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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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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자 1992-03-01
설교 분류 기타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extra_vars6 ./pds/board/33/files/doc/920301-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hwp

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한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할 귀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은혜”란 말의 뜻은 “값없이 거저준다”는 뜻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넘치는 사랑과 은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원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이런 놀라운 은혜가 바로 우리 편에 있다는 뜻입니다. 50억 인구가 아니라 500억의 인구일지라도 그를 믿고 의지할 때 모두에게 넉넉한 은혜가 공급된다는 뜻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한 이 말씀은 왜 하셨는가 하면 사도 바울의 육체에 괴롭히는 가시 때문이었는데 이 가시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은 삼층천 즉 천국에 올라가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온 사람이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본 사람이며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 혹은 14권(히브리서를 포함한다면)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구원했고 수많은 병자를 고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몸에 사단의 찌른 가시가 있어서 이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특별기도를 드렸으나 그 가시를 제거해 주시지는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My grace is sufficent for you)”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오지 않고 답답할 때가 있지만 낙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형편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것으로 응답해 주실 때가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바울은 이 찌르는 가시 때문에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교만하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자신에게 머물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에 대해서 “내 아들아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마”하는 응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주여,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시를 제거하고 은혜가 떠나는 것보다는 가시를 가지고 은혜를 더 받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불평 대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1. 구원받는 때에도 은혜가 족합니다


 바울은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잘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믿고 있는 바를 대적하는 사람은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갈릴리의 한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 말을 들을 때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그리스도를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말만 들어도 땅에 침을 뱉으며 이들은 잡아 죽여야 한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드디어 한 무리의 사람을 모아서 그리스도인들을 지상에서 박멸하기위해 관의 허가장을 받아 가지고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무시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은 강한 빛을 바울의 얼굴에 비치게 해서 눈이 멀어서 땅에 엎드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이 못 보는 대신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사울이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네가 나를 믿으면 네 모든 죄를 씻어주마”라고 하실 때 아마도 바울은 “그러나 주여 나의 지은 죄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내 은혜가 더 크단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날이, 바울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임하여 그를 구원한 것처럼 이 지구상의 어떤 죄인도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오기만 하면 다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가 회심한 후부터 항상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 혹은 방언을 해야 한다,혹은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마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한 말입니다.구원은 오직 한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다른 아무 도움 없이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바울이 강조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주님은 만일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면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 잘나서 구원받았다고 허풍떨며 돌아다닐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내가 행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행위요, 믿음은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반응인 것입니다.

 한 병사가 군인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군목님이 와서 그를 도와주려고 할 때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군목은 병실 밖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기도하다가 어느 날 아침에는 예쁜 꽃병을 가지고 들어가서 머리맡에 놔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을 터뜨리더니 그 병사가 말하기를“감사합니다. 나는 꽃을 참 좋아합니다.”군목은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고난을 아시고 우리의 앞길을 밝게 하려고 이런 아름다운 꽃도 주셨답니다.”하니까 환자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군목님, 그동안 무례하게 행동한 것 미안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너무나 패역한 죄인이라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는 다 범한 죄인입니다. 왜냐구요? 아마 제가 지은 죄를 이 병실 벽에다 쓴다면 일인치도 안 남기고 이 사면 벽을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그때 군목님은 “가서 그대로 해보십시오. 이 모든 벽에 당신의 죄를 다 적어서 꽉 메운다 해도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한 절만 적어 넣으면 그 모든 죄는 없어지고 맙니다.”그 말씀이란 곧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하는 말씀입니다.”라고 일러주니까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날이 바로 죽어가던 그 병사가 구원받은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못할 죄는 결단코 없습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죄에 대해서도 은혜가 족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거듭난 신자라도 완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범죄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후에는 결코 죄 짓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죄의 성질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알지 못하는 소치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육성과 죄 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는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됩니다. 옛사람의 성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 성품도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영적인 새 성품과 육적인 옛 성품과 싸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육성이 이기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일 참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그 죄의 자리에 안주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평안치가 않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했을 때 육성이 이긴 것이었고 잠시 사단에 넘어간 상태였지만 베드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사단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부인한 다음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몇 분 내 베드로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죄 짓고 싶어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당신이 참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남아 있는 한은 결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 죄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용서와 평화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 아래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답니다. 그에 대한 좋은 예를 다윗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슬프게도 범죄했습니다. 다윗이 범한죄보다 더 검은 죄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탐심의 죄, 간음죄, 살인죄 등 여러 가지 흉악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죄한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 32:3)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가 범죄한 후에 얼마나 고민하고 근심했는지를 잘 알 수가있습니다. 그가 죄를 숨기려 했을 때에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데 “하나님이여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할 때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듯이 용서가 임했습니다. 그의 기쁨이 회복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함을 깨달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범죄했습니까? 물론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죄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냉담한 마음, 성도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게으른 죄, 하나님의 돈을 끄집어내서 자신을 위해서 쓴 죄, 기도 쉬는 죄 등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남을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하는 잘못인 태도를 가진 것 등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죄가 가로막혀 있는 한 마음에 기쁨이 없고 유용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히 회개하고 자백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있고 기쁨을 되찾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함을 범죄한 때에도 알게 됩니다.


3. 시련과 고통의 날에도 은혜가 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는 앞길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놓여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고난과 시련이 무엇 때문에 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항상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사도 바울이 빌립보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매를 많이 맞아서 피가 흐르는 것을 귀에 대고 “바울 선생님, 얼마나 괴롭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족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아 예! 그렇구말구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찬송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땅이 흔들리고 지진이 나더니 쇠고랑이 풀려 나갔습니다. 이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간수를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방 속에서도 만족했습니다. 목회하다 보면 여러 가지 역경과 고난을 겪어 봅니다.때로는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내가 버림받는가 보다 하고 생각될 정도로 극심한 시련을 받지만 다 지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만족합니다.

 어느 병원의 입원 환자 중에 얼굴이 가장 평화와 기쁨이 넘쳐 보이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한 부인이 간호사에게 묻기를 “이 병원에서 제일 고통이 심한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바로 그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당신의 그 용기에 경탄합니다.”했더니 그 환자는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바로 저것 때문입니다.”하며 벽에 붙인 글자를 가리키는데 그것이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가슴에도 이 말씀은 꼭 품고 있으면 우리 앞길에 어떤 시련과 고통이 와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4. 슬픔의 날에도 은혜가 족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식구를 세상에서 마지막 작별할 때 예수님의 위로를 느껴 보았습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당할 때 예수님의 돌보심을 느껴 보았습니까? 느끼고말구요! 다른 어느 때보다 주님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 못할 슬픔을 당할 때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많은 꽃다발이나 사람들의 권면의 말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음성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노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하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여러분 곁에 사랑하는 식구가 다정하게 앉아 있지만 언젠가는 이별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은혜를 가슴에 간직해 둔 사람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5. 죽음의 날에도 은혜가 족합니다.


 바울의 죽음이 닥쳐왔을 때 그는 로마 도성의 감옥 안에 있었습니다. 처형시간이 확정되었고 바울의 목을 칠 도끼가 날카롭게 날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머리가 몸에서 잘려 떨어지고 위대한 사도는 더 이상 세상에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무서워했을까요? 한번 그가 갇힌 감방으로 내려가 물어본다고 합시다. “지금 소감이 어떠합니까?”바울은 말씀합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대사도 바울은 영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죽음의 순간에도 충분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홀로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젊은 목사가 죽어가는 한 성도를 심방했는데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는 목사가 죽어가는 교인을 위로하기 위해서 과거 얼마나 선한 사업을 많이 했다는 것과 참으로 훌륭한 집사로 일해 왔다고 하면서 위로해 주니까 그 늙은 집사는 손을 흔들면서“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세어볼 때가 아니라 우리가 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집사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할 일은 우리가 평생 한 일을 세어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은혜입니다.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가 아프리카에서 크게 사냥놀이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그가 아프리카항구에서 배에 올라탈 때 붉은 카페트를 펴놓았습니다. 군중은 부두에 모여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승선할 때에 멋진 옷을 입었습니다. 항해하는 동안 내내 모든 사람의 관심은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습니다. 모든 승객은 그 위대한 인물을 보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한 사람이 그 배에 탔는데 그분은 선교사로서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을 바친 선교사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죽었고 아이들도 사망하고 없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자신도 늙고 힘이 없어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고독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배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부두에 다 왔을 때 큰 무리가 모여들어 박수를 보냈습니다. 대통령이 걸어내려 갈 때 종이 울리고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드디어 붉은 카펫이 두르르 깔렸습니다. 대통령은 위세당당하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걸어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늙은 선교사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작은 호텔에 들어가 그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밤에 침대 옆에 꿇어앉아 기도하기를 “주님, 제가 불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주님을 위해 나의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귀국하는데 마중 나온 사람도 없고 용기를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고 기도했을 때 주님이 하늘나라에서 그 선교사의 곁으로 와서 등에 손을 얹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야, 너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니라(Missionary, You are home yet).”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지나갑니다. 환난과 시험이 올 때 우리가 놀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직 본향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바로잡아 주시고 만족한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옳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본향 집으로 들어갈 때 천국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많은 천 상 성도들과 앞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우리를 맞아 주실 것입니다. 더욱 사랑하는 주님께서 영화롭게 빛나는 얼굴로 두 손 들어 우리를 환영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영원히 그를 찬송하게 됩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큰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1992년 3월1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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