 해서 못 살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가령, 수도세 몇 푼, 전기세 몇 푼 때문에 싸우다가 하나님의 영광 가리우거나 전도의 길 막지 말고 좀 밑지면서라도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계산을 따지고, 옳고 그른 것만 따지는 것은 참 사는 생명의 길이 아니고 크리스천의 삶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 오른 뺨 치는 자에게 왼 뺨도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왜 때리느냐 싸우려 들지 말고 한 대 더 맞을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대해 주라는 것입니다. “왜때려, 왜 때려?”하면서 옳고 그른 것만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 쪽을 택하면 둘 다 죽는 길이요, 양보하고 밑지면 둘이 다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한 대 맞고 나서“더 때려, 더 때려!”하면서 왼 뺨을 돌려 대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③ 5리를 가자는 자에게 10리를

 6.25 때 인민군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무거운 짐 보따리를 지우고 한 30리 되는 지점까지 가자고 할 때, 그 사람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내려놓으라고 하는데도 괜찮다고 하면서 10리 길을 더 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인민군이 감동을 받고는 정말 내려놓고 가라고 하면서“사실은 30리 되는 데서 너를 총살하려고 했었다.”고 실토하더랍니다.

 마지못해 의무만 하려고 하지도 말고 옳고 그른 것만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의무 이상의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강한 의지와 고집을 깨뜨리고, 또 강제로 당하는 것 이상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초월해서 강제로 당하는 것 이상으로 대해 줄 때,인격이 도야되고 마음도 넓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복수의 감정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인민이 서울로 쳐들어오는데 방어도 하지 않고“어서 오십시요!”하고 부산까지 내주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것이 거듭난 크리스천의 개인 생활 자세를 말한 것입니다.


3. 계산을 초월한 생명의 길


 마리아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붓는 것을 본 가룟 유다는 얼른 계산을해보고 나서“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왜 그것을 허비하느뇨”라고 따졌습니다. 유다의 말이 계산상 틀린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꼭 맞는 말입니다. 나드 향유한 방울 뿌려도 집안에 향기가 가득할 터인데, 왜 허비하느냐 하는 말입니다.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하고 축복해 주었지, 유다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계산을 앞 세워 옳고 그른 것만 따지던 가룟 유다는 스승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목매달아 자살해 죽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갔습니다.

 은혜의 길, 생명의 길은 계산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 안 됩니다.


4. 혼의 지식을 영의 생각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무의식적으로 욕망의 은밀한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사단의 조정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이“돈을 목적으로 한 지성은 양심을 소유할 여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타락한지성과 이성이 영계를 혼란시키고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을 주장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이론이 그럴듯하지만 결국 인류를 파멸로 몰아갔고, 이제는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 이하에“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육체의 병기”나“하나님 앞에 견고한 진”이라고 하는 것은 사단 마귀의 숨은 궤계를 말합니다. 이런 지식과 생각을 파하고 깨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기독교의 가장 큰 임무는 인간의 사고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런 생각이 깨어지지 않고는 은혜를 못 받고 거듭나지도 못합니다. 설교도 옳고 그른 것만 말하는 윤리적 설교, 율법적인 설교만 하는 교회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부흥을 저해하고 나아가서 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수는 옳고 그른 것만 따지면서 영계의 신비를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사단의 조종을 받는 사상과 지식입니다

 이런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 깨어지지 않는 한, 그런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1994년 1월 9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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